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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와 투수의 승부. 기본적으로 투수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오죽했으면 '타율 3할'를 A급 타자의 기준선으로 삼았을까. 10번의 승부 중에 타자가 3번만 안타를 쳐도 잘 했다는 뜻이다.
이런 이론은 두산 투수 유희관에 의해 또 다시 입증됐다. 9일 목동구장에서 열린 넥센과 두산의 준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유희관이 7⅓이닝 동안 넥센의 막강타선을 단 3안타 1실점으로 묶어낸 비결. 바로 '느리지만, 정확하게 좌우 코너워크가 된 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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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유희관이 포스트시즌이라고 달랐을까. 아니다. 여전히 느린 공을 던졌다. 이날 직구 최고구속은 136㎞에 불과했다. 100㎞ 미만의 '초슬로우 커브'는 안던졌지만, 커브 구속은 105~107㎞를 찍었고, 슬라이더는 112~121㎞, 체인지업은 120~123㎞가 나왔다.
홈런왕 박병호를 중심으로 한 넥센의 막강 타선을 마주한 유희관의 모습은 마치 태풍 앞의 촛불 같았다. 언제라도 벼락같은 장타를 얻어맞을 듯 했다. 하지만 경기 전 유희관은 자신만만한 모습이었다. "내가 빠른 공을 못 던진다는 것은 어차피 다들 알지 않나. 하지만, 나는 내 공을 믿는다. 직구로 승부하겠다." 무모한 호언장담같았다.
그러나 유희관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유희관은 제 아무리 강한 타자가 나오더라도 위축되지 않고, '자신만의 투구'를 했다. 비결은 제구력이었다. 투구 밸런스가 안정되다보니 제구력도 평소 이상으로 향상된 듯 했다. 그 덕분에 몸쪽과 바깥쪽을 절묘하게 오가는 이른바 '좌우 놀이'를 할 수 있었다.
패턴은 이랬다. 타자가 나오면 우선 133~134㎞의 직구를 몸쪽 스트라이크존으로 꽂아넣는다. 2구째는 조금 더 낮게 다시 몸쪽 직구. 그러면 볼카운트 2S이거나 1B1S가 된다. 이후 110㎞대의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범타나 헛스윙을 유도해내는 식이다. 결국 유희관은 이런 패턴을 앞세워 8회 1사 2루에서 홍상삼과 교체되기 전까지 이택근(1회)과 강정호(2회) 서건창(5회) 등 3명에게만 안타를 내줬다. 마운드를 내려올 때까지 무실점이었는데, 홍상삼이 유희관의 책임 주자를 홈에 불러들인 바람에 1자책점을 떠안은 것이 옥에 티였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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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인 박병호를 상대할 때도 이러한 '좌우놀이'는 빛을 발했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두려움없는 몸쪽 직구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잘 알려진대로 박병호는 바깥쪽 공에 무척이나 강하다. 워낙에 기술과 집중력이 뛰어나 몸쪽 공에도 딱히 약한 편은 아니지만, 올해 홈런 중에 80% 이상이 센터를 중심으로 우측으로 형성된 데에서 알 수 있듯 밀어치기 능력이 좋다.
이런 박병호를 공략하기 위한 방법은 결국 몸쪽 승부다. 하지만 이 공은 여러 위험요소를 안고 있다. 너무 몸쪽으로 가면 사구가 나올 수 있고, 그렇다고 어설프게 몸쪽으로 던지면 공이 가운데로 쏠리게 돼 장타를 맞기 십상이다. 제대로 박병호의 몸쪽에 붙이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8일 1차전에서 니퍼트는 이걸 못했다. 당시 호흡을 맞춘 포수 양의지는 "몸쪽 공을 요구했는데, 니퍼트가 평소와 달리 제대로 던지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니퍼트가 긴장한 증거다. 그러나 유희관은 달랐다. '두려움'을 이겨내고 몸쪽 승부를 해냈다.
1회말 2사 1루에서 박병호를 만난 유희관은 초구에 132㎞ 직구로 파울을 유도해낸 뒤 2구째는 역시 132㎞짜리 몸쪽 낮은 볼을 던졌다. 1B1S에서 3구째는 바깥쪽으로 흘러나가는 121㎞의 체인지업. 좌우 변화에 타이밍을 빼았긴 박병호는 결국 유격수 땅볼로 물러나고 말았다.
3회말 1사 1루에서도 몸쪽 직구(132㎞ 볼)에 이어 바깥쪽 체인지업(119㎞)으로 중견수 뜬공을 유도해낸 유희관은 6회에는 132㎞ 직구 2개를 몸쪽으로 쑤셔넣어 박병호를 우익수 뜬공으로 처리했다. 전날 니퍼트가 던지지 못했던 몸쪽 직구에 바깥쪽 변화구를 섞어 박병호의 타이밍을 완전히 뒤흔든 것이다.
비록 두산이 경기에는 패했지만, 이날 유희관이 보여준 '좌우 놀이'와 용기있는 '몸쪽 승부'만큼은 대단히 뛰어났다고 할 수 있다.
목동=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