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내홍의 시작과 끝에 '불신'이 있다

기사입력 2014-11-06 06:05


사직구장에 이런 날이 과연 올까. 사진제공=롯데 자이언츠

롯데 자이언츠를 사랑하는 팬들의 마음이 찢어진다. 구단 내부 갈등을 뜯어보면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 구단 내부 구성원들끼리 서로 마음에 깊은 상처를 주고 말았다. 그런 소식을 접한 롯데팬들은 격한 분노를 표출했다. 야구를 하기 싫으면 떠나라는 목소리가 터져나왔고, 1인 시위에 삭발식까지 이어졌다.

기자는 롯데 담당으로 2년간 자이언츠 구단을 출입했다. 이번 내부 갈등은 하루 아침에 곪아 터진 게 아니다. 서서히 의견 충돌이 시작됐고, 하지 말았어야 할 일들이 이어졌다. 좋은 경기력으로 성적을 내야할 선수들도 불만이 쌓여갔다. 경영진(신동인 구단주대행, 최하진 사장)은 지난 2년간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프런트는 경영진과 선수단 사이에서 마음이 불편했다. 김시진 전 감독을 필두로 한 코칭스태프는 하나로 뭉치지 못하고 갈라져 있었다.

갈등의 근본 원인은 '불신'이다. 먼저 경영진이 선수단과 프런트를 100% 신뢰하지 않았다. 팬들은 우승을 원하는데 경기력을 보고 있으면 도저히 믿고 맡길 수가 없었다. 마음이 조급해지자 직접 나서기까지 했다. 선수들이 만나자고 하면 경영진이 직접 만났다.

사실상 분란의 시발점이 된 지난 5월 25일 최하진 대표이사와 선수단(35명)의 부산 회동부터 잘못이다. 어느 팀이나 내부에 불협화음이 있을 수 있다. 합리적으로 일을 풀려면 단계를 밟아 순차적으로 일을 진행해야 한다. 그런데 선수들은 단계를 밟지 않고 바로 사장을 만났다. 선수들은 자신의 목소리가 구단 대표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프런트(단장과 운영팀장)선에서 묵살된다고 생각했다.

선수들도 성적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선수들은 구단이 원정 숙소 CCTV를 통해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런데 선수들이 잘 모른 부분이 있었다. 권두조 수석코치와 이문한 운영팀장이 CCTV 감시를 주도했다고 생각했는데, 선수들의 입출입 현황을 체크하도록 지시한 사람은 최하진 사장이었다.

최 사장은 선수들의 안전 관리 차원에서 사전에 선수들에게 통보를 지시하고 담당자에게 CCTV 확인을 주문했다고 주장한다. 프런트가 반대한 건 사실이다. 야구단 경험(두 시즌)이 적은 사장의 강한 주장에 아랫 사람들도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선수들이 면담 자리에서 처음 CCTV 감시 얘기를 꺼냈을 때, 최 사장이 똑부러지게 대처를 했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최 사장은 5월 면담의 핵심은 CCTV가 절대 아니라고 주장한다. 선수들이 권두조 수석코치와 이문한 운영팀장에게 그동안 쌓였던 불편한 것들을 주로 호소했다고 말했다. CCTV가 이번 내홍의 핵심이라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사실 선수들의 요구도 비상식적이었다. 총대를 메고 일을 진행한 권두조 수석코치와 이문한 운영팀장의 징계를 요구했고, 최 사장은 선수들이 원정 보이콧 카드를 꺼내들자 신동인 구단주대행에게 보고한 후 이를 수용했다. 선수들은 면담을 하다 CCTV를 주도한 주체를 확실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 전에는 누가 시킨 건지를 정확히 몰랐다. 하지만 이미 집단행동을 결의한 상황에서 물러 설 수가 없었다.

선수들은 5월 사건을 되돌릴 수가 없었다. 시즌은 계속 진행됐고, 권두조 수석코치와 이문한 팀장은 선수들과 만날 길이 없었다. 권두조 수석코치는 엔트리에는 들어있었지만 경기장에 나오지 않고 스카우트 일을 주로 했다. 이문한 팀장은 선수들과 접촉 금지 징계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운영팀장의 일을 했다. 선수들은 그들의 요구 사항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는 상황에서 시즌이 끝났고, 보복의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권두조 코치와 이문한 팀장 모두 야구인 출신이다. 두 선배는 후배들의 집단행동에 상처를 크게 받았다. 마음 한편으로는 괘씸한 적도 있었다. 선수들은 권두조 코치, 이문한 팀장 그리고 같은 라인에 있다고 보는 공필성 코치(사퇴)에게 힘이 실리면 보복을 당할 수도 있다고 봤다. 선수들이 강직한 성격의 권두조 코치, 공필성 코치와 살갑게 지낸 건 아니다. 둘 다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잘 하는 지도자였다. 선수들은 이들이 라인을 형성했다고 봤고, 갈수록 거리가 멀어졌다. 화해의 손을 내밀기에는 너무 멀리와 버렸다. 경영진도 5월 사건을 깔끔하게 털고 넘어가지 못했다. 선수단과 프런트가 계속 불편한 마음을 갖고 있는데 방치했다고 볼 수 있다.

5월 사건으로 곪기 시작한 고름 덩어리는 페넌트레이스 마감과 동시에 김시진 감독 후임 선임 작업을 하면서 폭발했다. 선수 대표들은 지난달 18일 최하진 사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5월 사건으로 인한 보복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들이 공필성 코치가 감독이 되는 걸 반대했다는 루머는 확인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이 사건을 두고 선수들은 이틀 사이에 전혀 다른 내용이 담긴 성명서를 SNS를 통해 담당 기자들에게 보냈다. 선수들은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이문한 팀장이 이간질을 했다고 폭로했다. 사건의 본질이 이상한 쪽으로 흘렀다. 내부에서 대화로 풀어야 할 내용이 두 차례 성명서를 통해 흘러나가면서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선수들의 칼끝이 이문한 팀장으로 향했다. 선수단의 두번째 성명서에 이 팀장의 실명이 올랐다. 팬들은 롯데 프런트의 퇴진을 요구했다. 이문한 팀장은 상관이 시킨 걸 따랐을 뿐이라며 억울하다고 하소연했다. 명예회복을 위해 그동안의 모든 걸 밝히겠다고 맞섰다.

최하진 사장도 CCTV 사건의 몸통으로 몰리면서 비난의 여론이 높아지자 결국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사전에 구단 회의를 거쳤고 먼저 선수들에게 통보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해명했다.

이제 롯데그룹에서 결단을 내릴 시점이 됐다. 그들은 이번 사건이 국내 프로야구에 끼친 악영향을 잘 알 것이다. 구단 구성원들의 불신에서 시작된 잘못된 일 하나가 롯데 자이언츠를 넘어 그룹 전체 이미지를 떨어트렸다. 롯데그룹은 재계 서열 5위의 대기업이다. 롯데그룹은 롯데 자이언츠에서 왜 이런 비상식적인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파악하고 책임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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