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금석학과 서화로 조선 뿐만 아니라 청나라에 까지 이름을 떨쳤던 추사 김정희. 그가 그린 '세한도(국보 180호, 1844년)'에는 찬바람 매서운 한겨울 꼿꼿이 서 있는 잣나무 몇 그루와 비스듬히 서 있는 소나무가 있다. 잘 나가는 집안에 곱게 자란 고위공직자였지만 당파싸움에 휩쓸려 제주도까지 유배를 갔다. 승승장구할 때나 유배지에 묶인 몸일 때나 한결 같았던 친구 이상적에게 그려준 그림이 세한도다. '겨울이 와야 소나무와 잣나무의 푸르름을 안다.'
사람의 진가는 때론 있을 때보다 없을 때 더 드러난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장종훈 코치(46)가 어제(7일) 한화를 떠났다. 이글스 유니폼이 아니면 어색할 것 같았는데 1986년 연습생으로 한화에 입단한 뒤 28년 만에 친정을 떠나 롯데 타격코치로 부임한다.
장종훈의 롯데행은 길게 보면 모두에게 플러스다. 롯데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모티브를 찾았고, 장종훈 코치 본인은 몸과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 한화 구단이나 한화 팬들도 '레전드 장종훈'의 소중함을 깨닫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장종훈 코치가 한화를 떠나는데 김성근 한화 감독이 눈치를 줬을 리는 없다. 애초에 같이 가지 않을 사람이었으면 김 감독 스타일상 지금까지 데리고 있지도 않았다. 송진우 정민철 등 영구결번 레전드 동료들이 방송해설위원으로 떠나고, 한용덕 단장특별보좌역까지 두산으로 가자 홀로 고민했을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장종훈 코치는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 중 하나를 맞게 됐다.
2001년 환하게 웃던 고참선수 장종훈을 잊을 수 없다. 그해 봄 그는 참 뜨거웠다. 4할을 넘나드는 타격에 휘두르면 타구는 담장을 넘어갔다. 당시 30대 초반이었던 기자에게 그는 "없던 힘도 샘솟고, 어떤 구질이든 자신이 있다"고 했다. 그해는 이승엽이 여전히 홈런을 펑펑 날리고 신인이었던 김태균이 대선배 김종석에게 야단을 맞으며 어슬픈 1루수비 개인 레슨을 받을 때였다. 만약 그해 5월 '회춘했다'는 소릴 듣던 장종훈에게 치명적인 엄지손가락 부상만 없었다면?
아마도 김태균의 4번타자 데뷔는 좀 늦어졌을 거고, 통산 340홈런-1145타점인 장 코치의 커리어 스코어도 다소 늘어났을 것이다.
고향을 떠날 때 가슴 한켠이 시려오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은 어렵사리 결정한 그의 선택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낸다. 또 훗날 금의환향할 모습까지 기대해 본다. 박재호 기자 jhpar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