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의 귀환, 김성근 감독의 인천컴백 스케치

최종수정 2015-05-20 06:19

"여기는 별로 달라진 게 없네. 나도 마찬가지고."

무려 4년 만이다. 김성근 감독(73)이 다시 인천 SK 행복드림구장으로 돌아왔다. 김 감독에게는 '문학구장'이라는 이름으로 기억되는 장소. 세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2007~2008, 2010)을 달성하며 감독 경력에서 가장 화려한 영광의 시기를 보낸 곳이면서 동시에 '시즌 중 해임'이라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굴욕을 경험했던 곳이다. 그곳으로 4년만에 돌아왔으니 감정이 오죽 복잡했을까.


2015 KBO리그 SK와이번스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19일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렸다. 한화 김성근 감독이 진지한 표정으로 SK와의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2011년 8월 SK지휘봉을 내려 놓은 김성근 감독은 이날 1371일 만에 문학구장을 찾았다.
문학=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5.19/
게다가 4년 전과는 달리 이제는 적장이 되어 옛 제자들과 정든 야구장에서 싸워야 한다. 한화 이글스의 지휘봉을 잡은 채 4년전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과는 반대쪽인 3루 덕아웃에 들어섰다. 원정팀 감독실은 홈팀 감독실에 비해 협소했다.

하지만 노장은 별다른 티를 내지 않았다. 어쩌면 애써 그런 감정의 편린들을 묻어두려 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제 인천에 와서 조용히 방안에만 있었어. 경기 준비해야지, 괜히 돌아다녀서 뭐하겠나."

그리고선 김 감독은 여느 원정과 마찬가지로, 아니 조금 더 분주히 움직였다. 가만히 앉아 옛 추억을 떠올리는 것보다 승부에 임할 준비를 하는 게 더 중요했기 때문. 원래부터 김 감독은 그런 인물이다. 평소와 같아서 오히려 조금은 허무했던 김 감독의 '4년 만의 인천 컴백'을 들여다본다.


◇지난 2011년 8월17일 SK 와이번스 감독 시절의 김성근 감독이 인천 문학야구장 홈팀 덕아웃에서 그라운드를 바라보는 장면. 당시 김 감독은 시즌 종료 후 SK 감독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돌발 인터뷰를 했다. 그리고 이후 SK 구단이 '시즌 중 해임'을 결정하면서 김 감독은 인천을 떠났다. 인천=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2011.8.17
첫째 날 : 어린 투수들, 폭스 그리고 데이터

일반적으로 주중(화~목) 원정경기를 치르는 팀은 월요일에 원정도시로 이동한다. 팀 사정과 거리에 따라 오전에 훈련을 한 뒤 오후에 이동할 수도 있고, 아니면 휴식을 취한 뒤 점심 때쯤 이동할 수도 있다. 한화 1군 선수들은 휴식을 취한 뒤 대전에서 천천히 이동했다. 원정숙소인 인천 로얄호텔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6시쯤. 여장을 풀고 저녁 식사를 하기 딱 좋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김 감독은 선수들과는 다른 일정으로 움직였다. 대단히 바쁜 하루였다. 아침 9시부터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 나가 어린 투수들을 가르쳤다. 최우석과 조영우, 김정민. 김강래 등 2군 투수들을 불펜에서 붙잡고 움직일 줄 몰랐다. 김 감독은 이날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나도 투수 한 명만 쓰면서 야구하고 싶지. 지금이야 살림이 그렇게 안되니까 별 수 있나. 밖에서 자꾸 '혹사'라고 하는데 그런 말 안들으려면 잘 만들어봐야지. 2군의 어린 투수들 중에서 썩 괜찮은 아이들이 많아. 계속 다듬어볼 만 해"라고 했다. 육성은 김 감독의 또 다른 숙제다.


3시간이 넘도록 투수 지도에 매달린 김 감독은 오후 1시쯤 불펜에서 나왔다. 그리고 이날 처음 팀에 합류해 훈련을 한 새 외국인 타자 제이크 폭스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타격 훈련 장면은 불펜 안에서 어린 투수들을 지도하느라 보지 못했다.

그렇게 한나절을 분주하게 보낸 김 감독은 홀로 인천 숙소로 향했다. 김 감독은 이날 스포츠조선과의 통화에서 "인천에 간다고 해서 뭐 다를게 있겠나. 똑같이 경기를 하러 가는건데. 특별할 것 없다"고 했다. 그 말대로 김 감독은 숙소에 도착한 뒤 방에서 조용히 다음날 경기 준비에 임했다고 한다. "긴장해서 조용히 방안에만 있었지."라면서 껄껄 웃었다. 원정 숙소 방안에서 김 감독이 하는 일은 뻔하다. 수북히 쌓인 분석 자료 및 데이터와 씨름하는 일. 보고 또 보고. 그러고 나서도 또 본다. 인천에서의 첫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둘째 날 : 산, 인하대, 그리고 문학 야구장

19일 아침. 결전의 날이 밝았다. 이제는 옛 홈구장에서 옛 제자들을 적으로 만나 승리를 따내야 한다. 김 감독은 늘 그렇듯 아침 일찍 일어났다. 그는 '패턴'을 중요하게 여기는 감독이다. 좋은 흐름을 타고 있을 때의 생활 루틴을 유지하려고 한다. '징크스'로 볼 수도 있다.

김 감독은 이날도 아침부터 일정한 루틴에 따라 움직였다. 흥미로운 점은 과거 '원정팀 감독'으로 인천에 왔을 때의 루틴을 반복했다는 것. 그는 "예전에 원정경기를 하러 인천에 왔을 때와 같은 숙소(로얄호텔)더라. 그때 아침에 숙소 뒷산을 올랐었는데, 오늘도 아침에 산에 갔었다"고 밝혔다. 김 감독이 말한 "예전"은 2002년을 말한다. 당시 그는 LG 트윈스 사령탑으로 인천에 와 원정경기를 치르곤 했다.

가벼운 산행으로 땀을 흘린 김 감독은 숙소에서 식사를 하며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이번에는 인하대학교 야구장으로 향했다. 한화가 원정경기에서 늘 반복하는 '특타 훈련'이 이뤄지는 장소다. 이번에는 2군 투수들까지 와서 훈련을 했다. 전날 김 감독이 지도를 한 조영우와 최우석을 포함해 김민우와 오매불망 기다리는 마무리투수 윤규진까지 투구 훈련을 했다.

오후 2시부터 이뤄진 투수조 훈련을 참관한 김 감독은 오후 3시부터는 이성열과 송주호 이종환 강경학 김회성으로 구성된 특타조 훈련을 지도했다. 선수들의 타격 포인트 등을 세세히 지도한 뒤에 오후 5시쯤에야 인천 행복드림구장으로 들어섰다. "길 안잃고 3루 덕아웃으로 잘 찾아왔다"며 농담을 한 김 감독은 "여기(문학야구장)는 변한 게 없는 것 같다. 감회가 새로울 건 없다. 그저 경기를 하는 것이니 긴장하고 있다"고 했다. 평소와 같은 표정, 말투다. 노장은 끝내 깊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경기는 결국 SK의 7대5 승리로 끝났다. 한화는 7회 이후 4점을 뽑으며 특유의 '마약야구' 분위기를 만들었지만, 끝내 역전에는 실패했다. 앞서 홈 3연전에서 SK를 상대로 3연승한 김 감독의 첫 SK전 패배이자 4년 만의 인천 복귀전 패전이다. 패장의 속쓰림을 안으로 갈무리한 채, 김 감독은 "수비에서 무너졌다"는 소감을 남겼다. 인천에서의 둘째 날은 이렇게 씁쓸히 저물었다.


인천=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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