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분석] 권혁을 아프게 하면 안되는 두 가지 이유

기사입력 2015-06-09 12:10


돌아서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아찔한 순간'이었다. 올해 프로야구판에 신선한 활력을 밀어넣고 있는 한화 이글스가 고꾸라질 수도 있던 위기. 그래서 두 번 다시는 나와서는 않아야 할 장면이다. 더불어 '그 장면'을 막기위한 대책 마련이 앞으로 한화 야구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어야 한다. 한화 좌완투수 권 혁이 아파서 못 던지거나 갑자기 교체되는 장면. 절대 반복되어선
7일 오후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 파크에서 2015 프로야구 KT와 한화의 경기가 열렸다. 7회초 2사 2루서 한화 권혁이 교체되고 있다.
대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06.07.
안된다.

지난 7일, 하나의 해프닝이 있었다. 이날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린 한화와 kt 위즈의 경기에서 6회초 2사 1루 때 팀의 세 번째 투수로 나온 권 혁이 7회초 2사 2루 때 갑자기 교체된 것. 허리 통증이 생긴 까닭이다. 결국 권 혁은 교체됐고, 부상 의혹을 자아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다음날 병원 검진 결과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근육이 뭉치고 경직되어 생긴 통증이라는 병원의 해석.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은 현 상태에서느 최선의 결과다. 근육통 증세만 잘 잡으면 곧바로 정상 컨디션과 구위를 회복할 수 있기 때문.

하지만 단순히 '다행이다'는 식으로 넘어가선 안된다. 불조심이나 혹은 전염질환 관리체제처럼 '권 혁 부상방지'도 지금 한화에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미리 주의를 하는 게 그러지 않는 편보다 100배 이상 낫다. 명확한 이유가 있다.

팀 전력 구성이 흔들린다

권 혁이 아파서는 안되는, 그리고 아프게 해서는 안되는 첫 번째 이유. 가장 기본적이자 핵심적인 명제는 바로 권 혁이 현재 한화 전력의 핵심이라서다. 시즌 초반부터 권 혁은 숨가쁜 강행군을 이어왔다. 비상전시체제였기 때문이다. 초반 한화 선발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부진했다. 둘 중 하나다. 일단 아프거나 아니면 못하거나.

그럼에도 한화는 늘 천신만고 끝에 5할 승률을 지켜왔다. 그 원동력, 상당부분 권 혁에게서 비롯됐다. 기본적으로 윤규진의 4월초 어깨 부상 이탈 이후 팀의 필승 마무리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마무리만' 한 건 아니었다. 중간계투로도 나왔고, 긴 이닝도 소화했다. 주3회 등판은 예사로운 일이었다.


2015 KBO리그 롯데자이언츠와 한화이글스의 경기가 31일 울산 문수야구장에서 열렸다. 한화 선발 송은범이 롯데 4회말 2사후 황재균에게 솔포홈런을 허용하고 있다.
울산=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5.31/
그만큼 잘 던졌다. 말하자면 '제2의 전성기'같은 시간. kt전까지 34경기에 나와 평균자책점 3.33에 4승5패 10세이브 3홀드. 무려 51⅓이닝을 던졌다. 철저한 불펜 운용 계산, 그리고 매번 선수의 컨디션에 대한 점검을 거쳐 기용했다고는 해도 객관적으로 권 혁이 많이 던졌다는 건 사실이다. 이런 권 혁의 역할이 없었다면 한화는 진작에 승률 5할 밑으로 곤두박질 쳤을 것이 확실하다.

이런 상황에서 권 혁이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빠진다면 당장 엄청난 전력 감소가 예상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최근 한화 마운드에 또다른 변수가 등장했다. 그래서 더 권 혁의 역할이 중요해졌고, 그런 면에서 만에 하나 생길 수 있는 '권 혁의 부상'을 더욱 방지해야 하게 됐다. 바로 선발진 일시 개편이 그 변수다. 시즌 초부터 계속 부진을 벗어나지 못하는 선발 송은범을 김 감독이 2군으로 보냈다. 당연한 선택일 수 밖에 없다. 송은범의 부진을 떠안고 가다간 팀이 망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이로 인해 당장 선발의 한 자리에 구멍이 생겨버렸다. 김 감독은 일단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고 한다. 가장 현실적은 방안은 불펜 송창식의 일시적인 선발 전환이다. 팀내 불펜 중에서 긴 이닝을 안정적으로 던져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투수이기 때문. 선례도 있다. 불펜에서 출발한 안영명은 현재 팀의 선발 요원으로 뛴다. 만약 권 혁이 부상으로 진짜 빠지게 될 경우 송창식이 나서는 게 가장 합리적 선택이다.

그런데 이 상황이 벌어지면, 후속 조치들도 뒤따라야 한다. 일단 송창식이 빠져나간 불펜의 한 자리를 채워야 하는 것.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급하다고 아무 선수나 쓸 순 없다. 실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이미 기량이 검증된 기존 선수들의 활용폭이 더 늘어날 가능성이 커진다. 권 혁이 더 자주, 혹은 더 많이 던지는 상황이 벌어진다는 뜻. 이런 상황은 단순한 상상력의 결과만은 아니다. 현재 팀 사정을 감안하면 충분히 벌어질 수 있다. 그래서 권 혁은 지금 아프면 안된다. 한화 마운드에 패닉이 올 수 있다.

김성근 야구의 상징이다

권 혁이 아프면 안되는, 그래서 한화가 더 철저히 관리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바로 그가 '김성근 야구의 아이콘'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넥센 히어로즈와 한화 이글스의 2015 프로야구 경기가 17일 대전 한화생명 이글스파크에서 열렸다. 10회말 2사 만루 한화 강경학이 밀어내기 볼넷으로 경기를 끝냈다. 9회부터 나와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승리투수가 된 권혁이 김성근 감독과 악수를 나누고 있다.
대전=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5.05.17/
4년 만에 프로야구판에 돌아온 김 감독은 단숨에 리그의 지형도를 바꿔놨다. 파격적인 선수 기용과 특유의 '지옥훈련'을 앞세워 한화를 리그 중위권으로 이끌고 있다. 지난해까지 최근 수 년간 바닥에서 허덕이던 한화가 유쾌한 '꼴찌들의 반란'을 일으킨 셈. '김성근식 야구'에 한화 팬들은 푹 빠져들었다.

그러나 늘 찬사만 받은 건 아니었다. 분명 팀의 성적은 향상이 되고 있고, 매 경기 흥미로운 명장면이 쏟아지며 시청률과 관중 동원을 주도하지만 김 감독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그런 비난의 가장 큰 주요 이슈는 바로 '혹사 논란'이다. 성적을 위해 무리하게 선수를 혹사시킨다는 지적.

김 감독이 아무리 "팀 사정은 안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잘 안다. 지금의 한화는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말해도 '혹사'에 대한 비난은 계속됐다. 심지어 권 혁이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도 믿지 않는 분위기였다. 결국 김 감독과 권 혁은 동시에 입을 닫았다. 불필요한 비난에 일일히 대응하지 않겠다는 것. 결과로 보여주려고 했다. 그렇게 권 혁은 '김성근식 야구'의 상징이 되어갔다.

그런 상황에서 권 혁이 부상을 당하거나 해서 엔트리에 제외된다면 커다란 후폭풍이 나올 수 있다. 혹사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김성근의 야구'가 결국 핵심 선수의 부상으로 이어졌다는 비난이 예상된다. 사실 관계의 명확성을 떠나 이런 말이 나오면 것 자체가 한화에는 큰 데미지다. 아직 전력이 완전하지 않은 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실 권 혁의 허리는 이전에도 종종 아팠다. 삼성 라이온즈 시절부터 있던 증세다. 삼성에서는 그래서 권 혁을 철저히 관리했다. 허리 통증이 빨리 나을 수 있도록 재활군으로 보냈고, 재활을 마친 뒤에도 그다지 중용하지 않았다. 권 혁이 삼성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된 계기다.

결과적으로 권 혁의 일시적 허리 통증은 올해의 잦은 등판에 의해 최초발생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봐서도 안된다. 단순 근육통이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이건 몸이 보내는 일종의 사인일 수도 있다. 삼성 시절 권 혁의 발목을 잡았던 허리 부상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사인이라고 봐야 한다. 때문에 더 철저히 관리할 필요가 있다. 다소간의 성적 하락을 감소하고라도 지금은 일단 권 혁을 조심스럽게 다뤄야 하는 시기다. 권 혁이 쓰러지면 '김성근 야구'도 휘청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원만 기자 wman@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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