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KBO리그 kt위즈와 두산베어스의 경기가 2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렸다. 두산 5회초 1사 2루에서 홍성흔이 민병헌을 불러들이는 1타점 적시타를 치고있다. 수원=최문영 기자 deer@sportschosun.com /2015.08.23/
타율 2할5푼2리 4홈런 29타점. 두산 베어스 베테랑 홍성흔이 22일까지 기록하고 있던 성적. 이 성적이라면 한 팀의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하기에는 벅차다. 수비는 하지 않고 오직 방망이로 보여줘야 하는 자리. 홍성흔 스스로도 "이런 성적의 타자를 어떻게 지명타자로 쓰나"라고 자책했다.
38세. 많은 나이에도 홍성흔 야구에는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는 듯 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 화끈한 방망이 실력을 과시했고, 2년 전 친정 두산으로 넘어와서도 지명타자는 그의 몫이었다. 하지만 올해 위기가 찾아왔다. 7월 초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에서 말소됐다. 큰 부상이 아니었는데도 돌아오는데 1달이 걸렸다. 좋지 않은 타격감 때문에 긴 휴식 시간이 주어졌다. 그리고 몇 경기 뛰지 못하고 8월 9일 또다시 1군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더 큰 충격이었다. 당시 김태형 감독은 "부상 선수가 많은 가운데, 수비에 활용이 어려운 홍성흔이 뭔가 대단한 반전을 이끌 정도가 아니면 출전시키기 힘들다"고 솔직히 말했다.
그리고 절치부심 다시 돌아왔다. 홍성흔은 "나에게는 8년 주기로 위기가 온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99년 프로 데뷔 후 2007 시즌 즈음부터 포수 대신 지명타자로 출전하는 경기가 잦아졌고, 국가대표 포수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방망이에 집중해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지명타자로 거듭났다. 홍성흔은 "두 번째 위기다. 무조건 이겨낼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만 해도 타율 3할1푼5리에 20홈런 82타점을 기록했다. 너무 급격한 성적 하락이다. 홍성흔은 이에 대해 "올시즌 유독 지명타자 자리에 대한 압박감이 컸다. 공-수 모두 좋은 후배들이 점점 늘어나니, 지명타자인 나는 어떻게든 장타로 보여줘야 한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컸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욕심은 큰 데, 잘 맞지는 않고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그래서 홍성흔은 완전히 마음을 비웠다고 했다. 21일 LG 트윈스전에서 홈런도 치고 멀티히트에 볼넷 2개를 얻어냈는데, 22일 kt전에서 삼진 3개를 당하는게 야구라고 했다. 홍성흔은 "장타도 일단 맞혀야 나올 수 있는 것 아닌가. 장타에 대한 마음을 최대한 비우기로 했다. 일단 방망이에 맞혀 팀에 도움이 되는 타격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23일 kt전에서 단타 3개를 연속해 때려냈다. 정말 힘들이지 않고 툭툭 방망이에 공을 맞혔다. 0-3으로 뒤지던 5회초 1타점 추격 적시타를 친 것도 홍성흔이었다. 5회까지 난 유일한 점수였다.
홍성흔은 "베테랑이라고 무조건 출전 기회가 주어지면 그 팀은 망가진다. 내가 못하는데 경기에 나갈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뺄 수밖에 없는 감독님의 마음도 역시 이해했다. 그래서 전혀 서운한 마음은 없었다. 후배들 응원만 열심히 하는 고참은 필요없다. 그 응원도 야구를 잘하며 해야 효과가 있다. 앞으로 남은 기간 실력으로 증명하겠다"고 설명했다.
이 와중에 홍성흔이 왜 팀 스포츠에 어울리는 선수인지 보여준 장면이 있었다. 3안타를 친 건 중요하지 않았다. 팀이 1-6으로 밀리던 7회초. 1사 1루 상황. 홍성흔이 4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크게 지고 있는 순간 어떻게라도 장타를 터뜨려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싶은 마음이 컸을 것이다. 2B2S. 몸쪽 낮은 공이 왔다. 눈에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확실한 볼이었다. 이 공만 골라내면 풀카운트에서 제대로 상대 투수와 승부해볼 수 있었다. 그런데 홍성흔은 꿈쩍하지 않고 눈을 질끈 감았다. 왼쪽 무릎을 공이 스쳤다. 무릎 주변에 공이 맞으면 큰 부상 가능성을 떠나 정말 아프다. 공에 맞은 홍성흔은 구심에게 사구 여부를 확인하고 열심히 1루로 뛰어나갔다. 5점 큰 점수 차이지만 추격의 발판을 마련하고픈 의지의 표현. 홍성흔이 전한 메시지가 덕아웃에 전달된 효과였을까. 경기 내내 무기력하던 두산 선수들은 미친 듯이 방망이를 휘두르며 7회 대거 8득점, 경기를 뒤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