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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현은 결승전에서 완벽했다.
그러나 결정구 슬라이더의 위력은 최고였다. 여기에는 포수 양의지의 조력이 함께 빛을 발했다. 양의지는 김광현의 명품 슬라이더의 위력을 잘 알고 있었다.
사실 김광현의 주무기인 슬라이더는 알고도 효과적으로 공략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워낙 까다로운 구종이다. 김광현의 릴리스 포인트는 매우 높다. 위에서 찍어 누르듯이 던진다.
냉정하게 보면 타자들에게 위압감을 주지만, 제구의 불안이라는 '양날의 칼'을 가지고 있는 역동적인 투구폼이다. 특유의 투구 모션은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명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보통 슬라이더는 횡으로, 포크볼이나 커브볼은 종으로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옆으로 휘면서 아래로 떨어진다. 슬라이더 특유의 회전 때문에 옆으로 휘고, 높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나오는 투구폼 때문에 아래로 떨어진다.
때문에 김광현의 슬라이더는 낯선 국제무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김광현은 리드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경기력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패스트볼과 슬라이더의 두 구종에 체인지업과 커브를 간간이 섞어 던진다. 때문에 승부처에서 집중타를 맞을 가능성이 올라간다. 이 때문에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김광현이 일찍 위기에 몰릴 것에 대비 "이대은을 제외한 모든 투수를 대기시켰다. 장원준도 예외는 아니다"라고 했다.
슬라이더, 패스트볼, 그리고 슬라이더
출발부터 예감이 좋았다. 빠른 발로 유명한 미국의 리드 오프 메이. 그는 143㎞ 가운데 초구 패스트볼에 반응했다. 평범한 내야 플라이. 김광현의 역동적인 투구 폼 때문에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2번 소토에게도 연속 5개의 패스트볼을 던졌다. 소토는 143㎞ 가운데 패스트볼을 통타, 좌전 안타를 만들어 냈다.
2사 1루 상황에서 요주의 인물 4번 맥브라이드가 나왔다. 이때부터 양의지는 김광현의 슬라이더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다. 5개의 공 중 4개가 슬라이더였다. 2B 1S 상황에서 135㎞의 슬라이더가 가운데 몰렸다. 맥브라이드는 스윙했지만, 파울. 또 다시 양의지는 몸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요구했고, 헛스윙 삼진.
2회 주자 없는 상황. 타석에는 스클라파니. 이번에는 역이용을 했다. 풀카운트에서 6구와 7구 모두 몸쪽 슬라이더를 던졌다. 스클라파니는 모두 파울을 쳤다. 그리고 8구째 141㎞ 패스트볼이 타자 바깥쪽 높은 곳에 꽂혔다. 그대로 스탠딩 삼진. 1회 맥브라이드 타석부터 슬라이더의 비율을 높인 한국의 배터리. 그 부분을 숙지하고 있었던 스클라파니는 역배합에 완전히 당했다.
이날 김광현의 제구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2사 이후 미국의 테이블 세터진 메이와 소토에게 연속 안타. 모두 가운데 몰린 슬라이더였다.
그리고 3번 프래지어의 타석. 1B 1S에서 연속 3개의 슬라이더를 던졌다. 이때의 과정이 매우 좋았다. 3구째 슬라이더는 타자 바깥쪽으로 떨어지는 볼. 그리고 좀 더 각도를 크게 한 슬라이더가 가운데 스트라이크 존을 통과했다.
2B 2S에서 김광현과 양의지 배터리는 또 다시 135㎞의 슬라이더를 가운데서 바깥쪽으로 떨어뜨렸다. 결국 프래지어는 헛스윙 삼진.
4회 선두타자 맥브라이드가 128㎞ 낮은 슬라이더를 제대로 걷어 올렸다. 2루타가 됐다.
경기 전 양의지는 "매 이닝 볼 배합을 바꿀 지, 3회까지 가다가 4회부터 볼 배합을 바꿀 지는 그때그때 결정하겠다"고 했다. 7-0으로 넉넉한 리드를 하고 있었지만, 한국의 배터리는 추격의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 볼배합을 다시 변화시켰다. 패스토니키에게 5개의 공을 던졌는데 130㎞ 후반대의 패스트볼 4개와 슬라이더를 던졌다. 강약조절로 더욱 미국 타선의 혼란을 가중시켰다. 결국 투수 앞 땅볼. 패스토니키는 수비방해로 아웃됐다.
이후, 김광현은 댄 블랙에게 2개의 슬라이더를, 스클라파니에게 2개의 패스트볼을 던지면서 범타처리했다.
결국 김광현은 좋지 않은 컨디션에도 5이닝을 완벽히 막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투구수는 72개. 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김광현의 슬라이더의 가치를 정확히 활용한 양의지의 포수리드는 김광현에게 날개를 달아줬다. 도쿄돔=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