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어진 태극기 세리머니', 한국야구 자신감의 증거

최종수정 2015-11-22 00:10

21일 오후 일본 도쿄돔에서 프리미어 12 결승전 미국과 한국의 경기가 열렸다. 미국을 꺾고 우승을 차지한 한국 선수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도쿄=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5.11.21.

결국 '태극기 세리머니'는 없었다.

한국 대표팀이 프리미어 12 초대 챔피언이 됐다. 조상우의 삼진으로 경기가 끝나자, 포수 강민호와 투수 조상우는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덕아웃에서 선수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그리고 3루 베이스 쪽으로 도열, 경기내내 응원을 아끼지 않은 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선수들은 일제히 마운드 쪽으로 몰려 김인식 감독을 헹가래했다.

일본야구의 심장부 도쿄돔에서 이룬 쾌거다. 한국 야구사의 역사를 새로 썼다. 성인 국가대표팀이 세계무대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처음이다.

하지만, 한국 야구의 상징적인 세리머니인 '태극기 세리머니'는 없었다.

대표팀 주장 정근우는 경기 전 "후배들이 우승할 경우 세리머니를 위해 태극기를 준비하려 하길래, '그러지 말자'고 말렸다"고 했다.

4강에서 한국은 짜릿한 역전승을 거뒀다. 9회말 0-3으로 뒤지고 있다가, 대거 4득점 전세를 뒤집었다. 끝내 4대3으로 승리를 거뒀다.


정근우는 "적지인 도쿄돔에서 괜히 일본 팬을 자극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경기에 이기면 되지, 괜히 세리머니를 요란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적지에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킨 것이다.

사실 일본 도쿄돔은 일본 야구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일본 최초의 돔 구장으로, 일본프로야구의 명문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홈 구장이기도 하다.

미묘한 문제다. '태극기 세리머니'는 대표팀의 상징과도 같다. 2006년 1회 WBC 대회에서 일본을 물리친 뒤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타디움 마운드에 서재응이 태극기를 꽂으면서 시작된 이 세리머니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우커숑 야구장에서 또 다시 재연됐다. 그리고 2009년 WBC에서 일본을 4대1로 누른 뒤 또 다시 펫코 파크 마운드에 태극기 세리머니를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도쿄돔에 태극기를 꽂는 다는 것은 관점에 따라 상징적인 사건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도를 지나친 면이 많다.

실제 태극기 세리머니 이후 일본 대표팀의 한-일전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자극을 준 것이다. 정근우는 "실제 태극기 세리머니 이후 일본 대표팀이 자극을 받은 부분이 있다"고 했다.

도쿄돔에 태극기 세리머니를 한다면, 사실상 자극제를 넘어선 '야구 전쟁'의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다.

정근우는 "스포츠는 항상 승패가 결정된다. 스포츠에서 끝나야 한다"고 했다. 즉, 그라운드 밖에서 미묘한 문제로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결국 프리미어 12 우승을 한 뒤 한국 대표팀은 스스로 태극기 세리머니를 자제했다. 실제, 준결승전에서 일본을 극적으로 이기고 난 이후에도 최대한 상대를 자극하지 않은 채 자축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절제의 미덕'은 그만큼 한국 야구가 많이 성숙, 발전했다는 의미다. 이젠 일본전에서 승리를 거두는 것이, 그리고 도쿄돔에서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 '너무나 특별한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되짚어보면 그만큼 한국 야구의 자신감이 커졌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결국 한국 대표팀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서 우승의 기쁨을 표출했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을 헹가래했다. 하지만, 적지에서 결례를 범하진 않았다.

주장의 결정은 올바랐다. '상대를 존중하는 법'을 실천하면서, 한국은 프리미어 12 우승을 축하받을 수 있는 당당한 자격을 갖췄다. 도쿄돔=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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