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25세 정재훈 vs 2016년 36세 정재훈

최종수정 2016-04-26 11:29

신인 시절 정재훈(왼쪽)의 모습과 올 시즌 필승조에 속해 공을 뿌리는 피칭 모습. 스포츠조선 DB.

돌아와보니 까마득한 후배들뿐이다. 개막 엔트리를 보니 투수조, 야수조를 통틀어 최고참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어느덧 프로 14년차다. 두산 베어스 정재훈(36) 이름 앞에 베테랑 수식어가 따라 붙은 지도 꽤 됐다.

한 창 때는 직구, 포크볼 두 가지 구종이면 됐다. 오른손, 왼손 상대를 가리지 않고 과감히 들어가는 몸쪽 승부는 그를 세이브왕으로 만들었다. 특출난 신체조건(1m78·83㎏)은 아니지만 부드러운 폼에서 나오는 묵직한 구위. 140㎞ 중반대의 직구를 아주 쉽게 뿌렸다.

지금은 아니다. 그 폼, 그 패턴, 그 포커 페이스, 그 배짱은 여전하지만 스피드가 8㎞ 가까이 줄었다. 강산이 변한만큼 그의 몸도 달라진 결과다. 정재훈도 "투수라면 늘 김광현(SK 와이번스)처럼 강속구를 뿌리고 싶어 한다. 지금 나도 그랬으면 좋겠다"면서 "나이가 들면서, 또 친정팀으로 돌아오면서 부담감이 줄었다. 요즘 팀이 잘 나가면서 힘든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2005년 25세 정재훈

일주일 5경기 등판해도 끄떡없는 시절이었다. 구위도, 몸도 쌩쌩했던 20대 중반이었다. 성균관대 시절 4년간 13승3패 평균자책점 1.88을 기록한 유망주. 입단 3년 차인 2005년 단숨에 클로저 임무를 맡았다. 당시 코치였던 김태형 두산 감독은 "직구 볼 끝도 좋고 포크볼도 위력적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곳에 공을 던질 줄 아는 투수였는데, 손민한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국내 전문 마무리 1호 투수인 윤석환 선린인터넷고 감독도 "직구 스피드가 145㎞면 충분했다. 워낙 제구력이 좋았다"며 "좋은 포크볼이 있어 굳이 150㎞ 직구를 던질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는 처음 팀 뒷문을 책임지자마자 일을 냈다. 51경기에서 30세이브를 거두며 '초짜' 마무리가 타이틀을 가져갔다. 당시 그는 "운이 좋았을 뿐이다. 내 공이 만만해 타자들이 덤비다가 당한 결과"라고 했지만, 팀 내에서는 '배짱이 남다르다. 똑똑하다'는 평이 나왔다. 주자 위치에 따라 포크볼 잡는 손가락 간격을 달리 가져가는 등 소위 게임을 풀어나갈 줄 아는 투수였다. 또 이듬해부터는 커브를 장착, 현실에 안주하지도 않았다. 타자를 헷갈리게 할 무기를 끊임없이 연구했다. 결과는 2006년 38세이브. 그는 오승환이 2011~2012시즌 28경기 연속 세이브 기록을 세우기 전까지 2005~2006시즌 15경기 연속 세이브로 이 부문 기록을 보유했다.


2005년 세이브 왕에 오를 당시 정재훈의 모습. 포수는 홍성흔이다. 스포츠조선 DB.
2016년 36세 정재훈

25일 현재 11경기에서 6홀드 0.54의 평균자책점을 찍고 있다. 캠프 때만 해도 김태형 감독 머릿속에 없던 투수가 200% 활약을 펼치고 있다. 그런 그에게 최근 '2005년 때는 어땠냐'는 질문을 했다. 올 시즌 투구 패턴과 무엇이 다른지 궁금했다. 돌아온 대답은 "워낙 오래전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혹시 10년 전 일을 기억하시냐"는 농담이었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일주일에 5세이브를 거뒀고, 자고 일어나면 몸이 아무렇지도 않던 시절이었다. 스피드도 지금보다 훨씬 빨랐다"는 답이 돌아왔다. 또 "구위에는 자신 있었지만, 어렸기 때문에 '오늘 못 막으면 인생 끝나는구나'라는 초조함을 느꼈다"고 했다.


김태형 감독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더 센 농담이 날아왔다. "정확히 10㎞가 느려졌죠." 하지만 김 감독도 "예전에는 안 던졌던 커터를 던 진다. 안정감 측면에서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똑같다"며 "워낙 손 끝 감각이 좋은 투수다. 금방 배우고 금방 써먹는다"고 했다. 또 "오늘 이 공이 좋다 싶으면 그 구종 위주로 피칭을 한다. 다만 몸 상태가 관건인데, 체력 관리를 해줘야 한다. 본인이 '괜찮다'고 해서 내보내고 있지만 연투나 투구수 조절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재훈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캠프 때 후배들 훈련 스케줄을 따라가지 않고, 알아서 페이스를 끌어올린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운동할 때말고는 저절로 축 늘어진다"면서 쉬는 게 유일한 답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초조함', '부담감'에 대해 논했다. 3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생긴 변화다. 정재훈은 "지금이 세이브 타이틀을 가져갔을 때보다 좋은 것 같다. 마운드에서 불안감이 들지 않는다"며 "전광판에 찍힌 스피드는 뚝 떨어졌고 1년 전보다 공이 느려진 기분이지만, 전력 피칭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개인 성적은 물론 팀도 잘 나가니 힘든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그는 이어 "불펜 투수라면 누구나 코칭스태프에 인정받아 타이트한 상황에서 등판하길 원한다. 지금은 상대 타자들이 '이 상황에 나오는 투수 공이 이렇게 느린가?' 하는 느낌 때문에 못 치는 것 같다"면서 "작년 우승을 통해 다들 여유가 생겼다. 후배들에게 특별한 조언을 해주기보다는 섞여서 간다는 느낌으로 남은 긴 시즌 잘 치르겠다"고 했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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