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응원단장이 전하는 관중석 분위기 "우리 팬들은 착하다"

기사입력 2016-04-28 13:10


한화 이글스 경기 때 꼭 빠지지 않는 응원이 있다. 8회가 되면 관중석의 팬들이 일제히 기립해 두 손을 허리에 대고 절도있게 박자를 맞춰 "최·강·한·화"를 목청껏 외친다.(대전 홈경기 때는 8회말, 원정 때는 8회초 공격 때 진행되는 응원이다) 그런데 이 응원이 은근히 중독성이 있는 모양이다. 경기장 전체 분위기를 끌어오면서 공명을 일으킨다. 지난 몇 년간 한화는 '가을야구'도 못했고, 더군다나 '최강'이었던 적도 없다.

지난해 살짝 '가을야구'의 희망을 보여주긴 했지만, 이글스는 꼴찌 단골팀이었다. "최·강·한·화"를 외치면서 일부 팬은 1980년 후반~1990년대 초반 당대 '최강' 해태 타이거즈에 맞섰던 빙그레 이글스, 1999년 우승팀 이글스, 3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던 2000년대 중후반의 '그 팀'을 떠올렸을 것이다. 아니면 현실로 돌아와 매일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고 있는 불펜이 무탈하고, 김태균이 홈런을 때려 연패를 끊어주기를 기원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최·강·한·화"에는 지금 '최강'은 아니지만, 언젠가 '최강'이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있다.

올해도 "최·강·한·화"는 비현실적이다. 지난 3년간 선수 보강에 500억원에 가까운 돈을 쏟아부었는데도, 한화는 '최강'이 아닌, '압도적인 꼴찌'다. 기대가 무너져 팀 전체가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동안 성적에 묻혀 있던 김성근 감독의 독선, 불통의 리더십이 도마에 올랐다. 하지만 한화 팬들의 응원은 계속되고 있다. 요즘 상황을 보며, '감독 김성근'이 아닌 '팀 한화' 선전을 열망하는 응원이다.


홍창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이 대전구장 응원단상에서 응원을 이끌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누군가 한화 팬을 '보살팬'이라고 했다. 참혹한 성적에 상처받지않고 한결같은 마음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또 최악의 부진 속에서 응원을 이끌어야하는 한화 응원단장직을 '극한직업'이라고 했다. 팬과 최전선에 마주하고 있는 홍창화 한화 응원단장은 올시즌 한화를 어떻게 체감하고 있을까. 그는 2006년 한화와 처음 인연을 맺어, 2008년 한해를 빼곤 줄곧 이글스와 함께 해 왔다. 지난 10년간 한화가 걸어온 길을 응원단상에서 지켜본 셈이다.

지난 주말 잠실구장에서 벌어진 김성근 감독 퇴진을 요구하는 현수막 소동. 잠실구장 주차장 근처에서 일부 팬들 사이에서 현수막을 놓고 충돌이 있었는데, 홍 단장은 우연히 이 장면을 보고 달려가 싸움을 말렸다고 했다. 아직까지는 일부이긴 해도, 감독 퇴진 요구가 나올 정도로 팀 분위기가 안 좋다. 김성근 감독을 열성적으로 반기고 지지를 보냈던 한화팬들이 많이 돌아섰다. 대전 홈구장 관중도 지난해보다 많이 줄었다. 지난 26일 KIA 타이거즈전까지 9경기에 평균 7640명이 입장했다. 지난해 평균 9130명에서 1500명 정도가 빠졌다. 그렇다고 응원 열기까지 사그라든 것은 아니다.

홍 응원단장은 "기대가 워낙 컸는데 부진해 관중석 분위기가 조금 가라앉은 건 사실이다. 하지만 관중석에서 팀을 비난하거나, 감독 욕하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우리 팬들은 의리가 있고 착하면서, 점잖은 것 같다. 다른 팀이었다면 많은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고 했다.

감독에 대한 불신을 쓸쩍 내비치는 팬들은 있다. 온갖 상황에서 등판해 혹사 논란의 중심에 섰던 송창식이 나오면 관중석에서 "또 송창식이냐"는 탄성이 흘러나온다. 잦은 투수 교체 때마다 관중석 여기저기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린다. 대놓고 말을 안할 뿐이지 김성근 감독의 경기 운영에 대한 불만 표출이라고 봐야할 것 같다.


한화 이글스 홍창화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들이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 사진제공=한하 이글스
응원단장과 치어리더는 팀이 부진할 때도 관중석에서 분위기를 끌어올려야 하다. 그만큼 성적이 안 좋으면 힘든 일이 되고 만다. 몇 년전에 개막전부터 13연패를 당할 때도 한화 팬들은 "나는 행복합니다"를 불렀다. 지난해 한때 중상위권을 달려 '진짜 행복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는데, 후반기들어 무너졌다.


요즘 한화는 전국구 최고 인기팀 대접을 받는다. 올시즌 원정경기 관중동원력에서 한화는 KIA 타이거즈, 롯데 자이언츠, LG 트윈스를 앞선다. KIA와 롯데, LG가 1만~1만2000명에 그쳤는데, 한화는 1만5000명이 넘는다. 잠실구장 원정경기를 보면, 원정팀 한화쪽 관중이 절반을 넘을 때가 있다. 대전 홈 관중과 잠실구장 등 원정 관중들의 반응이 조금 다르다고 한다.

홍 단장은 "잠실 원정 때 팬들의 열기가 더 뜨겁다. 함성도 더 크고 더 적극적이다. 홈 팬들만큼 자주 경기를 접하지 못하다보니 그런 것 같다"고 했다. 한화는 지난 1~2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개막 2연전 모두 연장 끝내기 안타를 맞고 졌다. 서울팬들이나 응원단상의 응원단장, 치어리들에게는 다시 떠올리고싶지 않은 악몽이었다.

올해 가장 짜릿했던 순간은 26일 KIA전 2회 김태균의 선제 홈런. 지난 주말 두산 베어스와의 주말 경기 때부터 김태균 타석 때 홈런을 외쳤다. 그런데 두산 3연전에서 12타수 무안타. 26일 2회 첫 타석 때도 "김태균 홈런"을 외쳤는데, 거짓말처럼 시즌 첫 홈런이 나왔다. 4대2 승리로 이어진 한방이었다. 선수가 힘을 내면 팬도 응원단장도 신이 난다.


홍창화 한화 이글스 응원단장이 최악의 부진에 빠진 요즘 관중석 분위기를 설명하고 있다. 사진제공=한화 이글스
응원단상에서 그가 지켜본 최근 몇 년간 최고의 경기는 지난해 4월 25일 대전구장에서 열린 SK 와이번스전이다. 4-5로 뒤지던 한화는 9회초 1점을 내줘 4-6으로 점수차가 벌어졌다. 9회말 1점을 따라가 5-6을 만든 한화는 2사 만루 찬스를 만들었다. 김경언이 볼카운트 1B2S에서 윤길현을 상대로 끝내기 안타를 때려 역전승을 거뒀다. '갓경언' 주연의 역전 드라마를 만들었다.

응원단상에 있다보면 선수별 인기도를 체감할 수 있다. 이용규 정근우 타석 때 팬들의 호응이 좋고, 프랜차이즈 스타 김태균도 꾸준하다. 지난해부터 김경언에 대한 호응도가 높아졌다. 강경학은 인기 걸그룹 노래를 개사한 응원가가 반응이 좋다고 한다. 선수별 응원곡이 분위기를 띄울 때가 많다.

홍 단장은 "아직 144경기 중 극히 일부만 소화했다. 기다리면 치고올라갈 찬스가 올 것이다. 열심히 응원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그의 바람이 이뤄질 지 지켜보자.

대전=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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