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야구월드컵]'대부' 이광환 감독이 말하는 실상과 기업후원의 역할

기사입력 2016-08-31 01:58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9월 3일부터 11일까지 부산광역시 기장군에선 세계 여자야구의 최강국을 가리는 제법 큰 대회가 열린다. LG가 공식 후원하는 2016년 세계여자야구월드컵이다. 올해로 7회째인 이 대회가 한국에서 열리는 건 처음이다. 총 12개국 30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다. 한국은 개최국 자격으로 출전한다.

이런 의미있는 대회를 앞두고 한국여자야구의 대부 이광환(68)을 30일 만났다. 그는 2008년 우리 히어로즈(현 넥센) 감독을 끝으로 KBO리그와는 거리를 두고 있다. 그렇지만 이광환은 이번 여자월드컵에 출전하는 한국대표팀의 감독을 맡았다. 또 이미 수년째 KBO 육성위원장과 서울대 야구부 감독까지 다양한 직함을 갖고 있다.

그는 "요즘 너무 바쁘다"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이광환 감독은 한국에 여자야구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이끈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그가 발의를 해서 여자야구연맹을 만들었고, 이후 팀들이 하나둘 생겼다. LG전자가 매년 국내 대회를 후원하도록 이끌었다. 또 이번 대회를 국내로 유치해야한다고 주장했던 이도 이 감독이다. 그는 "여자야구가 20~30년 후 올림픽 정식 종목이 되어야 한다. 야구도 성차별을 없애야 한다. 지금도 야구장 관중의 절반이 여성 아닌가. 엄마들도 야구를 해야 자식들 손을 잡고 야구장으로 더 많이 데려올 것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 여자야구는 현재 걸음마 단계다. 현재 한국여자야구연맹에 등록된 팀 수는 47개이고, 등록 선수는 1162명에 달한다. 몇년 전에 비하면 아주 많이 늘어난 수치다. 이러다보니 정작 야구월드컵을 유치했지만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을 장담할 수 없는 처지다.

이 감독은 "똑같은 야구를 하는데 남자팀과는 접근법이 다르다. 야구월드컵에 나가는 대표팀이지만 제대로 합숙훈련 한번 제대로 하기 어렵다. 전체 선수가 한군데 모여 한두번 손발 맞히고 대회 경기를 해야 한다. 걱정은 태산인데 받아들여야 한다. 어떻게든 쥐어짜내야 한다"고 했다.


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이번 대표팀의 내부를 보면 우리 여자야구의 현실을 확인할 수 있다. 최종 엔트리 20명 중 소프트볼 선수가 12명이다. 야구 선수는 8명 뿐이다. 야구 선수들로만으로는 경기력이 올라오지 않아 급하게 소프트볼협회의 도움을 받아 선수 12명을 급조했다. 세계야구협회는 이미 몇 년 전 소프트볼과 단체를 합쳤다. 대한야구협회도 소프트볼협회와 통합을 진행중에 있다.

지금까지는 여자 야구 선수 보다 여자 소프트볼 선수들의 신분이 더 안정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자 야구는 아직 전국체전 종목이 아니다. 반면 소프트볼은 다수의 선수들이 시도지자체 소속이며 전국대회에 출전, 고장의 이름을 걸고 싸운다. 여자 야구 선수들의 다수가 돈을 벌어야 할 직업을 갖고 있고, 야구는 시간을 내서 할 때가 많다. 반면 소프트볼 선수들은 연봉 수천만원을 받으면서 운동을 하는 경우도 많다.

이 감독은 "상황이 이러다보니 선수들에게 강요를 할 수가 없다. 가족 일 때문에 훈련에 못 가겠다는 알려오는 선수에게 '당장 오라'는 말을 못했다. 또 소프트볼 선수들이 자체 대회가 있다고 하는데 야구 훈련을 하러오라고 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절망 보다 희망을 보고 있다. "우리의 이번 대회 목표는 조별 상위 2팀씩 총 6팀이 올라가는 슈퍼라운드 진출이다. 정말 어렵겠지만 그곳에서 살아남아 4강에 오른다면 최고의 시나리오가 될 것이다"고 말했다.

한국은 베네수엘라, 쿠바, 파키스탄과 같은 A조(풀리그)에 속해 있다. 여기서 최소 조 2위를 해야 슈퍼라운드에 간다. 3~4위를 하면 바로 하부리그 순위결정전으로 떨어진다. 이 감독은 조 2위를 하기 위해선 첫 상대 파키스탄과 두번째 쿠바를 제압해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이 감독은 한국 여자야구의 발전 가능성을 매우 높게 보고 있다. 이웃 일본은 이미 여자야구 세계 최강이다. 일본이 성공한 이상 한국 여자야구도 충분히 정상권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이다. 단 지금 처럼 LG전자 등 극소수의 기업 후원으로는 성장하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이 감독은 "국내 여자야구가 이만큼 성장하는데 LG전자의 후원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다는 걸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여기서 더 발전해서 일본 처럼 성장하려면 실업팀들이 더 생겨야 한다. 지금 처럼 국가대표급 선수들이 전국 각지에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실업팀에서 함께 생활하면서 일과 운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게 맞다"고 말했다. 일본 여자야구는 이미 프로팀, 실업팀, 대학팀 등으로 매우 다양하고 견고하게 틀을 완성했다.


노주환 기자 nogoon@sportschosun.com

:) 당신이 좋아할만한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