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을 야구는 '유격수 전쟁'인가

기사입력 2016-10-11 10:30


강정호가 2014년 삼성과의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9회 결정적인 실책을 저지른 뒤 허무한 표정을 짓고 있다. 스포츠조선 DB.

SK 김성현이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연장 11회말 평범한 내야 뜬공을 놓치고 있다. 스포츠조선 DB.

시계를 2년 전으로 돌려보자. 넥센 히어로즈와 삼성 라이온즈의 한국시리즈 5차전. 양 팀은 4차전까지 2승2패로 팽팽하게 맞섰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 앤디 밴헤켄이 포진한 넥센은 정규시즌 1위 삼성에 밀릴 게 없었다. LG와의 플레이오프도 시리즈 전적 3승1패로 간단히 끝낸 터라 분위기도 최고조였다.

상승세를 탄 넥센은 5차전도 8회까지 1-0으로 앞서고 있었다. 9회에도 마무리 손승락(현 롯데)이 아웃카운트 1개를 손쉽게 잡아내며 승리를 눈앞에 뒀다. 하지만 1사 후 나바로가 친 평범한 타구를 유격수 강정호가 놓쳤다. 송구도 못한 채 살려줬다. 그 순간, 분위기가 바뀌었다. 단 1개의 실책이었으나 양 팀 선수들 표정이 변했다. 결국 손승락은 2사 후 채태인에게 우전 안타, 계속된 2사 1,3루에서 최형우에게 싹쓸이 2루타를 내줬다. 1대2 끝내기 패배. 강정호는 6차전에서도 실책을 저질렀고 넥센은 한국시리즈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지난 10일 정규시즌 4위 LG 트윈스와 5위 KIA 타이거즈가 맞붙은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 이날도 승부는 수비에서 갈렸다. LG 유격수 오지환이 결정적인 에러를 하면서 경기를 망쳤다. 선발 데이비드 허프는 위력적이었다. 140㎞ 후반대의 몸쪽 직구, 몸쪽 낮은 곳을 파고드는 커터, 바깥쪽으로 예리하게 떨어뜨리는 체인지업으로 KIA 타자를 요리했다. 하지만 0-0이던 4회 2사 2,3루에서 안치홍의 타구를 오지환이 놓쳤다. 2루 주자 나지완에 가려 잠시 타구를 잃어버렸는데, 뒤로 물러서다 바운드를 제대로 맞히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자 2명이 모두 홈을 밟았다. 이 실점으로 LG는 경기 내내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2016 KBO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이 10일 잠실구장에서 열렸다. 4회초 2사 2, 3루 KIA 안치홍의 내야땅볼을 LG 오지환이 실책으로 놓치며 2실점 한 가운데 오지환이 주저앉아 있다.
잠실=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16.10.10/

KIA 타이거즈와 LG 트윈스의 2016 KBO 포스트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 1차전이 10일 오후 잠실야구장에서 열렸다. 8회말 KIA 김선빈이 LG 이병규의 플라이를 놓치고 있다.
잠실=김경민 기자 kyungmin@sportschosun.com / 2016.10.10.
KIA도 역시 유격수가 불안했다. 두 차례나 다이빙 캐치로 팬들을 열광케 한 김선빈이, 정작 아주 평범한 뜬공은 놓친 것이다. 4-0으로 앞선 8회였다. 무사 2루에서 LG 대타 이병규(7번)는 KIA 선발 헥터의 변화구에 빗맞은 타구를 날리자 1루로 걸어나가며 고개를 떨궜다. 진루타도 되지 못하는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뜬공 트라우마가 있는 김선빈이 놓쳤다. 좌익수 쪽으로 휘어져 나가는 타구를 뒷걸음치다가 포구하지 못했다. 무사 1,2루. KIA 입장에선 다행히 이 위기를 2점으로 막았지만, 핀치에 몰릴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돌이켜보면 최근 4년 간 가을 야구만 되면 유격수들이 결정적인 에러를 하고 있다. 당장 지난해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SK 김성현이 손쉬운 타구를 잡지 못해 눈물을 쏟았다. 당시 SK는 4-4이던 연장 11회말 2사 만루에서 박정배가 넥센 윤석민을 유격수 뜬공으로 유도했다. 볼카운트 2B2S에서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았다. 그런데 어설프게 쇄도하던 김성현이 그 공을 허무하게 떨궜다. 넥센 벤치 조차도 예상치 못한 끝내기 승리였다. 사실 이날 SK 유격수만 실책한 건 아니다. 넥센도 1-2로 뒤지던 5회 김하성이 송구 실책을 하며 1-3까지 점수가 벌어졌다. 그러나 더 결정적인 실책을 한 쪽은 SK였다. 사상 처음 도입된 와일드카드 첫 끝내기 실책의 주인공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는 2014년 강정호가 있다면 2013년 손시헌(당시 두산)이 있었다. 손시헌은 시리즈 전적 2승무패로 앞서던 3차전 명성에 걸맞지 않는 실책을 했다. 0-0이던 4회 1사 만루에서 박한이의 타구를 더듬은 것이다. 타구의 방향이나 스피드로 볼 때 유격수-2루수-1루수로 이어지는 병살 플레이가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단 번에 포구하지 못했고, 공장 넘어지면서 2루에 송구했지만, 이마저도 세이프였다. (당시 TV 중계 화면상 명백한 아웃이었으나 비디오 판독이 도입되지 않았을 때다).

결국 가을야구는 유격수하기 나름이다. 수비의 심장이 흔들리면 팀 전체가 요동치기 마련이다. 지난 10일 시작한 2016 포스트시즌도 예외 없다. 첫 판부터 유격수 플레이 하나 하나로 승부가 갈렸고, 앞으로 더 자주 유격수에게 시선이 쏠릴 것이다. 유격수가 안정된 팀이 마지막에 웃는다는 건 명백한 진리다.

함태수 기자 hamts7@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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