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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깐 고민했다. '감독'으로 불러야할까, '사장'으로 해야할까. 사회 통념상 가장 높았던 직급, 마지막 직위를 쓴다. 그런데 김응용 야구학교 총감독(75)은 명쾌하게 정리했다. "사장은 딱 6년 했다. 오래한 걸로 해야지. 감독으로 불러달라"고 했다.
프로 시절 김 감독에겐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있었다. 덕아웃의 '절대 권력' 앞에서 선수는 물론, 구단까지 쩔쩔맸다. 한화 시절 마지막 2년간은 조금 달랐다고 해도, 올드팬 기억속의 김 감독은 심판 판정에 거칠게 항의 하다가 퇴장당하고, 덕아웃 의자를 발로 걷어차는 '무서운 호랑이'이다. 70대 중반의 '전설'이 이제 손자뻘 아이들과 함께 한다. 유소년 야구 육성에 나선 야구학교 팀 블루 팬더스의 총감독을 맡았다. 감독-사장-감독을 거쳐 어린이 야구단 총감독으로 야구와 인연을 이어간다.
지난 14일 성남시 분당 투아이센터에서 만난 김 감독은 이웃집 할아버지 자주 너털 웃음을 터트렸다. 치열했던 승부 세계를 떠난 그는 편안해 보였다. "50년 가까이 전쟁치르듯 살다가, 책임을 내려놓으니 살 것 같다"고 했다. 70대 김성근 한화 감독, 김인식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 대표팀 감독은 현역으로 있지만, 김 감독은 "돈 싸들고 와서 감독 해달라고 해도 안 한다. 마지막 2년간 한화 감독 하면서 진이 다 빠졌다. 의욕상실이다"고 했다.
김 감독은 총감독직을 제안받고 먼저 급여없이 무보수로 봉사하겠다고 했다. 그는 "감독, 사장하면서 한 번도 계약금이고 연봉이고 구단에 얼마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주는 대로 받았다. 그러고보면 나는 진짜 프로가 아니었어"며 또 웃었다.
-2014년 말 한화 이글스를 떠난 후 2년이 흘렀습니다. 옛 '해태 제자들'을 자주 만나신다고 들었습니다.
푹 쉬었지. 뭐 있나. 제주도에 아는 친구랑 함께 (유소년)야구장을 만들고 있어. 한화 가기 전에 경기도에 야구장을 만들려고 했는데, 동네 주민들이 반대해 못 만들었고. 그동안 놀고 있는 친구들 많이 만났지. (이)순철이, (한)대화, 양승호, 선동열 이런 친구들을 자주 만났어. 한달에 한두번 정도 보나.
-30년 넘게 프로 감독, 사장을 했는데, 선수 육성, 유소년 야구를 구상했나요.
예전부터 야구장 만들어서 놀이터로 만들고 싶었지. 애를 썼는데, 잘 안 되더라고. 은퇴 후 리틀야구 따라다니면서 경기를 많이 봤어요. 용인시에 리틀야구팀 3개가 있거든. 이런 게 재미있어. 책임지는 거 이제 싫어. 편하게 아이들 야구하면서 노는 걸 보는 게 좋지. 50년 가까이 책임지는 역할을 했잖아. 그때는 전쟁이나 마찬가지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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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가 최고의 인기 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지만, 저변은 여전히 빈약한 것 같습니다.
다들 프로같이 하려고 해서 그래. 장비도 그렇고, 해외전지훈련도 그렇고, 돈 드는 야구를 해서 그렇지. 일본처럼 돈 안드는 야구를 해야 하는데. 혼자서 얘기해봐야 소용 없겠지만, 내가 볼 때 그런 느낌이 들어요. 중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을 만나보면, 먼저 돈 얘기부터 해요. 야구하면 돈 많이 든다, 운동하면 사고 난다, 운동선수는 사고뭉치다, 이런 생각을 하더라고. 요즘은 안 그런데, 예전 생각을 갖고 있더라고. 사고는 길을 걸어가다가도 당한 수 있는건데.
-'야구학교' 총괄감독으로서 어떤 일을 하게 되나요.
직접 나설 게 아니라 코치들 서포트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아이들 지도는 코치들이 알아서 잘 할 것이고. 코치들 애로사항 있으면 들어주고 그래야지. 물어보면 얘기 해주는 역할. 독립구단같은 걸 하면 좋겠지만 솔직히 나는 능력이 안 돼요. 여유있는 친구들이 한팀씩 맡아서 하면 좋을텐데.(김 감독은 '야구학교'로부터 총괄감독직 제안을 받자 무보수로 일하겠다고 했다. 그는 어린 선수들과 함께하는 것만으로도 좋은데, 돈까지 받아가면 되겠냐고 했다)
-아이를 선수로 키우고 싶어하는 부모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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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하면 공부 못 한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어. 운동하면 머리가 좋아질 수 있는데도 그래. 부모들이 프로선수를 목표로 운동을 시킨다는 인식을 갖고 있어. 운동하면 공부 못 하고 프로선수 밖에 할 게 없다고. 공부하면서 운동하다가 소질있으면 나중에 결정하면 되는데 말이야. 야구 시작할 때부터 '나는 프로선수하겠다'는 목표를 두면 안돼. 미국 대통령 중에 야구선수 출신이 많잖아요. 선진국에선 운동 못하면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해요.
-프로 감독 시절에 선수들에게 '잘 먹어야 한다'고 강조하셨지요. 어떻게 먹어야 잘 먹는 건가요.
프로 선수는 입이 아니라 몸을 위해 먹어야합니다. 라면, 찌개, 김치만 먹으면 힘 못 써요. 하루에 고기 한근 이상은 먹어야지. 될 수 있는대로 짜고 매운 음식은 피하고. 나는 요즘도 40~50대보다 더 많이 먹어요. (선)동열이 이런 친구보다 더 먹는다고. 잘 먹는 것도 중요하고, 운동도 중요해요. 무릎이 아파 요즘엔 등산은 못하고, 골프치고 많이 걷고 있지. 프로라면 술, 담배 하지 말아야지. 요즘 선수들은 술, 담배 많이 안 하고 잘 관리하더라고. 일주일에 4경기 하고, 한해 80경기, 90경기, 100경기 하던 예전과 다르지.
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