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산=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허 참, 하던대로 해야지. 미친 거 아니에요?"
27일 롯데-삼성전이 열린 부산 사직구장. 이날의 주인공은 늦깎이 스타 이성곤(28)이었다. 전날 5회까지 1안타 무실점의 압도적 호투를 펼치던 롯데 선발 스트레일리로부터 개인 통산 첫 선제 솔로홈런을 날리며 승리의 발판을 마련한 선수.
욱일승천의 기세는 이튿날까지 이어졌다. 또 다른 외인 투수 샘슨을 상대로 2회 첫 타석에서 초구 147㎞ 바깥쪽 높은 패스트볼을 밀어 가운데 담장 너머 텅 빈 스탠드에 떨어뜨렸다. 이틀 연속 터트린 선제 홈런.
하루 전, 아들의 데뷔 첫 홈런 소식에 "꾸준히 잘할 수 있도록 유지하는게 중요하다"는 문자로 일희일비를 견제했던 아버지에게 이틀 연속 선제 홈런포는 선뜻 믿기 어려운 소식이었다.
아들의 쇼케이스는 끝이 아니었다. 이성곤은 3회초 두번째 타석에서도 천금 같은 적시타를 날렸다. 1-0으로 앞선 2사 1,3루에서 샘슨의 133㎞ 슬라이더를 당겨 중전 적시타로 달아나는 점수를 뽑아냈다.
이성곤은 2-0으로 앞선 6회초 선두타자로 나와 2구째 145㎞ 패스트볼을 당겨 우중월 2루타를 날렸다. 이어 김동엽의 좌중 적시타로 홈을 밟아 득점을 올렸다. 승기를 이끈 초반 3득점이 모두 이성곤의 배트 끝에서 나온 셈.
시즌 2호 홈런 포함, 4타수3안타 2타점, 2득점. 3루타를 뺀 사이클링히트였다. 전날 홈런 포함, 3타수2안타 1타점에 이어 이틀간 7타수5안타, 3타점의 맹활약이었다. 어느덧 시즌 타율도 0.464에 2홈런, 6타점. OPS는 1.217에 달한다.
|
패스트볼이든 변화구든 가리지 않고 존에 들어온 공에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배트가 나온다. 전날 홈런 이후 자신감이 부쩍 붙었다. 이성곤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처음 상대하는 좋은 투수(스트레일리)라 볼카운트가 불리하기 전에 스트라이크를 놓치지 말자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 타석에서의 적극성. 환골탈태다. "초구는 타자에게 기회"라는 아버지 이순철 위원의 지론이기도 하다.
이날 경기 후 이성곤은 "상대 1,2선발이라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다고 생각했다. 특정 구종을 노리기 보다는 칠 수 있는 코스로 들어오면 적극적으로 치려 했다. 그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팀이 내게 원하는 것이 타격이기 대문에 포지션 관계 없이 능력 이하로 플레이 하지 않도록 매 순간 최선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오랫동안 기다렸던 아들의 약진. 한참 뜸을 들이던 아버지 이순철 위원은 담담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다.
"뭣이라도 해가지고, 그걸 계기로 해서 자기 인생이니까 야구를 잘했으면 좋겄네. 서른 다 됐는데 언제까지 퓨처스리그에만 있을 수도 없으니까. 지푸라기라도 잡아야지요."
평소 마이크를 잡으면 비록 아들에게도 가차 없는 독설을 날리던 프로페셔널 해설가. 아들 활약 덕분에 이틀 연속 스튜디오 촬영에 소환 당한 이 위원의 얼굴에서 미소를 완벽하게 지워내기는 어려웠다.
그 환한 표정의 아버지 모습이 아들에게도 전달됐다. "누군가 그 영상을 보내줘 안 볼 수가 없었습니다. 저도 모처럼 아버지의 밝은 모습을 봐서 참 좋았습니다."
이 이원은 "PD들이 하도 약을 올리니까. 아들이 첫 홈런 쳤는데 인상을 쓰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그냥 방송용이었어요"라며 쑥스러워 했다. 재채기 처럼 감출 수 없는 것이 바로 속 깊은 부정이다.
아들 이성곤에게 최고의 이틀이 곧 아버지 이순철 위원에게 최고의 이틀이 됐다. "아버지께서 해설하셨으면 못 쳤을 수도 있다"며 빙긋 웃는 이성곤.
자신의 출전경기에 아버지의 해설 중계를 기다리는 날이 머지 않았다.
부산=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무료로 보는 오늘의 운세
▶김민재, 진짜 유럽 가? 새 에이전트 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