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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척=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KT 베테랑 내야수 박경수(36)는 시리즈 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2003년 1차지명으로 LG트윈스에 입단했지만, 기나 긴 암흑기가 시작됐다. 팀이 아예 가을무대를 밟지 못했다.
군복무를 마친 직후인 2013년에는 하필 햄스트링 부상을 당해 출전하지 못했다.
시즌 막판 또 한번 햄스트링을 다쳤다. 눈 앞이 깜깜했다. 치료 시간이 필요했다. 후배들이 시간을 벌어줬다. 막판 불끈 힘을 내 2위로 시즌을 마쳤다.
"선수들이 2위까지 잘해줬고. 트레이닝 파트에서 굉장히 적극적으로 재활을 시켜줘서. 시즌 막판 홈경기 등록될 수 있었어요. 너무나도 감사한 마음으로 게임에 임해야죠."
인연이 없나 보다 체념했던 가을야구가 기적 처럼 박경수의 눈 앞에 펼쳐졌다.
또 다른 의미도 있었다.
코로나19 여파 속 유례 없는 한파. 직격탄을 맞은 야구도 예외는 아니었다. 줄줄이 이어지고 있는 선배들의 반 강제 은퇴 소식. 결코 남의 일이 될 수 없다. 간절하게 기다렸던 축제 첫날,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다.
"1~2년 선배들이 은퇴한다는 기사를 많이 보고 사실 마음이 무거웠어요. 저는 운 좋게 축제를 즐기고 있는 입장이죠. 만감이 교차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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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년을 기다린 무대.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두 타석 범타 후 박경수는 7회 2사 후 볼넷으로 출루하며 시동을 걸었다. 2-3으로 뒤진 9회말. 박경수의 투혼이 빛났다.
이영하의 공을 당겨 유격수 쪽 깊숙한 땅볼을 날렸다. 김재호가 전력을 다해 1루로 송구했다. 뛰어들어갔어도 세이프 타이밍. 하지만 박경수는 주저 없이 몸을 날렸다. 흙먼지도 날렸다.
한국나이 서른 일곱 박경수가 할 수 있었던 건 그저 '최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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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이던 7회초. 6회까지 혼신의 85구를 뿌린 루키 소형준이 지쳤다. 악력이 떨어지며 공이 가운데로 몰리기 시작했다. 노련한 두산 타자들이 먹이감을 놓칠 리 없었다.
슬금슬금 정타가 늘었다. 1사 후 허경민의 타구가 왼쪽 펜스를 직격했다. 발 빠른 허경민, 당연히 2루로 달렸다. 하지만 좌익수 조용호가 기민한 펜스플레이에 이어진 완벽한 송구를 박경수에게 연결했다.
박경수는 벤트레그 슬라이딩으로 들어오는 허경민의 발과 2루 베이스 사이에 주저 없이 글러브를 넣었다. 비디오 판독 논란을 막기 위한 확실한 태그 플레이. 하지만 대가가 따랐다. 날카로운 스파이크 징 끝이 글러브 안 박경수의 왼손에 큰 충격을 안겼다.
아웃을 잡아낸 뒤 타임을 요청한 박경수는 그제서야 극렬한 통증을 호소했다. 놀란 트레이너가 뛰어 나와 응급 조치를 했다. 공-수에서 몸을 아끼지 않은 투혼의 박경수.
KT는 비록 1차전을 아쉽게 놓쳤지만 18년 차 '가을야구 신입생' 박경수는 벤치의 혼을 불러일으켰다.
박경수가 깨운 KT 선수단의 투지.
시리즈 향방, 속단하긴 어렵다. 1차전 승리 팀의 81.3%의 시리즈 승리 확률이 무색해질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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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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