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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딱 하는 순간 수비수의 발이 몇걸음 떨어지다 얼어붙었다. 공수 양측 모두 홈런을 예감한 상황.
두산 타선은 1회초 첫 타자 김인태부터 불타올랐다. 김인태는 롯데 선발 이승헌의 144㎞ 한가운데 직구를 마음먹고 끌어당겼다.
오랜 야구팬이 아니라도 단번에 홈런을 예감할 타구. 하지만 김인태의 타구는 오른쪽 펜스 상단에 맞고 그라운드로 떨어졌다.
여기에 가뜩이나 높았던(4.8m) 사직구장 펜스에 1.2m의 철망을 더해 6m 짜리 '넘사벽'이 완성됐다. 한국판 그린몬스터(보스턴 레드삭스 홈구장의 왼쪽 담장)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사직구장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가장 펜스가 높은 구장은 고척돔(4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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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 측의 이번 리모델링은 타자들보다 투수들의 잠재력을 키워주기 위한 조치다. 롯데 구단은 성민규 단장 부임 이후 '마운드가 강해야 강팀'이란 야구 격언에 맞춰 팀을 가꿔내고 있다. 최준용과 김진욱을 비롯해 롯데에 강하고 수직 무브먼트가 좋은 직구들을 주무기로 뜬공을 양산하는 투수들이 급격히 늘어났고, 2018년 이후 KBO 공인구의 반발력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이대호 전준우 등 왕년에 장타력을 뽐내던 롯데 베테랑들의 홈런수는 20개 미만으로 줄어든 상황.
하지만 다른 팀 역시 비슷한 준비를 마쳤다. 특히 이미 국내 최대 크기의 구장을 지닌 두산은 메이저리그 시절 땅볼 투수였던 스탁을 뜬공 투수로 '체질 개선'까지 시킨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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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리그에도 사직구장과 비슷하거나 더 큰 구장들이 있다. 스탁은 "밀워키 브루어스 구장(아메리칸 패밀리 필드)에서 연속 장타를 맞았는데, 공교롭게도 둘다 펜스 끝에 걸린 기억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교롭게도 아메리칸 패밀리 필드의 중앙 펜스까지의 거리는 122m로 사직구장(121m)과 거의 흡사하다. 스탁은 사직구장의 세부 사항까지 연구한 걸까, 아니면 단순히 눈썰미가 좋은 걸까.
스탁은 '뜬공 투수'로의 변모에 대해 "땅볼에 비해 뜬공은 일단 체공 시간이 길기 때문에 아웃될 가능성이 확률적으로 높다. 그래서 스타일에 변화를 줬다"면서 "물론 도박성이 있다. 땅볼로 홈런을 만들긴 쉽지 않지만, 뜬공은 잘못 맞으면 넘어간다. 배럴 타구(장타가 유력한 빠른 타구)가 아닌 빗맞은 뜬공을 유도하는 게 숙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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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장의 리모델링과 더불어 롯데 타자들은 홈런을 노리는 스윙을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대호부터 나서서 번트를 연습하고, 어차피 홈런을 치기 어렵다면 보다 강한 타구를 날리기 위한 타격에 집중하고 있다.
하지만 이날 공교롭게도 롯데는 찬스 때마다 3개의 병살타를 쏟아내며 무기력하게 패했다. 병살타의 주인공은 조세진과 안치홍, 한동희였다. 세 선수 모두 홈런보다는 상대적으로 발사각이 낮고 빠른 타구를 날리는 선수들이다.
부산=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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