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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용 기자] "코치로 꼭 두산에 입은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고교 시절 야수였다. 덕수고에 자리가 없어 중앙고로 전학을 갔다. 프로 지명은 생각지도 못했다. 야구를 그만둬야 하나 고민할 때 신생팀 강릉영동대의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투수 전향이라는 모험을 선택했다.
그런데 투수가 몸에 맞았다. 졸업년도 성적이 좋았다. 2010년 드래프트 2차 9라운드에 LG 지명을 받았다. 김지용은 당시를 떠올리며 "아마추어 시절에는 프로 생각은 하지도 못했다. 실력이 없었다. 그저 야구가 좋아 끈을 놓지 못했었다. 그런데 영동대에서 생각지도 못한 발전을 이뤘다. 그렇게 LG에 입단하게 됐다. 꿈인가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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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용의 야구 인생을 진짜로 바꾼 건 2014년이다. 2013년 병역 의무를 마친 후 2014년 신고선수로 다시 등록이 돼 2군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9월 인천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최정예 멤버로 구성된 대표팀은 연습 상대가 필요했다. LG가 파트너였다. 당시 LG에서는 2군에서 던지던 투수들을 불러 '배팅볼 투수' 역할을 맡겼다. 그 때 양상문 감독(현 SPOTV 해설위원)이 김지용을 한눈에 알아봤다. 슬라이더가 예술이었단다. 2015 시즌 스프링캠프에 김지용의 자리가 생겼다. 그리고 4년 동안 '인생의 황금기'를 보냈다. LG의 필승조로 자신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2016 시즌에는 포스트시즌에서도 중용되며 꿈같은 나날을 보냈다.
김지용은 "양 감독님은 나에게 은인이다. 감독님 때문에 야구를 10년은 더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양 감독이 있던 시절 김지용이 너무 많이 던져 부상을 당한 게 아니냐고도 한다. 하지만 김지용은 "감독님께서 나에게 늘 미안해 하신다. 너무 많이 던지게 한 것 아니냐고 말씀하신다. 하지만 난 감독님께 고마운 마음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지용은 이어 "나는 필승조 치고 적게 던졌던 편이다. 몸이 안따라줬다. 체격이 크지 않다 보니, 확실히 부상이 빨리 오더라. 그게 아쉬웠을 뿐이다. 운동을 게을리 한 것도 아니었는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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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두산에서도 2년간 있으며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나이를 먹었고, 떨어진 구위를 끌어올리는게 쉽지 않았다. 김지용은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했다. 어떻게든 나를 받아주신 두산에 도움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좋았을 때 그게 안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래도 두산은 김지용의 이런 노력을 그냥 지나치치 않았다. 이번 시즌 중반 플레잉코치로 정식 등록을 시켰다. 지도자로서의 발전 가능성을 본 것이다. 이제 선수는 끝이지만, 두산은 그에게 정식 코치 계약을 해줄 예정이다. 보직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김지용은 이미 이천 마무리캠프 현장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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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나는 누구보다 많은 경험을 했다. 잘했던 적, 못했던 적, 아팠던 적 다 있었다. 이 경험들을 바탕으로 후배들을 많이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1군이든, 2군이든, 재활군이든 들려줄 얘기가 많다. 그게 지도자로서 내 무기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김지용이라는 선수로, 팬들에게 어떻게 기억되고 싶을까. 그는 "위기 상황에서 늘 씩씩하게 막아냈던 김지용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용 기자 awesome@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