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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당연필' 놓고 길게 배트 잡은 키움 김태진의 만루포

기사입력 2025-05-08 10:28

[촬영 이대호]
[키움 히어로즈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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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의 8회 '3-10 → 11-10' 대역전 이끈 개인 통산 2호 그랜드슬램

(서울=연합뉴스) 이대호 기자 = 지난 시즌까지 김태진(키움 히어로즈)은 프로야구에서 가장 배트를 짧게 잡는 선수였다.

빠른 공에 대처하기 위해 배트 손잡이(노브)에서 10㎝ 이상 높게 잡고 정확한 콘택트 위주로 타격했다.

이는 장단점이 명확하다. 배트를 짧게 쥐니 배트 스피드가 빨라져 콘택트에는 유리하지만, 바깥쪽 공에 취약하고 변화구 대처도 어려웠다.

지난해 말부터 배트를 길게 잡기 시작한 김태진은 올 시즌 타격 쪽에서는 데뷔 후 최고 수준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장타력을 뽐낸다.

지난 7일 고척 KIA 타이거즈전은 '몽당연필'을 놓고 배트를 길게 잡은 김태진의 진가가 드러난 경기였다.

김태진은 팀이 4-10으로 끌려가던 8회말 1사 만루에서 KIA 김건국의 초구 시속 149㎞ 직구를 잡아당겨 125m를 날아간 우중월 홈런으로 연결했다.

올 시즌 2호 홈런이자 통산 10호 홈런, 그리고 KIA에서 뛰던 2021년 9월 26일 광주 SSG 랜더스전 이후 1천319일 만에 때린 개인 통산 2호 만루 홈런이다.

이와 함께 김태진의 통산 첫 고척스카이돔 홈런이기도 하다.

이 홈런은 키움의 거짓말 같은 대역전승의 발판이 됐다.

8회말 시작 당시 3-10으로 끌려가 포털사이트 네이버 문자 중계 실시간 승률 0.8%이었던 키움은 그 이닝에만 8점을 내 11-10으로 KIA를 물리쳤다.

경기 후 만난 김태진은 "동료들도 제가 거기까지 친 건 처음 봤다고 했다. 125m나 친 것은 처음"이라며 "치고 나서 외야수들이 멈춰 있어서 홈런인 줄 알았다. 앞에 주자들도 (홈런을 확신 못 하고) 줄줄이 가고 있더라"고 돌아봤다.

이날 2루수 6번 타자로 선발 출전했던 김태진은 0-1로 앞선 4회 1사 2루에서 변우혁의 땅볼 타구를 뒤로 흘려 동점을 내주는 실책을 저질렀다.

4년 전 KIA에서 만루홈런을 쳤던 경기에서도 공교롭게도 실책했다고 말한 그는 "내가 실책 안 했다면 선발 케니 로젠버그가 좀 더 오래 던질 수 있었는데 아쉽다. 그나마 홈런으로 보답했다"고 말했다.

김태진의 홈런으로 8-10까지 쫓아간 키움은 김동헌과 이용규, 송성문의 볼넷으로 2사 만루를 채운 뒤 최주환의 3타점 2루타로 경기를 뒤집었다.

김태진은 "(송)성문이가 나가고 역전을 예감했다. (최)주환이 형이 정해영에게 강했다. 그래서 됐다 싶었다"고 말했다.

키움은 올 시즌 힘겨운 초반을 보낸다. 비록 짜릿한 역전승을 따냈어도, 13승 27패 승률 0.325로 9위 두산 베어스에 5경기 뒤처진 리그 최하위다.

김태진은 "오늘 경기는 다들 1회부터 공 하나하나에 집중하고 뭉치는 게 보였다. 이런 모습을 보여준다면 앞으로 좋은 경기 할 수 있을 것이다. 하루하루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자신했다.

NC 다이노스(2015∼2019년)와 KIA(2020∼2021년)를 거쳐 2022년 키움에 입단한 김태진은 원래 일발장타가 있는 선수였다.

최고의 한 해를 보낸 2019년 123경기에 출전해 타율 0.275에 홈런 5개, 46타점, 12도루로 활약했다.

그러나 키움 이적 후에는 생존을 위해 배트를 극단적으로 짧게 쥐기 시작했다.

덕분에 시즌 타율은 2022년 0.268, 2023년 0.275로 나쁘지 않았지만, 대신 장타를 포기한 터라 OPS(출루율+장타율)는 2022년 0.610에서 2023년 0.597로 내려갔다.

지난해에는 타율 0.222에 OPS 0.535로 성적이 더 떨어졌고, 생존을 위해 변신을 택했다.

아직 시즌 초반이기는 해도, 올해는 타율 0.277(101타수 28안타)에 2홈런, OPS 0.751로 활약 중이다.

김태진은 "스윙을 바꾼다는 게 무척 두려웠다. 바꾼다는 게 솔직히 쉽지 않다. 비시즌에 많이 노력했고, 그만큼 생각도 바꿨다. 코치와 감독님이 많이 도와주셔서 좋은 영향을 받았다"고 했다.

그가 본격적으로 스윙을 바꾸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시즌 막판 2군행이다.

당시 김창현 수석코치의 제안으로 배트를 다시 길게 잡기 시작했고, 피나는 노력으로 새 스윙 장착에 성공했다.

김태진은 "지금까지는 정말 만족한다. 앞에 했던 것들은 아예 머리에서 삭제하고, 지금부터 새로 시작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4bun@yna.co.kr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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