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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고 싶을 때 용기를 줬다."
반면, 노모는 일본에서 정상을 밟고 1995년 더 큰 무대로 날아왔다. 사회인야구를 거쳐 1990년 긴테쓰 버팔로즈(오릭스)에 입단한 노모는 4년 연속 퍼시픽리그 다승-탈삼진 1위를 했다. 1990년 신인상과 MVP, 사와무라상을 동시에 수상한 슈퍼스타였다.
그는 긴테쓰에서 5년간 134경기에 선발로 나가 80차례 완투를 했다. 1051⅓이닝을 던지면서, 1204탈삼진을 기록했다.
또 한 명의 위대한 선수가 노모에게 경의를 표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야구 천재' 스즈키 이치로(52). 그는 미국 뉴욕주 쿠퍼스타운에서 28일(한국시각) 열린 메이저리그 명예의전당 입회식에서 선배 노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아시아 선수 최초로 명예의전당에 입성한 이치로는 아내와 뉴욕 양키스 시절 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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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씨, 감사합니다(野茂さん、ありがとうございました)."
노모가 메이저리그로 가는 문을 활짝 열었다. 노모가 길을 터자 일본선수들이 일본프로야구를 넘어 메이저리그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치로는 "노모씨 덕분에 메이저리그 경기가 중계되고 화제가 됐다. 노모씨의 용기 덕분에 상상하지 못했던 도전에 나설 수 있었다"라고 했다. 그는 또 "노모씨가 용기를 내지 않았다면 메이저리그와 일본야구의 격차가 영원히 줄지 않았을 것이다. 경기 중계를 보면서 감동했고 스트라이크존 등 리그간의 차이를 알게 됐다. 노모씨를 상대해 봤기에 메이저리그가 가깝게 느껴졌다. 동기부여가 됐다"라고 했다.
노모의 길이 이치로를 거쳐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로 이어졌다.
1992년 오릭스 블루웨이브 입단. 이치로는 주전으로 올라선 1994년부터 7년 연속 퍼시픽리그 타격 1위를 하고 5년 연속 안타 1위를 했다. 1994~1996년, 3년 연속 리그 MVP를 차지했다. 또 1994년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인 210안타를 쳤다.
이치로가 2000년 겨울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했을 때, 대다수 전문가들이 반신반의했다. 루 피넬라 감독 등 시애틀 구단 관계자들은 타율 2할8푼에 도루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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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예상을 무참히 깼다. 아시아 출신 야수에 대한 편견까지 모조리. 그는 첫해부터 10년 연속 200안타를 넘고, 10년 연속 3할 타율을 마크했다.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동시에 받았다. 2004년 '262안타'를 때려 단일 시즌 최다 기록을 갈아치웠다. '3089안타'를 치고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마감했다. 미일 통산 4367안타.
이치로의 출발점에 노모가 있었다.
이치로에게 노모는 특별하게 기억될 수밖에 없다. 오릭스 입단 2년차였던 1993년, 긴테쓰 에이스 노모를 상대로 프로 첫 홈런을 터트렸다. 주전으로 자리 잡기 1년 전 일이다. 그해 이치로는 43경기에 출전해 67타석에 섰다. 12안타-1홈런을 치고, 3타점을 올렸다.
이치로는 2001년 노모와 7년 만에 메이저리그에서 마주했다. 첫 경기에서 보스턴 레드삭스 소속이던 노모가 던진 패스트볼이 이치로의 등을 강타했다. 이치로는 비명을 지르며 타석에 주저앉아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노모는 이 모습을 담담하게 지켜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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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창기 기자 huelva@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