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리는 SSG와 KIA의 경기.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에 나서는 정해영.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6.22/
[잠실=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본인이 빠지면 우리가 어떻게 경기하는지 한번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하고, 다시 열정이 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범호 KIA 타이거즈 감독은 17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을 앞두고 마무리투수 정해영을 1군 엔트리에서 말소했다. 눈 한번 질끈 감고 내린 결단이었다. KIA는 후반기 들어 불펜 난조로 5강 싸움에서 힘겹게 버티고 있다. 이런 와중에 마무리투수를 열흘 이상 전력에서 제외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이 감독은 올 시즌을 치르는 동안 정해영이 아무리 흔들려도 굳건한 믿음을 보였다. 마무리투수의 숙명이라고 여기며 그동안 정해영이 팀의 승리를 위해 해준 몫들을 오히려 고마워했다. 올 시즌 51⅓이닝을 던지면서 26세이브를 챙기며 큰 힘이 됐다.
정해영은 타이거즈 역대 최고 마무리투수이기도 하다. 2020년 1차지명 출신인 정해영은 2년차였던 2021년부터 마무리투수를 맡아 올해까지 5년째 팀을 위해 헌신했다. 그 결과 147세이브라는 성과를 냈다. 타이거즈 레전드 선동열의 132세이브를 넘어 구단 역대 세이브 1위 대기록을 썼다.
그런 정해영도 떨어진 구위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후반기 8경기 평균자책점 7.71에 그쳤는데, 직구 구속이 140㎞ 초반대에 머물 정도로 공에 힘이 떨어졌다. 마운드에서 자신 없는 승부가 이어졌고, 이 감독은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메디컬 체크를 해봤으나 몸에 이상은 없었다.
이 감독은 "(정)해영이가 컨디션이 그렇게 좋아 보이지도 않고, 몸에 이상도 없다고 하는데 컨디션이 별로 안 좋아 보이니까. 어제(16일) 구속도 141~142㎞가 나오더라. 그래서 한번 빼게 됐다. 지금은 더 열정을 갖고 막 보여주면서 던져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런 측면에서 조금 더 책임감을 갖고 해줘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열흘을 쉬게 하는 것도 본인이 빠지면 우리가 경기를 어떻게 하는지 한번 지켜볼 수 있는 시간이 되면 본인이 다시 열정이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이야기했다.
정해영이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보여준 투구 내용이 특히 실망스러웠다고 쓴소리를 남겼다. KIA가 9회초 1-2에서 3-2로 역전하고 9회말을 맞이한 상황. 정해영은 1사 후 안타, 볼넷, 안타를 차례로 내주며 만루 위기를 자초했다. KIA는 급히 조상우로 투수를 교체했으나 두산 대타 김인태에게 2타점 적시 2루타를 허용해 3대4로 끝내기 패했다.
21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 KIA의 경기. 9회말 SSG 한유섬이 KIA 정해영에게 1타점 적시타를 날렸다. 아쉬워하는 KIA 정해영. 인천=송정헌 기자songs@sportschosun.com/2025.06.21/
22일 광주 기아 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LG-KIA전. 9회초 등판했지만 동점을 허용한 정해영이 후속타를 피하며 주저앉아 있다. 광주=정재근 기자 cjg@sportschosun.com/2025.7.22/
이 감독은 "어제(16일) 같은 경우는 우리가 이기면 오늘까지 다시 연승을 갈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만루를 만드는 모습이나 느낌이 지금은 (정해영이) 도저히 막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지금 이겨야 되는 사람이고, 선수들은 이기기 위해서 지금 이 땡볕에 열심히 뛰어주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무리투수는 자기 보직에 조금 더 애착을 갖고 던져줘야 하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쓴소리를 이어 갔다.
구속 저하와 관련해서는 "지난주에 일주일을 쉬었기에 본인도 답답해하는 것 같다. 구속이 안 나오는데 계속 (마운드에) 올릴 수는 없다. 우리도 이겨야 하고, 컨디션을 다시 만들게 하는 게 맞지 않나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정해영이 없는 동안에는 상황에 따라 집단 마무리를 가동할 계획이다. 그중 1순위는 전상현이다.
이 감독은 "우선 마무리는 (전)상현이를 시킬 것이다. 한 점차 이럴 때 8회에 중심 타선이 걸리면 상현이를 쓰고, 9회는 집단 마무리로 가려고 한다. 원래 제일 좋은 정해영이 빠졌기 때문에 기존에 있는 선수들이 어려운 상황에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한다. (성)영탁이를 안 올리면 영탁이가 마지막으로 갈 수도 있고, (한)재승이도 마지막에 갈 수 있다. 상황을 봐서 2명, 3명을 쓸 수도 있다. 이겨야 하는 경기라고 하면 왼쪽에 (이)준영이를 올렸다가 오른쪽에 또 다른 선수를 올리는 등 최대한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타이거즈 최다 세이브 투수의 책임감과 자긍심을 갖고 다시 돌아오길 바랐다.
이 감독은 "본인도 굉장히 힘든 시간이겠지만, 어떻게 보면 본인한테 굉장히 큰 중요한 시기일 수도 있다. 우리가 경기하는 것을 밖에서 지켜보면서 본인의 책임감을 느꼈으면 한다. 빠져 있어서 될 선수가 아닌데, 우리가 어떻게 경기하는지 밖에서 보면 좀 단단한 마음으로 와서 (다시) 팀의 마무리를 잘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선수들은 정해영이 없는 지금을 기회로 여기길 바랐다. 불펜에 여유가 없는 것은 사실이기에 선발들이 더 긴 이닝을 버텨주길 바랐다.
이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경험치는 모자랄 수 있어도 자기들이 1군에 설 수 있는 자리라고 생각하면 열심히 던져 줄 것이라 생각한다. 선발투수들의 힘이 조금 더 필요한 상황이 됐다. 이제 올러랑 네일, (양)현종이 (이)의리 (김)도현이가 다 이닝 능력은 있는 선수들이다. 선발투수들이 조금 더 길게 이닝을 끌고 가면서 선발투수들의 비중을 조금 더 늘리면 불펜들한테는 최소한의 이닝을 맡기면서 충분히 이길 수 있는 경기를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7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KIA와 롯데의 경기, KIA가 6대5로 승리했다. 경기를 끝낸 후 기뻐하는 정해영의 모습. 부산=허상욱 기자wook@sportschosun.com/2025.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