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양키스가 협바과 회유의 협상 과정을 통해 결국 코디 벨린저를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AP연합뉴스
[스포츠조선 노재형 기자]상대를 설득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명분과 논리를 앞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돈에 관한 문제 만큼은 다른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바로 '협박'과 '회유'다. 물론 FA 협상 자리에서 나올 수 있는 '심리전'이라고 보면 된다.
남은 FA들 중 최대어였던 외야수 코디 벨린저가 결국 원소속팀 뉴욕 양키스에 잔류하기로 했다. 지난해 11월 중순 FA 시장이 열린 이후 2개월 넘게 벌인 줄다리기를 양키스 구단이 승리한 것이다.
MLB.com은 22일(한국시각) '벨린저와 양키스가 5년 1억6250만달러(2384억원) 계약에 합의했다'며 '작년 시즌이 끝난 뒤 클럽하우스에서 애런 저지의 라커를 응시하던 벨린저가 올해도 양키스의 일원으로 뛴다'고 전했다.
사이닝보너스가 2000만달러이고, 전면 드래프트 거부조항(full no-trade clause)과 2027년과 2028년 시즌 후 옵트아웃 권리도 포함됐다. 지급유예분(deferrals)은 없다.
벨린저는 애초 양키스를 떠날 마음이 없었다. 지난해 시카고 컵스에서 양키스로 트레이드돼 한 시즌을 보낸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핀스프라이크를 입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양키스타디움, 뉴욕 팬들, 구단, 선수들이 라커룸에서 만든 문화 모두 나에겐 특별하다. 흥미로운 구단이라 반드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었다.
사진=MLB 공식 X 계정
그러나 딱 하나 이루고 싶은 건 있었다. 계약기간 7년. 에이전트 스캇 보라스는 7년보다 짧으면 안된다는 입장을 구단들에 전했다. 5년과 7년이 얼마나 다르냐고 할 수 있으나, 선수들에게는 안정적인 신분으로 1,2년 더 뛰는 것만큼 중요한 사안도 없다. 1995년 7월 생인 벨린저는 올해가 벌써 31세 시즌이다. 7년 계약이었다면 38세 시즌까지 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양키스의 입장은 달랐다. 처음부터 5년 계약을 준비했고, '에이징 커브'가 본격화할 수 있는 30대 중반 이상까지 보장하는 계약을 하기 어려웠다. 벨린저는 2022년 말 LA 다저스에서 쫓겨나 컵스에 입단한 뒤 부활에 성공했지만, 그렇다고 MVP에 오른 2019년 기량을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다. 부상도 있었고, 기복도 있었다.
양키스의 오퍼는 3단계에 걸쳐 이뤄졌다. 첫 오퍼는 5년 1억5000만달러였다. 그러나 벨린저를 놓고 뉴욕 메츠, 토론토 블루제이스, LA 다저스 등 빅마켓 구단들이 덤벼들자 평균연봉(AAV)을 3100만~3200만달러 수준으로 올려 총액 1억5500만에서 최대 1억6000만달러까지 줄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 지급유예분 없이 옵트아웃 권리도 2년에 걸쳐 보장해줬다.
하지만 벨린저의 마음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1주일 동안 시장 상황이 달라졌다. 최대어 카일 터커가 다저스와 4년 2억4000만달러에 계약하고, 메츠가 유격수 보 비슌을 3년 1억2600만달러에 데려온데 이어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젊은 외야수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를 트레이드해오면서 수요가 급격히 줄어든 것이다.
카일 터커가 22일(한국시각) LA 다저스 입단식에서 취재진의 질문을 들으며 모자를 만지고 있다. AP연합뉴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중견수 루이스 로버트 주니어가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됐다. AP연합뉴스
시장이 변하는 동안 양키스는 트레이드설도 흘렸다. 메츠로 간 로버트 주니어 또는 컵스 유격수 니코 호너를 영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 것이다. 벨린저로서는 최근 2~3일 동안 조급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토론토에서 7년 계약을 제안해 온 것도 아니다.
벨린저가 양키스의 제안을 다시 듣겠다고 하자 사이닝보너스 2000만달러와 총액을 250만달러를 더 얹어 1억6250만달러를 제시하자 결국 합의가 이뤄졌다.
벨린저는 보라스와 함께 계약기간 7년, 평균연봉(AAV) 3000만달러 이상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FA 협상을 벌였지만, 결국 양키스의 5년 재계약 오퍼에 백기를 든 꼴이 됐다. 양키스는 이번 오프시즌 최대 과제가 벨린저와의 재계약이었고, 벨린저는 양키스 잔류가 우선 순위였으니 결과적으론 '윈윈 계약'이다.
MLB.com은 '양키스는 벨린저에 적어도 두 번의 오퍼를 했다. 옵트아웃 권리와 사이닝보너스 조항을 넣으면서도 5년을 초과하는 기간은 거부했다'며 '카일 터커와 보 비슌이 시장에서 사라지면서 FA 최대어가 된 그는 7년 계약을 고집했지만, 결과적으로 5년 계약이면 충분했다는 게 증명됐다'고 전했다.
애런 저지가 지난해 12월 6일(한국시각) 북중미 월드컵 조춤식에 참석해 포트에서 스코틀랜드를 뽑고 활짝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양키스의 이러한 협상 자세는 3년 전 애런 저지를 대할 때와는 매우 대조적이다. 2022년 62홈런을 치며 생애 첫 MVP에 오른 뒤 FA 시장에 나간 저지는 양키스를 가장 먼저 만나 8년 3억2000만달러의 제안을 받았다. 이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로 넘어가 극진한 대접을 받은 그는 9년 3억6000만달러를 제시받자 곧바로 할 스타인브레너 양키스 구단주에 연락해 기존 오퍼에서 계약기간 1년, 총액 40000만달러를 붙여 결국 9년 3억6000만달러에 도장을 찍었다. 당시 스타인브레너는 시장을 모두 둘러보고 오라고 했을 정도로 그의 입장을 배려했다.
양키스 입장에서 프랜차이즈 슈퍼스타 저지와 이제 막 양키스에 적응한 벨린저를 같은 시선으로 볼 수는 없었을 것이다. 노재형 기자 jhno@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