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마운드가 지배하던 KBO 리그.
올 시즌 뚜껑을 열기 무섭게 극단적인 '타고투저' 양상으로 변모했다.
통산 134승을 거둔 '레전드 투수' 출신 두산 베어스 김원형 감독이 사견임을 전제로 리그를 지배하는 기현상의 원인을 분석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 ABS(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에 대한 타자들의 빠른 적응과 투수들의 무기 상실을 꼽았다.
김원형 감독은 5일 잠실 한화전을 앞두고 최근 리그를 휩쓸고 있는 타고투저에 대해 견해를 밝혔다. 김 감독은 "작년까지만 해도 투고타저 흐름이었는데, 올해는 타자들이 ABS를 완전히 인식하고 대응하기 시작했다"고 진단했다.
과거 한국 야구의 스트라이크 존은 전통적으로 상단(하이존)에 박하고 좌우 폭에 관대한 편이었다. 하지만 ABS 도입 이후 일관된 상단 존 판정이 유지되면서 타자들의 접근 방식이 바뀌었다는 분석. 김 감독은 "타자들이 이제 하이존도 스트라이크라는 것을 확실히 인지하고 그에 맞는 스윙을 가져가면서 대응 능력이 전반적으로 향상됐다"고 설명했다.
투수 출신인 김 감독이 가장 주목한 지점은 투수들이 활용하던 '보이지 않는 존'의 소멸이다.
과거 유희관 같은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들은 S존 좌우 보더라인에 '가상의 공 하나 혹은 반 개' 정도 빠지는 코스를 공략해 타자의 방망이를 끌어내거나 정타를 피했다. 인간주심의 콜이 종종 나오는 코스라 타자들도 울며 겨자먹기로 배트를 냈었다는 것이 김 감독의 분석.
하지만 ABS는 한 치의 오차 없이 규정된 홈플레이트 위를 지나는 공만 잡아낸다.
김 감독은 "과거에는 가상의 공 하나 존을 활용해 타자를 요리했지만, 지금은 그 가상의 존 자체가 사라졌다"며 "결국 투수들은 타자 몸쪽이나 중심부로 조금씩 더 들어올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분석했다.
그 결과, 과거에는 공이 빠르지 않아도 제구력으로 버텼던 투수들이 고전하게 된 반면, 존 안에서도 타자를 압도할 수 있는 '강력한 구위'를 가진 투수들이 더 큰 경쟁력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 김 감독의 설명이다.
리그 지표도 이를 증명한다. 현재 KBO 리그는 팀 타율이 급상승하고 대량 득점 경기가 속출하며 투수들의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비록 시즌 극초반이지만 팀 타율 3할을 넘는 팀이 무려 3팀(KT, SSG, 한화)이고, 경기당 득점도 11.28점이나 된다. 홈런도 경기당 1.8개 꼴로 터지고 있다. 10개 구단 팀 평균자책점은 5.20에 달한다.
김 감독은 "미국은 하이존에 관대하고 좌우는 엄격한 편인데, 우리나라도 ABS 도입으로 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며 "제구 좋은 투수들이 애를 먹는 대신, 구위가 좋아야 살아남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조심스레 진단했다.
기술의 도입이 가져온 존의 변화가 타자들에게는 '기회'가, 기교파 투수들에게는 '숙제'가 된 셈.
김원형 감독의 분석대로 타자들이 바뀐 환경에 빠르게 적응한 것이라면 ABS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투수들 역시 새로운 생존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