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민경 기자] "아내가 올 시즌 전에 '팩폭(팩트 폭행)'을 했어요. 그게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KIA 타이거즈 우완 투수 이형범은 올해로 프로 15년차가 됐다. 화순고를 졸업하고 2012년 신생팀 NC 다이노스의 특별지명 23순위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NC에서는 전혀 빛을 보지 못한 아주 평범한 투수였다.
2019년은 이형범의 프로 생활 전환점이었다. FA 최대어였던 포수 양의지가 NC와 4년 125억원 계약에 성공해 이적했고, 원소속팀 두산 베어스는 보상선수로 이형범을 택했다.
이형범은 2019년 갑자기 두산 불펜의 핵심으로 급부상했다. 67경기에 등판해 6승, 19세이브, 10홀드, 61이닝, 평균자책점 2.66을 기록했다. 그해 두산의 통합 우승 마무리투수가 되면서 보상선수 성공 신화를 제대로 썼다.
하지만 갑자기 너무 무리한 탓인지 2020년 바로 팔에 탈이 났다. 2020년 가을 팔꿈치 수술을 받았고, 2022년까지 팔이 예전 같지 않아 고생을 했다. 2023년부터 구위를 조금 찾았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2019년의 영광은 계속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다 2023년 11월 부활한 2차 드래프트에서 KIA의 선택을 받았다. KIA는 양도금 3억원을 지급하고 2라운드에 이형범을 지명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시작. 의욕만으로는 되지 않았다. 2024년 첫해 16경기 2홀드, 15이닝, 평균자책점 7.80, 지난해 12경기 10이닝, 평균자책점 11.70에 그쳤다. 올해는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서도 빠졌다. 이렇게 잊히는 선수가 되나 싶었다.
아내는 상심한 이형범에게 팩트 폭행을 날렸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부부만의 일로 남겨뒀지만, 이형범이 정신 차릴 수 있는 따끔한 말을 해줬다.
이형범은 "아내가 비시즌에 이야기를 하는데 듣고 머리가 띵했다. 이렇게 계속 하다 보면 진짜 선수 생명이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비시즌에 운동 센터를 알아봤고, (성)영탁이가 부산에 있는 센터에 다닌다고 해서 아내랑 같이 한번 가보자고 해서 가봤다. (전)상현이랑 (김)건국이 형이랑 (김)기훈이랑 같이 가서 그때 했던 루틴들을 지금까지 계속 유지하고 있는데 잘되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지난달 7일 이형범은 처음 1군의 부름을 받았다. 개막하고 40일을 기다린 끝에 얻은 기회였다. 이형범은 패전조나 점수차가 아주 클 때 주로 마운드에 올랐는데, 자기 몫을 아주 충실히 해냈다. 12경기에서 15이닝,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했다. 실책으로 주자가 나가는 일도 잦았는데, 그런 상황을 이겨내고 최소 실점으로 막아내면서 고생했던 지난 6년과는 다른 느낌을 줬다.
이형범은 "구위는 2023년부터 좋아졌는데, 두산에서는 팔 부상 이후로 안 풀렸다. 감각이 많이 떨어져 있었고, 공 끝에 힘이 전달된다는 느낌이 든 게 2023년부터였다. 올해는 내려놓고 시작했다. 재작년에 KIA에 처음 왔을 때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팀도 옮겼으니까. 그런데 첫해 못했고, 지난해도 그랬다. 한 3경기 잘 던지다 한 경기에 4~5점 주면 앞에 잘했던 3~4경기가 한 번에 무너졌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머리도 많이 아팠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전에는 주자가 나가면 타자랑 승부하기 바빴다. 그냥 포수한테 던지기 바빴는데, 요즘에는 주자도 신경 쓰고 견제도 하고, 템포도 바꾸는 걸 신경 쓰면서 던지게 됐다. 또 투수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수비 도움도 잘 받아야 한다. 올해는 그래도 그런 쪽으로 처음에 잘 풀리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비시즌 노력에도 1군 캠프에 가지 못했을 때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겨우내 KIA가 이태양 김범수 홍민규 홍건희 등을 영입한 것도 건강한 경쟁으로 이어졌다.
이형범은 "좋은 자극이 됐다고 생각한다. 항상 가던 캠프를 가지 못했으니까. 좋은 자극제가 됐다. 또 투수들도 많이 뽑았고, 좋은 투수들이 많다 보니까 올해 1군에서 기회를 받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2군에서도 경쟁이 치열했으니까. 1군 투수가 많으니까 몇 명씩 내려오기 시작하고, 2군에서도 엔트리에서 빠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진짜 확실히 잘해야 기회가 오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마음 먹고 쓴소리를 해준 아내에게 한번 더 고마운 마음을 표현했다.
이형범은 "그때 한번 그런 뒤로는 아내가 잘 챙겨준다(웃음). 그동안은 내가 하는 것을 그냥 믿고 지켜봤을 것이다. 그런데 아내도 몇 년을 안 풀리다 보니까 본인도 답답했는지 쌓였던 것을 말했던 것 같은데, 그게 좋았다. 같이 잘해보자는 그런 이야기를 했고, 그게 잘 통했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나도 이제 나이가 있고, 고참에 속하다 보니 나한테 이렇게 쓴소리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 정신 차리란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는데, 아내가 그래서 참 고맙다"고 했다.
올해 목표는 딱 하나다. 1군에 가능한 오래 있는 것.
이형범은 "나도 아내도 올해는 욕심을 내지 말자고 했다. 안 아프고 1군에 오래 붙어있자고. 솔직히 욕심 부리고, 잘하려다가 안 될 때가 많았다. 그런 때가 너무 많았어서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 야구는 죽어도 1군에서 죽고, 터져도 1군에서 터져야 된다"며 미소를 지었다.
김민경 기자 rina1130@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