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먼 길을 돌아왔지만 여전히 불완전한 처지였다. 드래프트 낙방이라는 지독한 잔혹사를 겪고 야구 예능 프로그램의 흙먼지를 거쳐 '육성선수'라는 밑바닥에서 이를 갈았던 청년. 그 간절했던 '잡초'가 마침내 1만 6000명 만원 관중의 눈도장을 제대로 찍었다.
키움 히어로즈 원성준(26)이 이틀 연속 팀을 승리로 이끄는 기적 같은 '연속 결승타'를 작렬시키며 영웅들의 798일 만의 한화전 스윕승을 견인했다.
원성준은 14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주말 시리즈 최종전에 9번 타자 좌익수로 선발 출전해 3타수 2안타 1볼넷 1타점으로 맹활약했다. 이날 한화의 필승조 이상규의 초구 커터를 거침없이 강타해 좌전 적시 결승타를 뽑아냈다. 바로 전날(13일) 1군 콜업 복귀전에서 같은 투수를 상대로 역전 결승타를 날린 데 이어, 이틀 연속 드라마틱한 서사였다.
원성준의 야구 인생은 그야말로 '가시밭길'이었다. 경기고와 성균관대를 거치며 프로 무대에 도전장을 내밀었으나 무려 두 차례나 신인 드래프트에서 낙방하는 아픔을 겪었다. 야구를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JTBC 야구 예능 '최강야구'에 출연해 '야구의 신' 김성근 감독 밑에서 혹독한 조련을 받으며 칼을 갈았다. 하지만 이후 다시 도전한 드래프트에서도 프로 구단의 외면을 받았다.
벼랑 끝에 섰던 2023년 10월, 키움 히어로즈로부터 극적인 입단 테스트 제안을 받고 통과하며 '육성선수'라는 눈물 젖은 타이틀로 간신히 프로 유니폼을 입었다. 첫해인 2024년 51경기 타율 2할5푼으로 가능성을 보였지만 지난해 타율 1할7푼4리로 주춤하며 다시 퓨처스리그(2군)로 내려가 기회를 기다려야 했다.
원성준은 "2군에서 준비를 정말 많이 했고, 솔직히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되게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어 "언제 다시 1군에 올라갈지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었지만, 이번에 한 번 기회가 와서 올라가게 된다면 지금까지 힘들게 준비했던 걸 생각해서라도 단 한 자락의 후회도 없이 내 스윙을 하고 싶다고 매일 다짐했다. 지금은 정말 후회 없이 방망이를 돌리고 있다"며 단단해진 속내를 털어놨다.
올 시즌 2군 45경기에서 타율 3할4리, 32타점, 출루율 0.454, OPS 0.906으로 맹폭하며 고양 히어로즈 최초의 5월 월간 MVP를 거머쥔 내공은 그냥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이틀 연속 한화의 굳건한 필승조 이상규를 무너뜨린 8회말 결승타 장면은 벤치의 날카로운 전략과 원성준의 집중력이 결합한 결정체였다. 앞선 타자 김웅빈이 삼진으로 물러나 자칫 흐름이 끊길 수 있었던 2사 2루 상황이었다.
원성준은 "어제 오늘 계속 긴장을 많이 했는데, 앞선 타석에서 (김)웅빈이 형이 나를 지금까지 많이 도와준 만큼 그 아쉬운 상황을 내가 어떻게든 만회해 주고 싶어서 더 바짝 집중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타석에 들어서기 전 설종진 감독의 원포인트 레슨이 결정적이었다. 원성준은 "딱히 특정 구종을 노리고 들어가진 않았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상대 투수가 변화구가 많으니 어깨가 먼저 열리면 헛스윙이 많아질 수 있다. 최대한 어깨를 닫아두고 밀어친다는 생각으로 가라'고 지침을 주셨는데 그게 딱 맞아떨어지며 좋은 결과(좌전 적시타)로 이어진 것 같다"며 사령탑의 지략에 감사함을 표했다.
1군 무대의 엄청난 중압감을 이겨낼 수 있었던 데에는 대선배 서건창의 따뜻한 리더십도 한몫했다. 원성준은 "어제(13일) 1군에 올라온 순간부터 서건창 선배님이 바로 옆에 딱 붙어서 너무나도 좋은 말씀과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라며 "대선배님이 든든하게 버텨주시니 긴장 속에서도 내가 후회 없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공을 돌렸다.
수비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노력은 현재 진행형이다. 아직 외국인 타자들이나 리그 힘 좋은 타자들의 라인드라이브성 빠른 타구를 판단하는 데는 다소 어려움이 있다고 시인했다. 원성준은 "기본적인 타구는 많이 편해졌는데 힘 있는 타구는 여전히 공부해야 한다"며 "그래서 1군에 올라와서도 매일 경기 전 일찍 나와서 김준완 외야코치님에게 일대일로 배우고 있다. 코치님과 매일 타구 수비 훈련을 소화하며 부족한 점을 채우고 있다"고 땀방울의 가치를 전했다.
두 번의 드래프트 실패와 육성선수라는 밑바닥 딱지는 그에게 상처가 아닌, 1군 무대 찬스가 왔을 때 주저 없이 방망이를 돌릴 수 있는 독기와 간절함이라는 최고의 무기가 됐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