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스윕은 당하지 말자고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아들, 딸에게 아빠가 이렇게 야구했다고 '영광의 상처'로 얘기해 줘야죠."
두산 베어스 정수빈의 손가락 부상은 가볍지 않았다. 적어도 개인적으로 평생 펴지지 않는 '기형 손가락'을 안고 살아야 할 안타까운 상황이다.
왼손 새끼손가락의 힘줄이 끊어져 손가락이 제대로 펴지지 않는 심각한 부상 속에서도 '미라클 두산'의 상징 정수빈이 팀을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해냈다. 기형적인 손가락 변형을 감수하면서까지 수술 대신 출전을 감행한 그의 투혼이 두산의 더그아웃을 깨웠다.
두산 베어스는 18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KT 위즈전에서 7회말 터진 정수빈의 대타 2루타와 결승 득점에 힘입어 2대1로 짜릿한 한 점 차 승리를 거뒀다. 주중 3연전 먼저 2연패를 당했던 두산은 정수빈의 투혼 속에 시리즈 전패(스윕패) 위기에서 벗어나는 값진 승리를 거뒀다.
정수빈은 지난 14일 광주 KIA 타이거즈전에서 외야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글러브를 끼지 않은 왼손 새끼손가락을 접지르는 부상을 당했다. 선수가 직접 교체 사인을 보낼 만큼 큰 부상이 우려됐던 순간.
정밀 검진 결과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새끼손가락 위쪽 힘줄이 끊어지는 부상이었다. 힘줄이 끊어지면서 근육을 잡지 못해 손가락이 굽은 채 펴지지 않는 변형이 찾아왔다. 정상적이라면 수술을 통해 철심을 박아야 하는 상황. 하지만 이 경우 최소 한달 이상 공백이 불가피 하다.
정수빈은 단호했다. 수술을 거부했다. 그는 "시즌이 한창이고 치열한 순위 싸움 중이라 수술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이대로 굳으면 일상생활에는 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수술을 안 하기로 했다"며 "손가락이 구부러져 있어 세수할 때나 머리 감을 때, 공을 빨리 뺄 때 조금 불편하지만 방망이를 잡을 때는 괜찮다. 당분간 힘줄이 안정을 찾을 때까지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은 자제하며 버틸 것"이라고 덤덤하게 투혼을 전했다. 그의 아내 역시 속상해하며 걱정을 많이 했지만, 남편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1-1로 팽팽하게 맞선 7회말, 두산 벤치가 승부수를 던졌다. 선두타자 자리에 정수빈을 대타로 내세웠다. 1루측 두산 응원석은 부상을 이겨내고 타석에 선 통산 외야수 정수빈을 향해 열렬한 환호성을 쏟아냈다. 정수빈은 "팬분들께서 정수빈이라는 선수를 여전히 많이 좋아해 주신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다"며 강한 책임감과 함께 타석에 섰다.
팬들의 성원에 보답하듯 정수빈은 볼카운트 2B2S에서 KT 투수 김민수의 높은 체인지업을 기술적으로 밀어쳐 좌익선상 선두타자 2루타를 뽑아냈다. 어떻게든 출루해 기회를 만들겠다던 베테랑의 집념이 빛난 순간.
후속 박찬호가 보내기 번트를 잇달아 실패하며 표정을 구겼지만, 전화위복이 됐다. 0B2S의 불리한 카운트에서 바깥쪽 낮은 슬라이더에 배트를 던지다시피 맞힌 타구가 1-2루간을 빠져나가는 안타가 됐다. 2루 주자였던 정수빈은 홈을 향해 전력 질주했고, KT 우익수 안현민의 강한 홈 송구보다 한 발 빠르게 홈으로 쇄도했다. 2-1로 달아나는 천금 같은 결승 득점.
두산은 선발 최민석의 6이닝 1실점 호투에 이어 이용찬 김택연, 마무리 이영하로 이어지는 강렬한 필승조를 앞세워 1점 차 승리를 지켜냈다.
이번 승리로 두산은 스윕패를 피하며 중위권 싸움에서 다시 치고 올라갈 수 있는 강력한 모멘텀을 얻었다.
정수빈은 "이번 시리즈에서 스윕을 당했다면 팀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을 수 있었는데 연패를 잘 끊어서 다행"이라며 "우리는 밑에서부터 치고 올라온 상태라 위에 있는 팀들이 오히려 우리를 더 무서워할 것이다. 이제 주포 양석환도 돌아와 시너지 효과가 날 것이고, 투수진에 김택연도 합류했기 때문에 더 치고 올라갈 수 있다"며 강한 자신감을 내비쳤다.
마지막으로 힘 없이 구부러진 손가락을 보여준 정수빈은 베테랑으로서의 묵직한 메시지를 남겼다.
"제가 이렇게 아파도 할 수 있으면 끝까지 한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면, 우리 후배들도 조금 아프다고 쉽게 경기에 빠지는 일 없이 책임감을 느끼고 뛰지 않을까요? 그거면 됩니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