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고재완 기자] "내가 지금 시대에 야구를 했다면 진짜 어려웠을 것이다. 내 주무기는 다 볼 판정을 받았을 테니까."
KBO 리그에 대격변을 몰고 온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Automatic Ball-Strike System)이 도입 3년 차를 맞이한 가운데, 과거 대한민국 마운드를 호령했던 '국가대표 에이스' 윤석민이 ABS에 대한 솔직하고 깊이 있는 견해를 밝혔다.
윤석민은 22일 자신의 유튜브 채널 '사이버 윤석민'에 '"이게 볼이라고요?" 말 많은 ABS에 대한 윤석민의 생각'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통해 예전 인간 심판 시절과 현재 로봇 심판 시대를 직접 비교 분석하며, 투타 양측의 고충과 향후 국제대회에서 마주할 변수를 짚어냈다.
윤석민은 영상에서 현재 KBO 리그에서 실제로 판정된 ABS 존 영상을 보고 볼·스트라이크를 맞히는 '심판 게임'을 진행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프로 통산 15년 동안 마운드를 지키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레전드의 눈과 로봇 심판의 판정은 여러 차례 어긋났다.
윤석민은 "예전 인간 심판 시절이었으면 무조건 볼이라고 생각했을 공이고, 만약 스트라이크를 줬다면 탄원서가 올라가고 난리가 났을 코스"라며 "내 주무기가 바깥쪽 코너 정교하게 보더라인을 물고 나가는 슬라이더였는데 현실적으로 ABS 시대였으면 이게 다 볼 판정을 받았을 것 같다"고 털어놨다. 이어 "바깥쪽 슬라이더를 안 잡아주면 투수는 결국 가운데로 던질 수밖에 없다. 요즘 투수들이 정말 힘들겠다는 생각을 하다가도, 또 투수에게 유리한 존을 보면 타자가 불쌍해지기도 한다"라며 투타 모두 혼란스러운 과도기임을 인정했다.
ABS 도입 3년 차인 2026시즌 KBO리그는 매우 독특한 통계적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윤석민은 "올 시즌 프로야구는 45년 역사상 역대 4번째로 볼넷이 많은 시즌이자, 동시에 역대 2번째로 탈삼진이 많은 기현상을 겪고 있다. 전체 평균자책점은 역사상 높은 순위로 13위에 랭크되어 완연한 '타고투저' 흐름을 보인다"며 "투수들이 완벽하다고 믿고 던진 보더라인 좌우 공들이 볼 판정을 받으면서 투수 입장에서 존이 좁다고 느끼고, 결국 볼넷 증가로 이어졌다. 반대로 예전에는 무조건 볼이라 여겼던 높은 직구나 낙차 큰 커브가 존 뒷면을 타고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으면서, 타자들이 하이존에 대처하지 못해 삼진 역시 폭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ABS를 완벽하게 지배하는 '본보기'로 윤석민은 류현진(한화 이글스)과 고영표(KT 위즈)를 꼽았다.
윤석민은 "올해 40세인 류현진은 ABS 존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완벽하게 공략하는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 있다. 야구 선수가 봐도 그냥 말이 안 되는 최고"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또한 "도입 첫해(2024년) 평균자책점이 4.95까지 치솟으며 사이드암 잔혹사를 겪었던 고영표가 지난해 3.30으로 완벽히 반등한 것 역시 뛰어난 제구력으로 기계를 이겨낸 사례"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진짜 큰 걱정은 따로 있었다. 바로 다가올 국제대회 대처법이다. KBO리그 선수들은 지난 3년간 철저하게 기계의 정밀한 존에 몸이 맞춰져 있다. 하지만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 같은 국제대회는 로봇이 아닌 '인간 아마추어 심판'들이 판정을 내린다. 윤석민은 이 점이 한국 대표팀에 치명적인 독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윤석민은 "KBO에서는 스트라이크를 받았던 실투성 높은 공이 국제대회에서는 볼이 될 확률이 높다. 반대로 아마추어 심판 특유의 넓은 좌우 존을 활용해야 하는데, 볼이 될까 무서워 KBO식 좁은 좌우 존만 고집하다 안쪽으로 몰려 맞을 수 있다"라며 "한국에서 볼로 잘 골라내던 높은 공을 무의식적으로 치려다 팝플라이 아웃이 되거나, 아마추어 심판의 넓은 바깥쪽 존에 대처하지 못해 얼어붙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민은 과거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 쿠바전 당시를 회상하며 "당시 인간 심판의 존이 엄청나게 넓었고, 류현진의 애매한 낮은 공 판정에 포수 강민호 형이 '낮았냐(Low ball)'고 정중히 물어봤음에도 심판이 즉각 퇴장을 시켰다"라며 "ABS에 익숙해진 현역 후배들이 국제대회에서 인간 심판의 성향을 빠르게 파악하고 멘탈을 유지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이번 단기전의 최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묵직한 조언을 건넸다.
고재완 기자 star77@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