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실=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정빈이는 아직 어려운 상황에 내면 실패할 확률이 크다. 선수 육성을 하는 데 있어서 막연한 기회는 좋은 경험이 될 수 없다."
확고한 1위를 달리고 있는 최강팀 LG 트윈스 염경엽 감독의 확고한 '계산형 육성론'이다.
염 감독은 25일 잠실 삼성 라이온즈전을 앞두고 팀 내 유망주 내야수 기용법에 대해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또 다른 카드인 천성호는 각 팀의 외국인 투수나 곽빈(두산) 같은 '1선발급' 에이스가 나올 때마다 선발 라인업에 넣어 독하게 성장을 유도하는 반면,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거포 원석' 문정빈에게는 당분간 부담이 적고 상대하기 편한 상황을 골라 매치업을 시키겠다는 구상. 실패로 인한 좌절감을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사령탑의 세심한 배려이자 단계별 차별화된 육성 프로세스다.
하지만 야구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염 감독이 이날 밝힌 '온실 속 육성 계획' 구상이 머쓱해졌다. 기분 좋은 무력시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날 LG는 1, 2회에만 대거 8실점하며 0-8로 일찌감치 패색이 짙어졌다. 이에 염 감독은 3회초부터 주전 1루수 오스틴 딘의 체력 관리 차원에서 벤치에서 대기하던 문정빈을 대수비로 투입했다.
계획에 없던 삼성 외국인 에이스 후라도를 만나게 된 상황. 염 감독이 "아직은 붙여선 안 된다"던 리그 최고 외인투수와의 맞대결이 성사된 것이다.
큰 부담 없는 상황에서 거침없이 돌린 방망이가 불을 뿜었다.
팀이 1-8로 뒤진 4회말 선두타자로 나선 문정빈은 후라도의 145㎞ 투심 패스트볼을 초구부터 주저 없이 당겨 깨끗한 좌전 안타를 만들어냈다.
첫 타석을 기분 좋게 소화한 문정빈의 배트는 5회말에 더 크게 폭발했다. 2-8로 추격하던 2사 1루, 0B2S로 볼카운트가 몰린 가운데서도 후라도의 3구째 147㎞ 직구를 거침없이 밀었다. 힘이 제대로 실린 타구가 쭉쭉 뻗어 잠실구장에서 가장 깊은 가운데 담장을 강하게 때리고 나오는 적시 3루타로 연결됐다.
물론 큰 점수 차 리드 상황이라 후라도가 공격적으로 들어왔고, 타자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스윙을 돌릴 수 있었던 상황적 요인을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리그 최고 투수의 변화무쌍한 공을 완벽한 타이밍으로 힘을 실어 가장 깊은 곳으로 날려보낸 타격 능력은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에이스 후라도를 상대로 거둔 '멀티히트 1타점' 활약.
2022년 2차 8라운드 77순위로 LG에 지명된 문정빈은 지난해 처음으로 1군 무대를 밟은 거포 유망주. 올시즌 25일 현재 24경기에 출전, 타율 0.279, 5홈런, 15타점으로 활약하며 1군 체류시간을 늘려가고 있다.
문정빈의 최대 장점은 단연 '장타 생산력'이다. 올 시즌 그가 때려낸 총 17개의 안타 중 무려 10개가 장타(홈런 5개, 2루타 3개, 3루타 2개)다. 장타율이 0.639에 달한다.
수년간 우타 거포 가뭄에 시달렸던 LG로선 올 시즌 최고 히트상품 송찬의의 뒤를 이을 두번째 '오른손 거포'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다.
염경엽 감독은 경기 전 인터뷰에서 "후반기에 문정빈까지 궤도에 올라온다면 정빈이도 어려운 투수를 상대로 넣을 것"이라고 장기 플랜을 밝혔다. 하지만 문정빈은 예상치 못하게 일찌감치 찾아온 기회에서 "센 투수 공도 칠 수 있습니다"라고 시위하듯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사령탑 눈 앞에서 펼쳐냈다.
"(천)성호와 (문)정빈이 두 선수 모두 내년에 한층 더 도약할 것"이라던 염 감독의 예언이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현실로 다가올 지도 모르겠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