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김영록 기자] 팀의 클린업이자 차세대 거포가 시즌 도중 포지션을 옮겼다. 김경문 한화 감독의 속내는 어떤 것일까.
한화 이글스 문현빈은 좌익수로 올시즌을 출발했다. 하지만 지난 18일 NC 다이노스전 이후 최근 10경기 연속 중견수로 선발출전중이다.
지난해보다 타율은 3할2푼에서 2할8푼2리로 크게 떨어졌지만, 출루율(3할7푼→3할7푼3리)이나 장타율(4할5푼3리→4할6푼4리)은 소폭 상승했다. 문현빈이 한단계 더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다. 때려서 출루하고, 쳐야만 타격감을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에서 어느덧 지켜보는 인내심과 선구안까지 갖춘 것. 홈런도 시즌이 반환점을 돈 현재 9개를 기록하며 지난해(12개)를 넘어설 가능성이 높다.
다만 6월 한달간 다소 부진하다. 타율 2할3푼2리, OPS 0.608에 그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좌익수에서 중견수로 포지션을 옮기면서 커진 수비 부담을 지적하고 있다.
김경문 감독의 생각은 어떨까. 그는 "문현빈이 중견수를 보면서 대단한 활약을 해주길 바라진 않았다. 지금 보면 평균적으로 잘해주고 있고, 잡아야할 볼은 놓치지 않는다. 수비가 불안한 모습은 없는 것 같다"면서 "기본적으로 발이 빠르고, 젊은 선수다. 예전에도 중견수로 뛴 경험이 있고, 대표팀에서 박해민(LG 트윈스)에게 많은 조언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게 여러가지로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준급 중견수는 한화의 염원이다. 이진영 임종찬 유로결 이원석 등 수년간 자체 육성을 시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올해도 신인 오재원을 뽑은 뒤 시즌초 주전 중견수로 기용했지만, 신인다운 벽에 부딪혔다. 앞서 거물급 FA 영입도 여러차례 시도했지만, 번번히 쓴맛을 봤다.
문현빈이 중견수 한자리를 책임져준다면, 선수 운용에 큰 도움이 된다. 가령 올겨울 FA 시장에 나오는 김호령(KIA) 정수빈(두산) 최지훈(SSG) 배정대(KT) 등의 FA에 시선을 돌릴 필요가 없어진다. 강백호나 채은성, 김태연 등을 1루와 좌익수, 지명타자로 번갈아 기용하며 타선에도 유연함을 부여할 수 있다.
특히 문현빈은 프로 입문 이후 다양한 포지션을 거친 선수다. 중견수 도전이 처음은 아니다. 북일고 시절 포지션은 2루수였고, 프로 데뷔시즌인 2023년 1군에서 자리잡는 과정에서 타격재능을 높게 평가한 코치진이 꽉찬 내야 대신 중견수로 처음 기용하기 시작했다.
잠재력을 제대로 터뜨린 건 2024년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다. 후반기초 대타 자원으로 존재감을 뽐냈고, 이후 2~3루의 공백을 두루 책임지며 주목받았다.
2025년 4월부터 김경문 감독이 문현빈을 붙박이 좌익수로 활용하면서 잠재력이 대폭발했다. 수비부담을 떨쳐낸 문현빈은 타율 3할2푼 12홈런 80타점, OPS(출루율+장타율) 0.823으로 팀의 3번타자에 손색없는 활약을 해냈다. 타율 5위, 최다안타 공동 4위(169개) 등 기록 면에서도 훌륭한 한 해를 보냈다.
특히 정규시즌뿐 아니라 포스트시즌에도 플레이오프부터 한국시리즈까지 10경기 모두 3번타자 좌익수로 선발출전, 수많은 명장면을 연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플레이오프 1차전 승부를 뒤집는 싹쓸이 적시타, 4차전 3점포, LG 트윈스와의 한국시리즈 4차전 적시타 등 야구팬들의 마음에 문현빈이란 이름 세 글자를 깊게 아로새긴 한 해였다.
앞서 문현빈은 중견수 자리에서 바라보는 시야가 고교 시절 주 포지션이었던 2루와 비슷해 외야 세 자리 중 가장 편하다고 말한 적도 있다. 흔히 외야로 전향한 내야수들 대부분이 타구가 좌우로 크게 휘는 코너보다는 오히려 발만 어느 정도 빠르다면 타구가 직선에 가깝게 뻗는 중견수를 더 선호하기도 한다.
6월의 부진은 우연찮게 포지션 이동 타이밍이 타격 부진과 겹쳤을 가능성이 있다. 6월 들어 좌익수를 맡은 17일까지의 타격 성적은 타율 2할5푼6리(43타수 11안타) 0홈런 3타점 OPS 0.591, 중견수를 맡은 18일부터의 성적은 타율 2할1푼2리(52타수 11안타) 1홈런 6타점 OPS 0.622로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올해 한화는 KIA와 더불어 '홈런 군단'이다. 팀 홈런 2위(87개, 1위 KIA 93개), 팀 OPS 1위(0.776)라는 숫자로 증명된다. FA 영입한 강백호가 4번자리를 든든하게 책임져주고 있고, 페라자 노시환 허인서 등 거포들의 활약상이 빛난다.
문현빈이 중견수에 정착할 경우 교타자 대신 거포형 타자 한명을 라인업에 추가할 수 있어 타선의 무게감이 달라진다. 특히 상대의 에이스가 등판하는 경기, 포스트시즌의 큰 경기일수록 한방의 중요성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올해 나이 68세, 최고령 노장의 시선은 이미 가을까지 바라보고 있는 걸까.
김영록 기자 lunarfl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