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 KBO리그 홈런 타자 나성범(KIA)이 제대로 타격 자세조차 취하지 못한 채 그대로 얼어붙었다.
150㎞를 가볍게 던지는 '구속 혁명'의 시대, NC 다이노스 에이스 구창모(29)가 선보인 정교한 타이밍 싸움과 변칙 투구가 만들어낸 명장면이었다.
구창모는 3일 광주 KIA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7안타 무4사구 3탈삼진 3실점 역투로 팀의 11대3 대승을 이끌었다.
시즌 15번째 등판에서 10번째 퀄리티스타트(QS)를 달성하며 시즌 8승(2패)째를 수확했다. 평균자책점은 3.44로 안정감을 유지했다.
구창모의 마지막 이닝 6회말이 인상적이었다.
NC가 4-3으로 1점 앞선 접전 상황. 1사 후 구창모는 최근 불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던 KIA의 간판타자 나성범을 상대했다.
경기 후반 접전 상황에서 더욱 무서워지는 클러치형 타자. 전날 SSG전에 홈런 포함, 5타수4안타 절정의 타격감으로 NC전을 맞이하고 있었다.
볼카운트 0B2S에서 구창모가 선택한 3구째는 준비자세를 생략한 채 변칙적으로 빠르게 던진 146㎞ 한가운데 직구였다. 와인드업에 타이밍을 잡고 있던 나성범이 타이밍을 완전히 빼앗긴 그대로 선 채로 공을 지켜보며 루킹 삼진을 당했다. 리그 최고의 베테랑 슬러거를 무력화시킨 순간.
구창모는 지난 2일 창원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최근 투구 패턴의 변화와 변칙 투구 도입에 대해 솔직한 속내를 털어놓았다. 그는 "요즘 젊은 투수들은 평균 구속이 150㎞다. 투수만 좋아진 게 아니라 타자들의 기량도 엄청나게 올라왔다는 것을 군대에 다녀오면서 확실하게 체감했다"며 "드라마틱하게 구속을 올리지 못한다면 타이밍 싸움으로 변화를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살아남으려고 시도한 변화"라고 고백했다.
구창모는 힘으로 윽박지르는 대신 양현종 처럼 맞춰 잡는 투구나 디테일한 기술적 승부를 택했다. 부상 경력도 한몫했다. 그는 "150㎞ 넘는 빠른 공도 맞아나가는 걸 보면 구속이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나는 부상 경력이 많은 선수다 보니 구속을 억지로 올리려다 다치면 팀에 큰 마이너스"라며 "구속에 대한 욕심보다는 정교함과 디테일로 승부하는 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슬기로운 타자 요리법'은 과거 부상 공백기 속에 얻은 값진 깨달음이었다.
구창모는 "2019년 허리 부상으로 공을 제대로 못 던질 때가 있었다. 어떻게든 버텨보려고 135㎞ 정도밖에 안 되는 공으로 타이밍 싸움을 했는데, 생각보다 타자들이 너무 못 치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친다고 다 안타가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그때 확실히 느꼈다. 부상이 너무 싫었지만, 그 아픔 속에서 야구를 보는 눈이 한 단계 넓어졌다"고 말했다.
보통 30대 중후반이나 40대 베테랑 투수들이 뒤늦게 깨닫고 회춘하는 결정적 '깨우침'을 구창모는 잦은 부상으로 인해 일찌감치 터득한 셈이다.
현재 NC 덕아웃에는 강속구를 뿜어내는 젊은 투수들이 수두룩하다. 선배로서 이들을 향한 애정 어린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구창모는 "우리 팀 중간 투수들을 보면 150㎞를 못 던지는 선수가 없다"라며 "하지만 맹목적으로 세게만 던진다고 안 맞는 게 아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고 자신을 믿었으면 좋겠다. 후배들이 변화구나 타이밍 싸움에 대해 내게 더 많이 물어보고 질문해 줬으면 좋겠다"고 열린 선배에게 언제든 찾아올 것을 당부했다.
에이스의 가치는 단순히 전광판에 찍히는 숫자로만 증명되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 없는 변화를 주는 구창모의 디테일한 변칙 투구와 타이밍 싸움. 힘든 시간을 씩씩하게 헤쳐온 리그 최고 좌완투수가 더욱 매력적인 모습으로 진화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