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진짜 대형 사고를 칠 분위기다.
메이저리그 통산 32승에 빛나는 삼성 라이온즈 새 외국인 투수 크리스 페덱(30)이 데뷔전부터 KBO리그 무대를 완벽하게 지배했다.
단순히 경력만 화려한 투수가 아니었다. KBO리그의 '공인구'와 '로봇 심판(ABS)' 시스템이 오히려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모양새다.
페덱은 18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 6이닝 동안 85구를 뿌리며 1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의 완전무결한 피칭으로 5대0 3연승을 이끌며 성공적인 데뷔 첫 승을 신고했다. 최고 152km의 패스트볼과 투심, 커터, 커브, 체인지업 등 무브먼트 강한 구위가 현란하게 춤을 추며 롯데 타선을 무력화했다.
경기 후 수많은 홈팬의 환호 속에 만난 페덱은 KBO리그 첫 등판 소감과 함께, 한국 무대 조기 연착륙을 예고하는 흥미로운 비하인드 스토리를 털어놓았다.
"KBO 공인구, 실밥 굵고 찐득해…변화구 마구 될 것"
페덱이 꼽은 첫 번째 '호재'는 다름 아닌 한국의 공인구였다.
미국 메이저리그 공인구는 다소 매끄러운 반면, KBO리그 공인구는 그 자체로 손에 착 감겼다는 설명이다.
그는 "미국 공보다 한국 공인구가 조금 더 찐득찐득하고 실밥(심)이 더 굵다. 나에게는 이 점이 마운드 위에서 그립감을 잡는 데 아주 좋았다. 어떤 선수들은 한국 공이 더 작다고도 하는데 내가 느꼈을 때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만족해했다.
특히 굵은 실밥과 끈적한 재질은 그의 주무기인 변화구의 위력을 배가시켰다.
페덱은 "포수들, 코치들과 대화하며 이 공인구가 KBO리그에서 내 큰 무기가 될 거라는 확신을 가졌다. 실밥이 굵어 브레이크가 확실히 더 잘 걸린다"고 증언했다.
"ABS 덕 많이 봤다. 원하는 곳 던질 수 있어 수월"
올 시즌 KBO리그의 가장 큰 변수인 자동 투구 판정 시스템(ABS) 역시 페덱에게는 강력한 '우군'이 될 전망이다. 메이저리그 수준의 칼날 제구를 갖춘 페덱에게 일관성 있는 ABS 존이 안기는 보너스 존은 마다할 이유가 없는 최상의 조건이다.
페덱은 "안 그래도 오늘 ABS 덕을 좀 많이 본 것 같다. 메이저리그 같았으면 스트라이크 콜이 안 나왔을 법한 코스의 공들도 확실하게 스트라이크 판정을 내려주니 경기를 수월하게 풀어나갈 수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페덱은 마운드 위에서 높은 존과 낮은 존의 기준을 완벽하게 시각화하며 영리하게 마운드를 운용했다.
그는 "타자가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ABS 존의 상하한선을 확실하게 머릿속에 그렸다. 내가 원하는 곳으로 공을 던질 수 있는 제구력이 있기 때문에, ABS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은 앞으로 내게 아주 큰 플러스 요인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팬들의 기대치에 완벽 보답, 우승 청신호 켠 삼성
이날 페덱의 피칭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총 투구수 85구 중 스트라이크만 56개를 꽂아 넣는 공격적인 피칭. 6회초 동료의 실책으로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도 흔들림 없이 도루왕 황성빈을 피칭 템포 완급조절과 완벽한 퀵모션으로 1루에 묶어두는 노련함까지. 페덱은 왜 삼성이 자신을 공들여 모셔왔는지를 단 1경기 만에 증명해 냈다.
그는 "오늘 밤은 전반적으로 정말 만족스러운 경기였다. 홈팬들의 엄청난 기대치에 완벽하게 부응할 수 있어서 기쁘고, 라이온즈파크 홈 구장에서 데뷔 첫 승을 거두게 되어 매우 흥분된다"고 말했다.
메이저리그 32승을 거둔 빅리그 현역 거물 투수가 KBO리그 특징인 공인구와 ABS마저 자기 편으로 만들었다. 선두 굳히기에 나선 삼성 라이온즈를 우승으로 이끌어줄 수 있는 '진짜 에이스'를 찾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