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폐 위기 프로농구, KBL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최종수정 2013-03-12 06:10

KBL 미디어데이. 제공=KBL

말하기도 지겹다. 프로 농구, 최대 위기다. 한마디로 비상 시국이다. '비상대책위원회'라도 구성해야 할 판이다. 하지만 정작 제일 안절부절 못해야 할 단체에서 절박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한국농구연맹(이하 KBL) 이야기다.

여기저기서 터져나오는 비판. 억울할 게다. 상황 수습을 위해 나름 노력하고 있다며 볼멘 소리를 할 것이다. 물론 손 놓고 있다는 건 아니다. 무언가 대책을 내놓긴 한다. 하지만 문제는 현실적이지 않다는데 있다. 위기 극복이란 문고리에 맞지 않는 가짜 열쇠가 든 봉투만을 내밀고 있는 셈. 생사가 달린 전시 상황인데 평화시에 내놓을만한 한가한 일반론. 공자님, 맹자님 말씀만 난무한다. 위기 의식이 없다는 방증이다.

사후약방문식 전시 행정

문제가 된 6강 고의탈락 의혹. 사실이라면 명백한 '승부조작'이다. 대놓고 이야기하기 금기시됐을 뿐…. '금품이 오가지 않는데 무슨 상관?'이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입장료를 내고 체육관에 발걸음한 팬들에게 프로팀의 '고의패배'는 곧 '배임죄'나 다름없다. 금쪽같은 2시간여를 이미 정해진 승부처에 머물며 허비할 이유가 없다. 경기당 불과 1000~2000명으로 관중석이 썰렁해진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해당 구단의 도덕 불감증만을 탓할 문제일까. 문제 구단, 잘못한게 맞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해당 사항 없는 올시즌 상위 구단이라도 같은 입장이었다면 극단적 리빌딩을 선택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사실이다. 잘못임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선택? 그렇다면 진짜 문제는 시스템 탓이다.

KBL은 늘 그랬듯이 일이 크게 터진 뒤에야 뒤늦게 분주하게 움직였다. 노골적 6강 고의 탈락 움직임은 일찌감치 있었다. KBL도 알고 있었다. 초동 단계부터 적극 대응했어야 했다. 당장 구단 대표들을 불러모아 실질적인 경고와 강경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 미리 '무성의 게임을 한 구단에 1순위 신인드래프트 픽을 박탈한다'든지 '변경된 신인드래프트제도를 올시즌부터 당장 시행하겠다'는 등의 강력 경고를 통해 문제를 실질적으로 수습했어야 했다. 리그 존폐가 걸린 초대형 악재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KBL 대응은 시기적으로 늦었고 또 한가했다. KBL은 지난달 12일 '프로농구 경기력 강화를 위한 입장'을 각 구단과 언론사에 배포했다. '최근 제기되고 있는 일부 구단의 최선을 다하지 않은 경기운영에 대해 드래프트 제도 개선과 해당 구단 직접 징계 방침'을 천명했다. 실효성이 없었다. 당장 목 앞에 칼이 들어오지 않는한 구단들이 이미 내부적으로 한번 정한 방향을 바꿀리 없었다. KBL의 성명서는 '문제를 인식하고 있고 대응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해달라'는 언론 플레이에 불과했다.

KBL은 지난달 25일 이사회를 열어 문제의 신인드래프트 제도를 뜯어고쳤다. 하위 4개팀에 집중됐던 상위권 픽의 추첨 확률을 8개 구단으로 크게 넓혔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오히려 변경 제도를 2014~2015시즌 드래프트부터 시행하기로 해 문제 구단에 '이중 혜택'의 여지만 남겼다. 사실 대어급 신인을 잡기 위한 극단적 리빌딩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KBL도 이 문제가 시한 폭탄이 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예방 조치를 등한시했다. 올시즌 문제가 노골적으로 불거지면서 언론이 떠들석하고 팬들의 비난이 빗발치자 뒤늦게 나섰다.

최악의 승부조작 사건에 대한 대응도 마찬가지다. KBL은 2011년 축구를 시작으로 타 프로 종목에 연쇄적인 승부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농구는 승부 조작이 불가능하다"며 수수방관했다. 승부조작 사건의 핵심인 불법 토토에서 농구는 가장 승부조작을 하기 쉬운 종목이란 불안감을 오직 KBL만 외면했다.


무엇을 위한 '평등주의'인가

KBL의 일관된 철학이 있다. '평등주의'다. 리그에 참여하는 10개팀이 골고루 돌아가면서 우승하는 시나리오다. '평등주의' 철학은 여러 제도들에 잘 녹아있다. 하위팀에 절대 유리한 신인드래프트와 외국인 선수 선발 제도, 전력 강화를 인위적으로 막는 샐러리캡 제도, 혼혈선수 강제이적 제도 등이 '평등주의'란 철학을 주춧돌 삼아 세워져 있다. 투자하고픈 부자 구단도 투자를 할 수 없도록 만드는 제도. 프로농구를 보는 재미를 크게 반감시키는 요소다. 이같은 구조 하에서는 명문구단 탄생 자체가 어렵다. 라이벌 구도도 형성되기 힘들다. 넘볼 수 없는 전통의 강팀 간 라이벌 구도나, 절대 강자와 신흥 강자 간 대결 구도는 매우 흥미로운 볼거리다. 농구 전성기 당시 중앙대 연세대 고려대 등 대학 라이벌과 기아, 삼성, 현대 등 실업 라이벌의 숨막히는 명승부를 기억하면 간단하다. 한 팀에 허재,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의 대스타가 모여있어서 안된다는 법은 없다.

그 뿐만이 아니다. 평등주의는 자칫 위험하기까지 하다. KBL이 10개 구단을 두루 살펴주다보면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도 있다. 평등주의가 보편화하면서 때론 '올해는 특정 팀이 우승할 것'이란 이상한 루머까지 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각 팀들은 의혹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큰 승부에서 진 팀은 괜히 억울하다. 억울했던 심판 판정이 두고두고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실제 눈에 보이는 오심도 많으니 이러한 심증이 확대 강화된다. 불신이 팽배하고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오해가 일파만파로 확대되면 리그의 끝은 파국 뿐이다.

평등주의가 필요했던 시기도 있었다. 스폰서십 문제 등 현실적 필요성도 있었다. 어떤 제도도 완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리그 인기를 하락시키는 치명적 요소가 잠재된 제도라면 과감히 버려야 한다. KBL은 "이제는 평등주의를 버릴 때가 됐다"는 조언을 애써 외면한다.

지금 농구는 비상 시국이다. 평소같은 한가한 대책만으로는 절대 빠져나오기 힘든 깊은 늪이다.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위기 대응 마련이 절실하다. 그 책임은 KBL의 몫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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