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스 다른 모비스 경기지배력, '만수'는 무슨 준비했나

기사입력 2014-03-24 10:47


모비스 유재학 감독. 사진제공=KBL

4강 1차전만 놓고 보자. 모비스는 6강에 진출한 다른 팀과 다른 클래스였다.

기본적으로 굳건했다. 특히 수비 조직력은 마치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은 농익은 유기성을 자랑했다. 상대의 약점을 철저하게 파고들었고,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였다. 세밀했고, 디테일이 살아있었다.

그 원동력은 철저한 준비다. 가장 기본적이지만, 심오한 부분이기도 하다. 단지 임시방편적인 패턴의 변화나 공수의 변화가 아니었다. 그 중심에는 선수 위치 하나하나까지 잡아주는 세밀함과 함께 2년 이상 준비한 부분이 녹아있는 완벽한 숙련도가 배여있었다.

●레벨이 달랐던 기민한 대처

경기가 끝난 뒤 모비스 유재학 감독은 "더 이상 준비할 건 없다"고 했다. 마치 전교 1등이 시험준비를 완벽하게 마치고 시험을 기다리는 듯한 모습.

실제 1차전에서 그런 여유있으면서 기민한 대처가 나왔다. 대표적인 장면이 모비스의 2쿼터 수비다.

SK 문경은 감독은 "2쿼터 모비스가 2-3 지역방어를 딱 맞는 타이밍에서 쓰는 것을 보고 또 한번 배웠다"고 했다. 지역방어는 상대 팀에 따라, 어떤 상황에 따라 쓰느냐에 따라 '보약'이 될 수도 있고, '독약'이 될 수도 있다.

모비스는 2쿼터 8분 경 '박승리 카드'가 나오자 2-3 지역방어로 수비를 바꿨다. SK는 박승리를 양동근의 매치업 상대로 붙였다. 1m98의 혼혈선수인 박승리는 큰 키에 스피드가 뛰어나다. 양동근이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는 카드. 그런데 박승리가 나오면 SK 역시 약간의 딜레마가 있다. 가드 1명만을 쓸 수밖에 없는데, 경기운영능력이 팀 전체적으로 떨어진다.


유 감독은 "당시 SK에서 위력적인 외곽포를 가동할 수 있는 라인업이 아니었다. 원 가드이기 때문에 경기운영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봤다"고 지역방어를 쓴 이유에 대해 밝혔다.

즉, 상대의 히든 카드에 대한 약점을 공략, 오히려 자신의 페이스로 끌어들이는 전술이다.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순간적인 변화에 따른 부작용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사실 플레이오프에서 모든 사령탑은 패턴에 대해 약간의 변화를 준다. 하지만 큰 틀에서 벗어나는 부분은 별로 없다. 중요한 것은 적재적소에서 사령탑이 어떤 패턴을 가져가느냐와 함께 변화된 패턴의 숙련도에서 경기력의 차이점이 나온다. 모비스는 그런 점에서 완벽했다.

물론 SK의 세부적인 약점이 존재했기 때문에 가능하기도 했다. 여전히 김선형은 퍼리미터(페인트존 바깥과 3점슛 라인 안의 미드 레인지)슛 능력이 많이 떨어진다. 특정 공격패턴에서 박상오와 김민수, 심스 등의 활용이 여전히 떨어진다. 김선형과 헤인즈의 변화없는 특정패턴이 여전한 것도 사실.

그러나 그런 세부적인 약점을 공략하는 모비스 능력이 더욱 인상적이다. 상대의 선수조합에 따라 어떨 때는 지역방어, 어떨 때는 정상적인 맨투맨, 어떨 때는 내외곽의 트랩 디펜스 등을 자유자재로 구사했다. 마치 어떤 분야의 장인이 기술을 완벽하게 부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레벨이 다른 기민한 대처능력은 유 감독이 가진 특별함이다. 그 속에는 숙성된 내공이 담겨져 있다.

●왜 숙련도의 레벨이 다를까

1차전 모비스의 수비력은 마치 종합선물세트를 보는 것 같았다. 지역방어 뿐만 이날 맨투맨에서도 상대의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지난 시즌 챔프전에서 모비스는 SK 애런 헤인즈를 완벽하게 잡았다. 골밑 1.5m 부근의 함정수비가 그 핵심이었다.

헤인즈가 공을 잡으면 일부러 사이드 라인을 열어준 뒤 골밑 1.5m 부근에서 트랩 디펜스가 들어갔다. SK가 외곽으로 패스를 연결하면, 모비스 특유의 기민한 로테이션 수비로 외곽까지 봉쇄시켰다. 헤인즈 의존도가 많은 SK의 약점을 공략한 맞춤형 수비.

1차전에서 그런 수비는 계속 이어졌다. 차이점은 있었다. 헤인즈와 심스가 골밑으로 접근했을 때 트랩 디펜스와 로테이션 수비가 들어간 것은 일치한다. 그런데 SK의 모든 선수들에게 사이드라인을 일부러 열어준 것은 공통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를 덧붙였다. 트랩 디펜스를 들어가는 타이밍과 위치까지 세밀하게 조정한 뒤 패스 레인을 차단시키는 포메이션까지 완성한 점이다. 때문에 모비스는 골밑까지 들어온 SK 선수들의 연결 패스를 계속적으로 스틸했다.

또 하나, SK는 후반 풀코트 프레스를 가동했다. 하지만 모비스는 여유있게 하프라인을 넘었다. 가드들이 짧게 짧게 컷 인을 하면서 2~3차례의 패스로 쉽게 하프라인을 넘었다. 2008~2009 시즌 주전 포인트가드 김현중이 다치면서 볼을 운반할 가드가 없어 상대 풀코트 프레스에 고전하자, 당시 유 감독은 패스를 통해 하프라인을 넘는 포메이션을 만들었고, 그 부분이 계속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또 하나, 공격에서 모비스 양동근은 SK의 2-3, 3-2 드롭존을 여유있게 파괴시켰는데, 이 부분 역시 지난 시즌 경험을 통해 꾸준히 연습했던 부분이다. 사실 그동안 양동근은 세밀한 패스약점에 대해 계속적인 지적이 있었다. 유 감독은 "특정 틀 속에서 2~3가지의 옵션을 주면 양동근은 여유있게 SK의 지역방어에 대처할 수 있다"고 했다.

이런 전술들은 낯설지 않다. 모비스가 2~3년 전부터 해왔던 것. 약간의 변형만을 가해 적재적소에 쓰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때문에 모비스 양동근은 "항상 해왔던 공수의 패턴이다. 플레이오프라고 달라진 것은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는 이유. 이날 유 감독이 코트에 서서 가장 많이 한 일은 박수를 치는 것이었다. "준비는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말한 유 감독의 발언은 2~3년 전부터 철저하게 준비한 자신감에서 비롯되는 멘트.

2년 전 모비스는 4강에서 동부를 만나 1승을 거둔 뒤 3연패를 했다. 당시 유 감독은 "동부는 김주성 윤호영 벤슨 등 장기간 손발을 맞춘 숙련도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함지훈이 군에서 얼마전에 제대롤 했다. 그런 숙련도 싸움에서 졌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유 감독이 단지 인정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1차전 모비스의 경기력은 예기를 품은 보검, 그 자체였다. 울산=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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