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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17일이다. 허 재 감독은 전체 4순위 지명권을 가지고 있었다.
운명은 얄궂었다. 허 감독이 지휘봉을 잡고 있는 KCC가 1, 2순위를 차지했다면 이런 고민이 필요없다. 당연히 이승현이나 김준일을 선택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속사정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허 감독이 허 웅을 지명할 확률은 극히 떨어졌다. 신인 드래프트가 열리기 전 이미 KCC 내부적으로 '김지후와 허 웅 중 한 명을 선택해야 할 때 김지후를 택한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었다. 허 감독도 동의한 부분이었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허 감독이 얘기한 '감독과 그 아들이 한 팀에서 생활하는 애매함'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팀워크에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허 웅은 매력적인 선수다. 운동능력이 뛰어나고, 순발력이 좋다. 강한 수비와 함께 승부처에서 클러치 능력도 있다. 하지만 프로에서 주전으로 뛰기에는 아직까지 설익은 부분이 있다. 당연히 프로데뷔 첫 해는 경험을 쌓는 단계가 필요하다. 즉, KCC에 지명되면 식스맨으로 뛸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KCC는 고만고만한 선수들이 많다.
따라서 허 감독이 아들을 기용할 때 생기는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많을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쌓이면 팀 워크에 많은 악영향을 줄 수 있다. 노련한 KCC 수뇌부들과 허 감독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일찌감치 김지후 선택의 원칙을 세운 이유다.
또 다른 이유도 있다. 프로의 냉정함이 스며있다. 김지후와 허 웅을 비교해 보자. 물론 의견이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의 평가는 "현재는 김지후가 앞서 있다. 외곽슛 능력만으로 놓고 보면 올해 신인 중 가장 낫다. 하지만 미래의 잠재력 측면에서 허 웅은 무한한 가능성이 있다. 순발력이 뛰어나고 수비력이 좋은 장점도 가지고 있다"고 했다.
KCC는 김태술을 영입하고, 하승진이 군에서 제대했다. 우승을 노려야 할 팀이다. 당연히 즉시 전력감이 필요하다. 하승진의 강한 인사이드에서 나오는 외곽슛의 공격옵션을 가장 잘 활용할 카드가 필요하다. 허 웅보다는 김지후가 낫다. 2~3년 후에는 허 웅이 김지후를 능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우승에 도전해야 할 KCC 입장에서는 올 시즌 당장 전력에 보탬이 되는 선수가 필요했다.
김지후를 택한 KCC의 두번째 이유다.
KCC의 이런 결정은 매우 긍정적이다. KCC와 허 재 감독, 김지후 뿐만 아니라 허 웅과 동부까지도 승자가 됐다.
김지후는 평균 30분 이상 뛰며 경기당 평균 8.9득점, KCC의 강력한 외곽 공격옵션이 됐다. 프로 적응의 시간이 필요했던 허 웅은 별다른 활약을 펼치지 못하다 1일 KGC전에서 33분31초를 소화, 16득점, 6리바운드 2스틸로 승리의 일등공신이 됐다. 예상보다 빨리 프로에 적응하고 있다. 동부 입장에서도 내외곽을 휘저으며 공수에서 도움을 주는 허 웅의 존재는 매우 중요해졌다. 이대로 성장한다면 플레이오프에서도 전술적 가치는 더욱 커진다.
팀 컬러를 볼 때도 김지후는 KCC, 허 웅은 동부에 더 잘 맞는다. 하승진과 두 외국인 선수(심스, 윌커슨)의 골밑 미스매치가 주요 공격루트인 KCC는 상대의 더블팀이나 지역방어에 외곽 오픈 찬스가 많이 난다. 이 때 나오는 외곽포를 정교하게 연결시켜주는 슈터의 가치가 커진다. 반면 김주성 윤호영, 사이먼 등 '빅3'가 중심인 동부는 외곽의 수비 활동력이 좋고, 슈팅능력이 조화를 이룬 슈팅가드가 필요하다. 그런데 동부는 그런 선수가 두경민밖에 없다. 허 웅 입장에서는 기회를 잡을 가능성이 KCC보다 동부가 더 높다.
허 감독은 10월29일 전주 SK전을 앞두고 '아들과 가끔 전화통화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남의 선수와 왜 통화를 해"라고 특유의 퉁명스러운 대답을 툭 던졌다. 그러나 이내 "아직 수비할 때 주변을 보는 센스가 부족하다. 공격의 흐름을 끊는 패스를 많이 한다"와 같은 쓴소리를 많이 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직 많이 부족해. 죽도록 연습해서 이겨내야 해"라고 했다. '농구대통령'이 아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다. 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