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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스가 다른 경기였다. 한국농구 흥미도의 극대화를 위한 표본같은 게임. 한마디로 명승부였다.
우리은행은 13일 춘천호반체육관에서 열린 2014~2015 KB국민은행 여자프로농구 정규리그 홈 경기에서 혈투 끝에 신한은행을 66대64로 눌렀다. 우리은행은 박혜진(8득점, 4리바운드, 2어시스트) 임영희(11득점, 3리바운드), 샤데 휴스턴(19득점, 9리바운드) 등이 맹활약했고, 신한은행은 최윤아(14득점, 7리바운드, 7어시스트)의 분전이 돋보였다.
경기 전 정인교 신한은행 감독은 "우리은행은 3년동안 갈고 닦은 팀이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하는 팀"이라고 했다. 그리고 "지난 경기처럼 무기력하게 패하면 안된다. 승패를 떠나 의미있는 경기내용을 보여야 한다. 선수들의 눈빛이 지금 살아있다"고 했다.
신한은행은 평소와 달랐다. 우리은행의 극심한 몸 싸움에 양보가 없었다. 결국 7분을 남기고 우리은행은 팀 파울에 걸렸다. 최윤아의 2개의 속공을 앞세워 신한은행은 근소한 리드를 잡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우리은행 선수들의 집중력이 높아졌다. 박혜진이 스크린을 이용해 미드 레인지 점프슛을 성공시켰다. 완벽한 팀 플레이로 사이드에서 오픈 찬스를 만들어 중거리슛을 터뜨렸다. 박혜진의 기량이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증거. 우리은행은 임영희를 1쿼터에 기용하지 않았다. 하루 쉬고 경기한 체력부담을 최소화 하기 위한 조치. 게다가 4쿼터 승부처를 대비한 포석이기도 했다. 대신 기용된 식스맨 박언주는 2개의 3점포를 터뜨렸다. 더욱 인상적인 부분은, 박언주의 3점포가 완벽한 팀 플레이에 의한 순간적인 오픈찬스를 이용한 공격이라는 점이다. 경기 전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샤데 휴스턴이 팀에 적응하면서, 해결사가 생겼다. 때문에 공격에 대한 부담을 덜고, 식스맨들을 더욱 적극적으로 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고 했다. 결국 일찍 팀 파울이 걸린 우리은행은 높아진 집중력과 박언주의 의미있는 6득점으로 우리은행이 19-15, 1쿼터 리드를 잡았다.
●2쿼터=샤데 휴스턴의 원맨쇼였을까
휴스턴은 2쿼터 팀 득점(17점)의 대부분인 13점을 몰아넣었다. 외국인 선수가 원맨쇼를 펼칠 때 생기는 부작용이 있을 수 있다. 공수, 내외곽의 밸런스가 급격히 깨진다. 특히 초반에 그런 상황이 생길 경우 더욱 심각해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은행은 공고했다. 휴스턴의 득점 과정이 우리은행의 조직적 움직임과 밀접한 연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2쿼터 식스맨 이은혜를 기용했다. 그러나 박혜진과 임영희를 동시에 기용하지 않았다. 역시 승부처 4쿼터를 위한 포석. 이 과정에서 철저히 휴스턴에게 철저한 패턴을 통한 공격기회를 만들어줬다. 때문에 휴스턴의 슛 셀렉션은 매우 정제돼 있었다. 공격제한시간이 쫓길 때 박혜진과 임영희의 절묘한 킬패스가 휴스턴의 득점으로 연결되기도 했다. 우리은행의 정밀한 조직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수비는 여전히 압박이 강했다. 신한은행은 일시적으로 흐트러졌다. 8분23초를 남기고 우리은행은 25-17로 리드를 벌렸다. 1차 승부처였다. 여기에서 10점 이상 벌어지면, 초반 기선은 완벽히 우리은행이 잡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우리은행은 매우 날카로운 움직임을 보였다. 샤데의 5득점이 터졌는데, 승부처에서 우리은행의 집중력을 볼 수 있는 장면이었다.
반면 신한은행은 브릴랜드와 김단비의 슛이 림을 외면했다. 우리은행의 강력한 수비에 의해 신한은행의 공격이 단절되는 현상이 생겼다. 결국 36-23, 13점 차의 리드가 벌어졌다.
●3쿼터=최윤아의 의미있는 행동
신한은행은 확실히 부담을 가지고 있었다. 조직력이 단절되는 현상의 원인이었다. 이 부분이 경기력에 악영향을 미쳤다. 정인교 감독은 하프타임 때 '당근'을 제시했다. "다음 경기도 있다. 부담없이, 모든 것을 쏟아 부어라"고 주문했다.
효과가 있었다. 외국인 선수 브릴랜드의 미드 레인지 슛의 정확도가 높아졌다. 조직적인 스크린을 받은 뒤 오픈 찬스에서 확률높은 슛을 때렸다. 점수 차는 조금씩 좁혀지기 시작했다.
우리은행은 절묘한 수비변화가 있었다. KB 국민은행전 막판에 보여줬던 지역방어 형태의 프레스를 사용했다. 이 수비를 불규칙적이면서 기습적으로 사용했다. 국민은행과 달리 신한은행은 노련한 움직임을 보였다. 공격지역에 롱 패스로 단번에 뚫었다.
신한은행은 위기를 맞았다. 처절한 힘대결이 펼쳐지던 37-47로 뒤진 3쿼터 종료 2분35초 전. 곽주영과 최윤아가 호흡이 맞지 않아 어이없는 패스미스를 했다. 무너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최윤아는 먼저 자신의 실수라고 인정하는 제스처를 취한 뒤, 곽주영을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다시 한번 해보자는 의미. 3쿼터 53-43으로 우리은행이 리드를 잡은 채 끝났다. 하지만 신한은행의 추격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았다.
●4쿼터=하은주와 브릴랜드의 더블 포스트
하은주는 3쿼터 막판 투입됐다. 신한은행 정인교 감독은 하은주와 브릴랜드의 더블 포스트로 4쿼터를 진행했다. 상대적으로 높이에 약점이 있는 우리은행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리기 위한 의도.
이럴 경우 우리은행은 빠른 트랜지션으로 신한은행의 느린 스피드 약점을 역공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하루 쉬고 경기에 임한 우리은행 입장에서는 체력적 부담이 많았다.
결국 골밑을 신한은행이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했다. 김연주의 3점포 2방이 터졌다. 블록슛에 이은 속공득점까지 터뜨렸다. 결국 53-57, 4점 차로 따라붙었다.
처절한 힘 대결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양팀은 쉴새없이 스크린을 걸고, 공간을 만들어 슛 찬스를 만들었다. 너무나 수준높은 움직임이었다.
64-62로 우리은행이 앞선 경기종료 3.3초. 김단비가 골밑을 파고들어 자유투를 얻어냈다. 침착하게 성공했다. 연장전이 연상되는 순간. 우리은행은 작전타임을 불었다.
이승아가 사이드라인에 섰다. 임영희가 왼쪽 사이드로 튀어나왔다. 절묘한 패스. 임영희는 조은주의 마크를 뚫고 극적인 위닝샷을 터뜨렸다. 전광판에 남은 시간은 1.1초. 승부가 결정되는 순간이었다. 우리은행은 실리를 챙겼다. 13연승이다. 팀내 최다연승이다. 신한은행은 미래를 봤다. 그동안 신한은행의 경기력은 좋지 않았다. 이날 올 시즌 가장 좋은 게임을 했다. 신한은행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한 경기였다. 두 팀 모두 승자였다. 춘천=류동혁 기자 sfryu@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