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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여자농구 해법 찾기 ①] "외면이 답은 아니다" 초중고 여자농구의 현실

기사입력 2017-12-18 19:13


컵대회에 참가한 초중등부 여자농구 선수들. 사진제공=WKBL

여자농구가 위기라는 말은 어제, 오늘 갑자기 나온 얘기가 아니다. 오래전부터 여자 농구에 대한 위기설은 있었지만 개선된 점 없이 계속 흘러 이젠 발등의 불이 됐다. 올림픽 4강에 올랐던 찬란했던 여자농구의 전성기는 없다. 이제 올림픽에도 나가지 못하고, 한수 아래라 여겼던 일본에도 밀린다. 미래인 어린 새싹들도 얼마 보이지 않는 농구 저변이 줄어드는 현실에 직면해있다. 스포츠조선은 지난 9월 25일 한국농구발전포럼을 통해 여자농구의 저변확대에 대한 토론을 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상에서 여자농구의 저변확대를 위한 시리즈를 준비했다. 초·중·고, 대학, 프로의 현실을 직시하고 그에 맞는 해결 방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농구는 한 팀 5명이 함께 뛰는 스포츠다. 그런데 한 팀의 선수가 5명 뿐이라면 어떻게 될까. 후보 선수, 교체 선수도 없이 5명으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전 경기를 뛰어야 한다. 그나마 5명이라도 채우면 다행이다. 전국 고등학교 여자 농구부가 20개지만, 선수는 153명. 그 중 정원 12명을 채우는 학교는 2~3개 뿐이다. 우리나라 엘리트 여자 농구의 현실이다.

유소녀 농구는 지금 과도기에 있다. 엘리트와 클럽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며 갈 길을 찾고있다. 농구를 즐기는 학생들은 꾸준한 숫자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들 중 농구선수가 되겠다며 본격적으로 뛰어드는 숫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아마추어에서는 여자프로농구의 흥행이 유소녀 농구붐으로 이어지길 고대하는 반면 프로에서는 아마추어의 자원이 늘어나야 좋은 선수를 추려 뽑을 수 있다며 도돌이표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쉽게 결론낼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 초중고 여자농구의 척박한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엘리트 여자 농구의 위기

지난달 21일 열린 WKBL(한국여자농구연맹) 신인 드래프트에서 6개 구단의 지명을 받은 선수는 총 14명. 그중 고졸 선수는 9명이었다. 선발회에 참가한 선수가 모두 지명을 받았는데도 숫자는 9명에 불과했다. 뽑을만한 선수도 적지만, 드래프트 대상이 될 인원 자체가 얼마나 빈약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학교 농구부의 정원은 12명. 대회에 출전했을 때 원활하게 팀을 꾸릴 수 있는 숫자다. 하지만 지금 대부분의 팀들은 그 엔트리조차 채우지 못해 울며 겨자먹기로 경기에 나가고 있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로 넘어갈수록 선수는 더 줄어든다. 숙명여고처럼 강남 8학군에 이름이 있는 학교 정도만 엔트리가 넘치고, 10명을 채운 학교는 2~3곳 뿐이다. 10개 이상의 팀들이 5~6명의 선수로 운영되고 있다. 주전 선수 1명이 부상을 입는다면 대회 출전은 힘들다고 봐야 한다.

선수가 없으면 당연히 정상적인 훈련이 안된다. 최소한의 인원도 안되는데, 체계적인 훈련을 바라는 것은 무리다. 프로에서는 고졸 신인들이 입단하면 하나같이 "기본 훈련이 왜 이렇게 부족하느냐"며 지도자들을 탓한다. 하지만 지도자들도 억울한 상황이다. 훈련을 제대로 할 수 없을만큼 선수가 없으니 개인 기술 위주로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항변이다. 어려운 현실 속 코치도 턱 없이 부족하다.


프로에서 지도자로 몸담았고, 아들(이동엽)과 딸(이민지)이 모두 프로농구선수인 이호근 숭의여고 코치(전 삼성생명 감독)는 "아마추어에 와서 직접 보니 선수 수급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여자농구가 정말 씨가 마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엄마들도 할 말이 있다

선수가 없는 이유는 학생들이 농구를, 그것도 엘리트 농구부를 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비단 농구만의 고민은 아니다. 한국에서 인기있는 종목인 야구나 축구조차도 줄어드는 유소년 선수 숫자에 고민이 많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여자농구의 상황이 가장 심각한 것이 사실이다.

시대의 흐름도 있다. 20~30년 전만 해도 한 가정의 자녀가 적으면 2명, 3~4명 정도가 평균이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자녀 가구를 찾기가 더 힘들다. 많아야 2명이고, 1명이 다수다. 기본적으로 출산율이 떨어지다 보니 초중고 학생 숫자가 줄어들었다. 이중 농구 선수 숫자도 준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다.

또 농구선수는 몸이 고달픈 직업이다. 개인의 영광이나 성취감이 동반되지만, 신체적인 고생이 뒤따른다. 부모들도 '귀한' 내 자식에게 몸이 힘든 운동 선수를 시키지 않으려 하는 추세다. 더군다나 부모가 부담해야 할 경제적인 부담도 크다. 중학교, 고등학교의 경우 자녀가 농구를 할 경우 한달에 최소 50만원의 비용이 필요하다. 대회 참가비, 식비, 간식비, 장비비 등 기본적인 부담은 물론이고, 박봉에 시달리는 학교 코치들의 월급을 학부모들이 보전해주기도 한다. 이 역시 부담이다. 아이가 특출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서 후원을 받거나, 장학금을 받는다면 모를까 대다수는 부모의 지원이 결정적이다. 따라서 경제적인 여건이 좋지 않다면 더더욱 운동을 시키기 힘들다.


'100년에 한번 나올 선수'로 평가받는 지난해 괴물 신인 박지수(오른쪽). 우리는 또다른 박지수를 빠른 시일 내에 만날 수 있을까? 사진제공=WKBL
엘리트 < 클럽 현상 심화?

유소녀 농구에 있어 가장 달라진 부분이 바로 엘리트농구와 클럽농구의 간극이다. 최근에는 농구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스포츠 종목들의 클럽이 활성화된 추세다. 여자농구 유소녀 클럽은 크게 두가지로 나눌 수 있다. WKBL과 6개 구단이 주최로 운영하는 산하 클럽과 사설 기관이 운영하는 클럽. 올해 9월 기준으로 WKBL에서 운영하는 22개 클럽의 소속 선수가 약 1700명이고, 프로 6개 구단 산하 6개 클럽의 선수가 약 1200명이다. 학교의 방과 후 농구 클럽이나 개인이 운영하는 클럽은 정확한 집계가 힘들지만, 어림 잡아도 3500명이 넘는다. 결코 적지 않다. 농구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 자체가 적지는 않다는 뜻이다.

WKBL 관계자는 "꼭 선수가 되려고 해서가 아니라 취미나, 신체 발달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농구를 택하는 학생들도 많다"고 귀띔했다. 또 부모들이 자녀들의 균형 발달을 위해 한가지씩 스포츠를 배우게끔 환경을 만들어주면서 농구 인구 자체가 감소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물론 클럽이 더욱 활성화 돼서 이중 재능이 있는 학생들이 본격적인 엘리트 농구의 길을 걷고, 프로 선수도 배출하는 것이 최상의 시나리오다. 그렇게만 된다면 굳이 무리해서 엘리트 농구부만 고집할 이유도 없다. 문제는 클럽에서 뛰는 학생들이 재능이 있어도 전문적인 농구를 하지 않으려는 현상이다. '어디까지나 취미'라는 제한선을 그어놓고 있기 때문에 대회 참가율도 떨어지고, 당연히 지도자들의 의욕도 떨어진다. 농구 기술만 배우고 경기를 안나가겠다는 경우도 많다. 신체적, 기술적 요건이 빼어나 엘리트 농구부로 스카우트 하려고 해도 "안한다"며 손사래 친다. 한 관계자는 "요즘 키 크면 연예인 하려고 하지 누가 농구를 하려고 하겠냐"며 극단적 예를 들기도 했다.

정말 대학 농구부가 정답일까

자녀에게 농구를 시키고 있는 부모들은 한 목소리로 "엘리트농구의 장점이 너무 부족하다"고 했다. WKBL이나 구단들의 지원도 클럽이 훨씬 좋고, 특히 여자농구의 경우 '인서울' 소재 유명 대학 농구부가 없다시피 한 것이 부모들이 꼽은 이유다. 학부모들은 "농구부를 만들 것이라던 대학들은 여전히 감감무소식이고, 지금은 있는 9개 대학조차 농구부를 없애겠다고 한다. 1년에 신입생을 많아야 3~4명 뽑고, 아예 안받겠다는 곳도 있다. 부모 입장에서는 대학도 중요하다. 지금은 아이들의 미래가 너무 불안정한 상황이다. 100% 프로에 간다는 보장이 없는데, 대학 농구부마저 감소 추세면 실업자가 될 수도 있다. 최소 9년 이상 운동을 시켜야 하는데 대학도 못나오고 프로도 못간다면 너무 모험 아닌가"라며 속상해했다.

하지만 당장 대학 농구부 신설을 기대하기는 현실적으로 힘들다. 대학팀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1년 예산이 5000~6000만원 정도다.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모두 학부모에게 일임할 수도 없다. 학교 입장에서는 긴축 재정에 들어가야 할 때 구조조정 1순위로 운동부 예산을 택한다. 또 초중고등부에서도 선수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대학만 무리하게 파이를 키우기도 힘들다.

도돌이표 같은 고민, 지원의 선순환만이 살 길이다

논의를 하다 보면 계속해서 원점으로 돌아온다. 결국 지원의 선순환만이 살 길이다. WKBL이나 구단들의 아마추어 선수들에 대한 지원과 후원이 클럽에 국한되는 이유는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의 방향성 때문이다. 여자프로농구의 흥행과 장기적 활성화를 위한 쪽으로 문체부의 지원금을 쓰게 하기 때문에, WKBL이나 구단들도 학교 농구부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그래서 클럽에 대한 장비, 스폰서 용품 등 지원이 훨씬 풍부할 수밖에 없다.

물론 학생들의 부담 없는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클럽 농구가 좋은 해법일 수 있다. 일본과 미국도 모두 클럽 농구가 대세다. 우리도 클럽의 수준을 높여서 지도하고, 이들을 자연스럽게 경쟁시켜 우월한 선수들을 엘리트 농구 선수로 육성하는 것이 이상향이다.

그러나 결코 단기간에 전환될 수 없는 문제다. 당장 엘리트 농구를 나 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인구 자체가 적은 실정상, 평등한 지원과 지도로 엘리트와 클럽의 공생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다. 완전히 클럽 농구로 유소녀 선수 육성에 '올인' 하기에는, 총체적인 수준이 선진국 시스템에 못미친다.

여자프로농구에 외국인 선수 제도를 없애고, 외국인 선수에게 줄 연봉을 대학 농구부 신설 및 지원에 쓰자는 의견도 있다. WKBL과 6개 구단이 초중고 농구부에 직접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문체부의 규정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때부터 모든 학생들이 1개의 스포츠 종목을 의무적으로 선택하도록 관련 부처가 합동 규율 제정을 해야한다는 주장도 강력하다. 이 모든 의견들이 다 한국 여자농구를 위해 머리를 맞댄 결과다. 이제는 연맹만, 프로 구단만, 학교만, 클럽만 따로따로 놓고 생각할 여력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여자농구가 공멸할 수도 있다. 강력한 제도 변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나유리 기자 youll@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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