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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창작뮤지컬을 만들고 싶습니다."
속된 말로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친구' 이전에 뮤지컬 '렌트'(2000) '시카고'(2001) 초연을 성공시켰고, 이어 한국뮤지컬시장 성장의 결정적인 촉매제가 된 2001년 '오페라의 유령' 한국 초연에 최대 주주로 참여했다. 국내 공연계 역사상 최초로 30억원 규모의 펀드를 운영할 때였다. 3년간 23개 작품에 투자해 하나 빼고는 다 흑자였다. 매출만 150억원. '미다스의 손'이 따로 없었다. MBC프로덕션 예능PD로 커리어를 시작한 그는 짧은 시간에, 그리고 젊은 나이에 한국뮤지컬시장의 핵심에 접근했다.
"정말 정신없었죠. 2000년 대 초반까지 라이선스 뮤지컬 대부분에 제 손을 거쳐 들어왔다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런데 하다보니까 이게…, 점점 허무해지는 거예요."
"열심히 벌어봤자 수익의 상당부분은 외국으로 가버리고, 이게 무슨 짓인가 싶더라구요. 하려면 창작(뮤지컬)을 해야겠구나 생각했죠."
영화 '쉬리'(1998)의 성공 이후 충무로가 확 날개를 편 것처럼 창작뮤지컬 역시 킬러콘텐츠 하나만 터지면 자립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다. 그의 이런 '킬러콘텐츠 육성론'은 200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뮤지컬 제작자와 전문가 사이에서 교과서로 통용됐다.
"결국 문제는 음악이잖아요. 실력있는 배우들은 충분하고, 무대 메카니즘도 괜찮은데 좋은 음악이 없으니 킬러콘텐츠가 나오지 못한다 이거죠. 음악이 해결되지 않으면 뮤지컬을 성공시킬 수 없다는 당연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민하던 그에게 단비가 내렸다. 2006년 고(故) 이영훈 작곡가를 만나 의기투합했다. 한국형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가 태동하기 시작했다.
"대중적으로 친숙한 노래들이라 강점이 있었죠. 또 단일 작곡가의 작품이 50곡 이상 히트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이에요. 저작권 해결하기가 굉장히 쉬웠습니다.(웃음)"
지난해 초연에서 흥행대박을 터뜨린 '광화문 연가'는 올해 업그레이드 버전을 선보여 호평을 받고 있다. 한층 정제된 스토리에 원곡의 감동을 얹어 매진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아울러 일본 중국 진출도 타진 중이다.
"한류스타만 갖고 장사하는, 그런 형식은 원하지 않아요. 작품 자체의 감동으로 다가가야죠. 우리 뮤지컬의 악보와 대본을 외국에서 사 가도록 꼭 만들겠습니다."
그의 최종 목표는 물론 기존의 대중가요가 아닌 음악과 대본 모두 순수 창작으로 만든 뮤지컬이다. 처음 창작을 하겠다고 나섰을 때 가슴에 품었던 꿈이기도 하다.
"제 나름대로 창작뮤지컬의 로드맵을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탄생한 게 '광화문 연가'이고요. 하지만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습니다. 지금까지 달려온 길 위이서 한 방향만을 보고 또 가야죠."
산전수전 다 겪은 그의 표정에서 문득 10여년 전의 눈빛이 오버랩됐다. 뮤지컬 '광화문 연가'는 3월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