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담당 기자가 본 영화 '레미제라블'] 웅장한 영상과 혼신의 연기로 원작 뮤지컬을 업그레이드하다

기사입력 2013-01-24 15:46


[뮤지컬 담당 기자가 본 영화 '레미제라블'] 웅장한 영상과 혼신의 연기로 원작 뮤지컬을 업그레이드하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바리케이드 장면.
빅톨 위고가 '레미제라블'을 출간한 뒤 반응이 궁금해 출판사에 편지를 보냈다. 내용은 부호 하나, '?'였다. 얼마 되지 않아 출판사로부터 답장이 왔다. 답변 역시 간단했다. '!'.

'세상에서 가장 짧은 편지'로 회자되는 에피소드이다. 하늘에 있는 위고가 영화 '레미제라블'의 반응이 궁금해 또다시 '?'라는 메일을 보낸다면 답은 같을 것이다. '!'.

최근 10년 사이 뮤지컬을 영화화한 작품들이 팬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 가운데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드림걸스' '맘마미아' 등이 기억에 남는다. 솔직히 대개의 작품들은 원작 뮤지컬보다 못 하거나, '오리지널 무대를 그대로 영상에 옮겼구나'라는 정도의 느낌을 받았다. 무대에서 느껴지는 숨결과 땀방울이 스크린을 통과하는 순간, 어느 정도 희석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무대 예술을 영상으로 옮기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무대는 제한된 공간이다. 가장 크다는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라 하더라도 크기가 한정돼 있다. 이런 제한성을 극복하기 위하여 무대 예술은 다양한 메카니즘, 비유와 상징을 활용한 세트를 통해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기법을 발전시켜왔다. 그런 테크닉을 감상하는 게 무대예술의 포인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장면들이 영상으로 옮겨지는 순간, 그 원초적인 맛은 상당히 줄어든다. 예컨대 '오페라의 유령'에서 관객들이 '와~'하고 낮은 탄성을 지르는 장면이 있다. 샹들리에가 떨어지는 순간이다. 관객의 머리 위로 스치듯 추락하는 것과 그냥 화면으로 보는 것은 아무래도 느낌이 다르다.

한가지 더, '맘마미아'는 예외로 치더라도 '시카고' '오페라의 유령' '드림걸스' 등은 작품의 주 배경이 아예 극장이다. (상당수의 뮤지컬이나 연극이 공연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은 주어진 현실에 최적화하려는 시도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영화로 바뀌더라도 뮤지컬에서 본 장면들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화면은 비슷하고, 배우들의 노래 실력은 아무래도 뮤지컬 배우들보다는 못할테니, 영화로 버전이 바뀌었을 때 감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이런 면에서 영화 '레미제라블'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유리하다. 배경이 19세기 초 프랑스다. 영상의 확장성을 100% 활용할 수 있는 조건이다. 유서깊은 파리 시내에 설치된 바리케이드를 비롯해 파리의 하수도, 험난한 산악지대와 바닷가에서 죄수들이 사역하는 장면까지 다채롭고 웅장한 비주얼을 스크린에 담아냈다. 블록버스터 시대극으로 업그레이드된 것이다. 탁 트인 화면 속에서 뮤지컬역사에 남는 명곡을 다시 들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중량감있는 배우들의 열연 또한 인상적이다. 굳이 노래실력으로 원작 뮤지컬에 맞서려는 전략 대신, 연기와 드라마로 자연스럽게 풀어냈다.

무대는 거리가 있어 배우들의 세밀한 표정까지 보기가 쉽지 않다. 반면 영화는 고통과 울분, 반성과 깨달음, 기쁨과 슬픔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배우들의 생생한 표정을 통해 리얼하게 보여준다. 먼저 떠오르는 건 '판틴' 역의 앤 해서웨이가 '아이 드림드 어 드림(I dreamed a dream)'을 부르는 장면. 머리를 박박 밀고, 서럽게 눈물을 흘리는, 해서웨이의 클로즈업된 표정에서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굳이 노래실력을 가늠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장발장 역의 휴 잭맨과 자베르 역의 러셀 크로우는 서로 역할을 바꿨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장발장 역은 노래 분량이 많고, '브링 힘 홈(Bring him home)'같은 노래는 워낙 고음역대라 부르기가 쉽지 않다. 두 배우의 노래 실력을 감안한(?) 캐스팅이 아닌가 싶다.

장발장을 구원의 길로 이끈 미리엘 신부 역을 소화한 배우는 런던 웨스트엔드 뮤지컬무대에서 장발장 역을 10년 이상 소화한 콤 윌킨슨이란 사람이다. 뮤지컬계에선 전설적인 배우이다.(유튜브에서 그를 검색해 노래를 감상해보면 좋다). 에포닌 역의 사만다 뱅크스도 실제 뮤지컬배우이다.

클로드 미셀 쉔버그가 작곡하고, 카메론 매킨토시가 제작한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굳이 부연설명이 필요없는 명작이다. 이 작품이 이렇게 소설과 뮤지컬, 영화, 연극 등 다양한 장르로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밑바탕에는 역시 빅톨 위고 원작의 힘이 있다.

휴머니즘에 입각해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각은 이상적이기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상식에 기반하고 있다. '레미제라블'만 봐도 장발장을 비롯해 자베르, 판틴, 코제트, 마리우스, 에포닌 등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참 신기하다. 모든 인물들이 다 가슴에 다가온다.

생각해보라. 인생의 어느 순간, 마리우스처럼 사랑의 열병을 알았던 적도 있었고, 에포닌처럼 사랑의 아픔을 겪었던 적도 있을 것이다. 아울러 장발장처럼 선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었고, 자베르처럼 원칙을 강조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서로 대립하고, 갈등하고, 사랑하는 캐릭터들이 사실은 모두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다양한 면면이다.

19세기 초 혁명의 열기로 들끓었던 프랑스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에서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캐릭터를 추출해 용서와 화해의 휴머니즘 정신으로 엮어냈다는 것이 바로 빅톨 위고의 위대한 점이다. 약간은 뜬금없이(?)영화 '레미제라블'이 지금 대한민국에서 관객 500만명을 돌파한 이유는 바로 이것이 아닐까.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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