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가, '강한 녀석들'만 살아남는다?

기사입력 2013-03-21 08:14

영화 '베를린' 포스터

서바이벌이다.

대대로 1~2월은 극장 비수기로, 밸런타이 데이와 화이트 데이 특수를 겨냥한 로맨틱 코미디 혹은 멜로물 정도가 인기를 끌어왔다. 지난해에도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2월, 468만 1000명)을 제외하면 상반기에는 '댄싱퀸'(1월, 400만 9000명), '건축학개론'(407만 8000명) 정도가 흥행에 성공했다. 그런데 올해는 모양새가 조금 다르다. 1월 개봉해 역대 한국 영화 박스오피스 순위 4위에 오른 '7번방의 선물' 이후로 강한 남자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 극장가를 점령하고 있다.

시작은 '베를린'. 하정우 류승범 한석규 전지현 등 톱스타들이 총출동한데다 액션 영화의 1인자라 불리는 류승완 감독의 연출로 화제를 모았던 이 작품은 19일 누적관객수 715만1268명(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을 기록, 박스오피스 6위에 랭크돼 있다. 바통을 이어받은 '신세계'는 최대 범죄 조직 골드문을 배경으로 최민식 황정민 이정재 박성웅 등 상남자들의 우정과 배신, 음모 등을 그려내 호평을 얻으며 개봉 3주차인 13일까지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했다. 14일에는 할리우드 대작 '웜 바디스' 개봉에 밀려 순위가 한 계단 하락하긴 했지만,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누적관객수 404만 187명으로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와 비슷한 흥행 속도를 보이고 있다.

7일 개봉한 '사이코메트리' 역시 김강우 김범, 남자 투톱을 내세웠다. 손을 대면 과거를 볼 수 있는 사이코메트러란 독특한 소재와 함께 열혈 형사로 변신한 김강우의 액션이 어우러져 여성팬들을 사로잡고 있다. 19일 누적관객수 50만7131명으로 박스오피스 5위를 지키고 있다.

할리우드 대작인 '잭 더 자이언트 킬러'(니콜라스 홀트, 이완 맥그리거 등 주연)와 '알렉스 크로스'(매튜 폭스, 장 르노 등), 성룡과 권상우가 호흡을 맞춘 '차이니즈 조디악', 김지운 감독의 할리우드 진출작 '라스트 스탠드' 모두 남자들의 모험 혹은 최악의 혈투를 그려내 호응을 얻었다.

반면 비(非) 액션 장르물은 외면당하는 분위기다. 기대를 모았던 '남쪽으로 튀어'나 '남자사용설명서'의 경우, 관객들의 호평에도 이렇다할 성적을 거두지 못한채 개봉 2~3주차에 쓸쓸히 퇴장해야 했다.

앞으로 개봉을 앞둔 영화들을 살펴봐도 남풍(男風)은 이어진다. 28일 개봉하는 '지.아이.조2'는 최정예 특수 부대인 지.아이.조가 테러리스트 코브라 군단의 음모로 최대 위기에 처하고, 살아남은 요원들이 팀의 명예를 회복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전투를 펼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채닝 테이텀, 레이 파크, 이병헌, 드웨인 존슨, 브루스 윌리스, D.J. 코트로나 등이 출연한다. 4월 개봉 예정인 강우석 감독의 신작 '전설의 주먹'은 왕년의 주먹들이 지상 최대 파이트쇼 '전설에 주먹'에서 최강자를 가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황정민 윤제문 유준상 등 연기파 남자 배우들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다. '장고:분노의 추적자(21일 개봉)', '좋은 친구들(28일 개봉)' 등도 모두 남자들의 액션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런 남초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 투자 환경도 한 몫 했다. 한 홍보사 관계자는 "대형투자사 자본이 유입되면서 제작할 수 있는 영화의 폭이 넓어진 것도 사실이다. 이전엔 생각하기 어려웠던 할리우드급 블록버스터 제작이 가능하게 됐다. 반면 선택의 폭이 좁아진 것 같다. 요즘은 투자심의가 굉장히 강해졌다. 투자자 유치 단계에서 제작 여부를 결정해버린다"고 밝혔다. 이어 "투자사 입장에서는 수익을 창출하는 게 가장 큰 목적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 번 흥행한 장르를 선호한다. 최근엔 액션이 대세다. 그렇다 보니 투자사에서도 액션물을 밀고, 자연스럽게 남자 배우 강세가 이어진 것 같다"고 전했다.


순환 주기가 맞물렸다는 분석도 있다. 한 기획사 관계자는 "연예계에는 남자 강세장, 여자 강세장이 번갈아 돌아온다. 한동안 멜로물이 큰 인기를 끌었고, 전도연 하지원 김혜수 등 여자 배우들이 왕성한 작품 활동을 했다. 장르의 강-약 순환이 반복되며 최근엔 그 흐름이 남자 배우들에게 돌아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장르 불균형은 주의해야 할 일이다. 이미 최민식 하정우 황정민, 강우석 감독 등 수많은 영화인들이 "장르가 다양하지 못하고 비슷한 작품들이 계속된다는 건 관계자 입장에서도 아쉬운 일이지만, 관객들에게도 좋은 일이 아니다. 최근 '한국 영화 제2의 르네상스'란 말이 나올 정도로 한국 영화가 잘되고 있는 시점에서 관객들이 스크린을 떠나지 않게 하려면 다양한 색의 영화를 만들고, 진실성 있는 웰메이드 작품으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를 '상품'이 아닌, '문화'로 볼 수 있는 시선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백지은 기자 silk781220@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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