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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순원이 92편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고 귀환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때 어머니가 이슬을 털어주신 길을 걸어 지금 내가 여기까지 왔다고. 돌아보면 꼭 그때가 아니더라도 어머니는 내가 지나온 길 고비고비마다 이슬털이를 해주셨다. 아들은 어른이 된 뒤에야 그때 어머니가 털어주시던 이슬털이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아마 그렇게 털어내주신 이슬만 모아도 내가 온 길 뒤에 작은 강 하나를 이루지 않을까 싶다. 아들은 뒤늦게 그것을 '어머니의 이슬강'이라고 부른다.'(p26)
'왜 그런 꿈을 꾸었을까. 꿈속이라지만 그것은 우리 어린 날의 초여름 모습 그대로였다. 감꽃 필 무렵이면 그걸 주울 생각에 잠도 일찍 깨곤 했다. 입 안에 하나 넣어 깨물면 생감을 문 듯 텁텁하기만 하던 그 꽃이 그때는 왜 그렇게 좋았을까. 아직도 그 이유를 몰라 꾼 꿈은 아닐까. 마당에 타닥타닥 팝콘처럼 튀어오르는 그 꽃….'(p79)
'소년이 별을 주울 때'에 수록된 짧은 소설들은 작가가 소년 시절부터 마음속 깊이 간직해온 별 만큼이나 아름답고 귀한 시간의 상징에 대해 문학의 견고한 서정과 에스프리로 빚은 헌사다. 한 소년이 별을 주워 담아 소설가로 성장해가는 이야기들에 귀 기울이다 보면, 일상의 아름다운 순간들과 그것들이 환기시키는 구원과 초월의 삶에 대한 동경이 자연스레 전해져온다. 그 순간들은 아름답고, 고마우면서도, 그립고, 슬프다.
끝없는 질문으로 아버지를 괴롭히는 개구쟁이 소년, 아들을 걱정하며 등굣길을 배웅하는 어머니, 할아버지의 지혜와 배려, 짜릿한 첫사랑의 추억, 그리고 제자들을 위해 앞날의 희망을 밝혀주는 선생님 이야기까지, 이 책에 실린 짧은 소설들은 옛 시절 코고무신의 단발머리 소녀들과 검정고무신의 소년들이 티 없이 무구한 눈으로 바라보던 시간의 기록들이다. 작가가 새삼 이 시절을 끄집어내 복원하는 건 자신의 서사적 기원을 살피면서 작가로서의 열정적인 갱신을 도모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동시에 이를 통해 소설이 가진 재래적인 치유의 기능을 재확인하고 작가에게 주어진 책무를 본격적으로 이행하겠다는 열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소소한 일상은 추억하자면 하나하나의 별처럼 작고 희미하지만, 작은 별들이 무수히 많이 모이게 되면 칠흑 같은 암흑의 밤은 은하수처럼 찬란히 빛난다. 그것은 마치, 힘들고 고통스러운 세월을 지나 찬란히 빛나게 될 우리네 삶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다.
'더러는 이렇게 늦은 밤에도 집에 들어갈 처지가 못 되어 객지에서 혼자 쓸쓸하게 명절을 보내는 아들딸도 있다. 죄송스러워 부모님께 전화도 드리지 못한다. 그래도 그 집 어머니는 혹시나 하고 오후부터 열두 번은 더 긴 목을 빼들고 동구 밖까지 나왔다 들어간다. 한번 드나들 때마다 외등은 어머니의 한숨에 흔들리고, 밤이 깊을수록 어머니의 마음속 그늘만 외등 그림자처럼 짙어간다. 에휴……. 어머니의 한숨처럼 바람이 마당을 밟고 지나간다.' (p.179)
"여기 모인 친구 분들께서 당신의 손을 잡아주시고, 당신을 품속에 안아주시고, 또 당신이 힘든 인생길을 가야 한다는 것을 알아주시고, 어린애가 되어 있는 당신에게 지혜와 용기를 주시어, 그 힘으로 당신께 신의 가호가 내려서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더, 당신께 기적이 일어나기를 두 손 모아 기원드립니다. 그래서 10년 뒤 졸업 40주년 행사장에는 제가 당신 손에 이끌려서 입장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저는 지금 당신과 이 세상을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꿈만 같고 행복합니다. 진심으로 당신을 사랑합니다."
나는 눈물이 흘러내려 뒷얘기를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그래, 우리 삶에 대해 그 누가 아무리 시니컬하게 말한다 하더라도 삶은 바로 이렇게 존귀한 것이고, 우리가 산다는 것의 의미 역시 바로 이런 것이다. 이제 그만 일어나라, 내 오랜 친구! (p.248)
'소년이 별을 주울 때'에는 우리가 그간 까맣게 잊고 있던 추억의 순정함과, 그리고 당연한 것만 같던 풍요로움 속에 잊고 살았던 빈한하고 궁핍했던 시간의 가르침이 담겨 있다. 아픈 상처를 보듬는 치유의 작가 이순원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다. 일상에 쫓겨 놓치고 지나온 소중한 순간들의 가치가 녹아들어 있는 것이다. 이순원 작가는 어린 날 저 멀리 푸른 산맥 아래로 황톳빛 노을이 밀려들 때 만났던 은어의 오랜 기억을 떠올리며 어른이 되기 위해 그간 겪어온 고난과 고통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을 가만히 속삭인다.
'소년이 별을 주울 때'에는 작가 이순원의 따스한 시선이 담긴 글 외에도 그리움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그림이 함께 실려 있다. 박요한이라는 한국 미술을 대표하는 화가의 그림 20여 점이 글과 함께 어우러져 작품 속 짧은 소설들을 돋보이게 한다. 인간의 삶을 특유의 치유력으로 보듬어가는 작가 이순원, 그의 작품 세계가 아름다운 그림과 만나 또 다른 감동을 선사할 것이다.
이순원 작가는 "이 책 속에 실은 짧은 소설들은 코고무신의 단발머리 소녀들과 검정고무신의 소년들이 쉰을 넘겨 살아온 시간의 기록들이다. 이 한모금의 소설들이 나의 친구들에게도, 나의 아이들에게도 우리가 살아온 시간들에 대해 때로는 갈증을 풀어주고 때로는 따뜻한 추억과 위로로 읽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나성률 기자 nasy@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