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패신화 이어오던 MBC 월화극, '불의 여신 정이'는 어쩌다 꼴찌가 됐나

최종수정 2013-08-20 07:19

사진제송=MBC

MBC 월화극의 '불패 신화'가 깨졌다. '불의 여신 정이'가 좀처럼 탄력을 받지 못하고 지지부진한 탓이다. MBC 드라마의 간판 브랜드라고 할 수 있는 팩션 사극 장르이지만 이번만큼 도통 먹히지를 않는다.

'불의 여신 정이'는 지난 7월 1일 동시간대 1위로 산뜻하게 출발했다. 시청률은 10.7%(닐슨코리아 전국 기준)에 불과했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 정이(진지희)와 광해(노영학)의 어린 시절 첫 만남은 '해를 품은 달'의 아역 로맨스를 연상시키며 화제몰이를 톡톡히 했고, 필생의 라이벌인 강천(전광렬)과 을담(이종원)이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도 흥미로웠다. 문근영, 이상윤, 김범, 박건형, 서현진 등 성인 연기자들이 등장한 이후 기대감은 더 커졌다. 이른바 '케미(Chemistry)'라 부르는 남녀 주인공의 어울림이 꽤나 훌륭했기 때문이다.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력도 극에 탄탄한 뒷받침이 됐다.

그러나 시청률은 답답할 정도로 요지부동이었다. 10회를 훌쩍 넘길 때까지 10~11%대에서 제자리걸음을 했다. 월화극의 전체적인 부진 속에 어렵사리 지켜온 1위 자리도 지난 5일 KBS2 '굿 닥터'에 내주고 말았다. '굿 닥터'는 첫 방송에서 '불의 여신 정이'를 밀어내더니 3회 만에 15%대를 돌파하며 가파른 상승세를 탔다. 지난 12일 방송에선 SBS '황금의 제국'마저 '불의 여신 정이'를 앞질렀다. 12일과 13일 방송된 13, 14회에서 '불의 여신 정이'는 각각 9.1%와 9.6%의 시청률을 기록하며 홀로 한자릿수에 머물렀다.

MBC 월화극이 한창 방영되는 중에 최하위로 추락한 건 상당히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진다. '불의 여신 정이'의 전작 '구가의 서'는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며 내내 1위를 지켰고, 그에 앞서 50부작 '마의' 또한 19%대의 안정적인 시청률을 꾸준히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이뿐만 아니다. 2011년 11월 말부터 지난해 7월 초까지 8개월간 방송된 시대극 '빛과 그림자'는 수개월간 20%를 웃도는 시청률로 MBC 월화극의 위용을 세웠고, 그 후속인 '골든타임'도 런던올림픽 시즌임에도 불구하고 방송 중반부에 동시간대 1위로 올라서며 선전했다. 시청률이 높을 때도, 조금 낮을 때도 있었지만, 수년간 MBC가 월화극 1위를 독점하다시피 해온 것이다. 그러나 '불의 여신 정이'의 부진으로 MBC의 자부심도 무너져 버렸다.

'불의 여신 정이'는 어쩌다가 이렇게 됐을까. 시청자 게시판에선 뻔한 극 전개를 비판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신분제가 엄격한 조선시대에 여성의 몸으로 사기장의 자리에 오른 실존인물 유정의 이야기를 그린다는 거창한 기획의도를 내세웠지만, 극이 중반부를 향해가는 지금까지도 사기장으로서의 성장은 없고 지지부진한 로맨스만 무한 반복하고 있다. "도대체 정이는 언제 도자기를 만들고 언제 사기장이 되는 것이냐"는 불만이 나오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주인공 정이(문근영)가 사기장으로서 천부적 재능을 드러내는 장면도 더러 있지만, 이 또한 로맨스에 기여하는 역할만 할 뿐 정이의 열정과 예술혼은 전혀 느낄 수가 없다. 극의 주요 배경이 도자기 제작소이지만 도자기를 만드는 장면이 너무나 간단하게 그려지는 탓에 도자기는 그저 '소품' 수준에 머물러 있다.

곤경에 빠진 정이가 어려움을 이겨내는 과정도 허술하기 짝이 없다. 남장을 한 채 분원에 들어왔다는 사실이 발각됐지만 광해(이상윤)의 배려와 분원을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육도(박건형)의 용서 덕분에 무탈했다. 광해와 육도가 정이를 지키지 못하면 정이를 짝사랑하는 태도(김범)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심지어 이러한 이야기 구도마저 날마다 반복되고 있다. 그동안 빈약한 줄거리를 배우들의 연기력을 앞세워 눈가림 해왔지만 시청률 하향세를 보면 그나마도 한계에 다다른 분위기다.

전통 문화를 소재로 한 '대장금'이나 '바람의 화원'은 대성공을 거뒀다. 전통 음식, 전통 회화, 궁궐 문화 등에 대한 재조명이 주인공의 성장, 사랑 이야기와 조화롭게 맞물린 덕분이다. '불의 여신 정이'가 MBC 드라마의 실패 사례로 남지 않으려면 제목처럼 '불의 여신'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Copyright (c) 스포츠조선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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