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32개국 선수단만이 본선 무대를 밟는다. 라이언 긱스 등 수백만불의 몸값을 자랑하면서도 단 한번도 밟아보지 못한 꿈의 무대. 이 때문에 FIFA는 전세기 등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며 '주연배우'들을 극진히 모신다. 출전 선수단에게 월드컵 본선 무대는 평생 품어온 꿈을 실현하는 신성한 장소다. 그만큼 진지하고 비장하게 임한다. 코트디부아르 세레이 디에가 콜롬비아와의 예선전을 앞두고 국가를 부르다 눈물을 펑펑 흘린 장면을 기억하는가. '아버지 2시간 전 임종'이란 오보를 낳을 만큼 그는 '서럽게' 울었다. 실제 그는 "대표팀 선수로서 국가에 봉사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고 감정이 복받쳤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가슴에서 올라온 뜨거운 눈물이 솟구칠 정도의, 월드컵 무대는 그런 곳이다.
대회를 앞두고 한껏 예민해지는 선수단. 주변에서는 대표팀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암묵적 신사협정을 맺는다. 취재진은 과도한 접근을 삼가고, 인터뷰 내용에도 신경을 많이 쓴다. 특히 경기 당일에는 경기장에서 오가다 마주쳐도 말을 걸지 않을 정도다. 엄숙할 정도로 진지한 분위기. 달라질 때가 있다. 각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들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과 SBS '힐링캠프', KBS '우리동네 예체능' 등 방송 3사는 대표 예능 프로그램 출연자를 브라질 현지에 급파했다. 이들은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는 장면을 리얼로 담아 방송에 내보내고 있다. 리얼 프로그램 특성상 이들이 움직이는 공간은 모두 방송의 배경이 된다. 그러다보니 한정된 공간에서 조금이라도 웃기고 재미있는 장면을 담기 위한 보이지 않는 경쟁이 뜨겁다. 과열 경쟁은 무리수를 부른다. 예능 프로그램 때문에 현지에서는 크고 작은 해프닝이 빚어지고 있다. "분위기를 흐린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하나둘씩 늘고 있다. 월드컵 현지에서 펼쳐지고 있는 방송 3사 예능 프로그램의 치열한 물밑 경쟁. 대체 왜 이런 '무한 경쟁' 구도가 형성된걸까.
시청률을 사수하라...중계권 산 방송 3사의 사생결단 맞대결
4년 전인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에는 SBS가 독점 중계를 했다. KBS, MBC는 중계권이 없었다. 4년 후인 2014 브라질 월드컵 중계에는 방송 3사가 모두 뛰어들면서 '제로섬 게임'이 됐다. 그동안 없었던 '비교 개념'이 생겼다. 승자와 패자의 양자구도도 아닌 상-중-하의 삼각 경쟁구도였다. 중계 시청률, 특히 한국 경기 시청률을 둘러싸고 사생결단의 무한 경쟁이 펼쳐졌다. 방송사 별로 전력 총 동원령이 떨어졌다. 중계팀 뿐 아니라 예능국, 보도국에까지도 총력전에 나섰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부터 각 사 예능 프로그램은 자사가 계약한 유명 해설위원 등 중계팀 띄우기에 나섰다. 월드컵이 시작되자 예능 프로그램의 유명 연예인들은 붉은 옷을 입고 응원 차 브라질 현지로 향했다. 사활을 건 경쟁. 주된 이유는 돈이다. 월드컵의 또 다른 이름은 상업 자본의 경연장이다. 시청률에 따라 회수하는 단위가 확 달라진다. 또 하나가 있다. 방송사 이미지 제고다. 전 국민적의 관심을 모으는 축제. 가장 전문성있고 세련된 방식으로 소화하면서 보다 다양한 연령과 계층의 시청자에게 방송사 이미지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다. 큰 국제대회가 끝난 뒤 방송사에 대한 호감도는 물론 신뢰성까지 달라질 수 있다.
'리얼'과 '참여'의 예능 트렌드가 낳은 필연적 구도
연예인이 직접 가서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저 멀리 별에서 온 연예인이 아닌 그저 내 이웃같은 친근함. 최근 예능 트렌드의 가장 큰 흐름은 바로 '리얼'과 '참여'다. 월드컵도 예외는 아니다. 현지에 단체로 급파된 연예인들이 현지 분위기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며 전달한다.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 현지에 붉은 옷을 입은 남녀노소 연예인들이 부쩍 늘어난 이유다. 시청자들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대한 많은 장소를 다녀야 한다. 유명세에 떠들석함. 눈에 잘 띈다. 카메라가 밀착해 쫓아다니니 상황에 따라 다소 큰 웃음과 과장된 몸짓은 불가피하다. 낯 선 장소에도 출몰하기 일쑤다. 대표적인 곳이 각 국 취재진이 모여 일을 하는 미디어센터다. 시끌벅적한 분위기로 시선을 사로잡다 보니 각 국 취재진의 반응이 엇갈린다. "재미있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저들이 어떻게 국제축구연맹(FIFA)에서 배부하는 AD카드를 받아서 여기에 들어왔느냐"며 불편해하는 시선도 있다. 호·불호를 떠나 리얼 예능 출연자들은 보다 더 흥미로운 '그림'과 '상황'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이 과정에서 염두에 두는 기준은 타 사 경쟁 예능프로그램.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불미스러운 '무리수'의 유혹이 발생하는 지점이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광화문 광장에서 '2014 브라질월드컵' H조 한국 대 러시아 예선경기 거리응원이 펼쳐졌다. KBS2 '우리동네 예체능' 응원단이 붉은악마와 함께 응원을 펼치고 있다.
'2014 브라질 월드컵'의 대한민국 대표팀의 다음 경기는 알제리와 23일 오전 4시, 마지막 예선 경기는 벨기에와 27일 오전 5시 진행된다. 광화문=김보라 기자 boradori@sportschosun.com/2014.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