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쉽게 감춰지고 왜곡된다. 진실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의 힘이 진실보다 열배는 더 강한 탓이다. 진실이 언제나 옳다고 믿는 순진함이 우리에겐 남아 있지 않다. 때론 엄청난 진실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 눈을 질끈 감고 거짓을 따르기도 한다. 어차피 진실과 거짓은 뿌리가 같으니 말이다.
12일 첫 방송된 SBS 수목극 '피노키오'는 청춘성장멜로라는 말랑한 이름 뒤에 날카로운 현실 감각을 감추고 있는 드라마다. TV 퀴즈쇼에 깜짝 출연한 전교 꼴지 달포(이종석)가 전교 1등을 상대로 능청스럽게 문제를 풀어가는 유쾌한 첫 장면은 달포의 어린 시절로 플래시백 되면서 '진실'에 대한 묵직한 돌직구가 되어 돌아왔다.
달포가 하명이란 진짜 이름으로 살았던 시절, 소방관이었던 하명의 아버지(정인기)는 공장 화재사고를 진압하던 중 실종되고, 공장장의 거짓 진술과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목격자의 증언으로 인해 한순간에 대원들을 버리고 홀로 살아남은 범죄자로 몰리게 됐다. 하명의 가족은 언론의 과잉취재와 사람들의 비난에 시달리고, 결국 하명의 어머니(장영남)는 하명을 데리고 바닷가 절벽에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이후 외딴 섬에서 공필(변희봉)에게 발견된 하명은 공필의 아들 달포라는 이름으로 살게 됐고, 공필의 손녀 인하(박신혜)를 만나 '무늬만' 삼촌-조카로 함께 자랐다.
화제 사건을 다루는 언론은 99%의 팩트를 위해 1%의 진실을 외면했다. 출세욕과 승부욕에 사로잡힌 송차옥(진경)은 왜곡과 과장을 서슴지 않았다. 피노키오 증후군을 가진 목격자는 자신이 잘못 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믿고 싶은 것을 진실이라 말했고, 사람들은 피노키오가 거짓을 말할 리가 없다고 믿었다. 언론과 목격자와 주변인들 모두가 진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걸, 시청자는 알고 있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는 현실로 돌아와 물음표 하나를 던진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진실이 과연 진짜 진실이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느냐고. 드라마의 제목이면서 주요하게 등장하는 '피노키오 증후군'도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설정이다. 그렇게 드라마 안과 밖의 경계는 조금씩 허물어지고, 진실과 거짓은 하나로 뭉개졌다. 이제 그 경계를 새롭게 그어가는 일이 숙제로 주어졌다.
지난해 '너의 목소리가 들려'를 합작한 박혜련 작가-조수원 PD 콤비는 신작인 '피노키오'에서도 흥미로운 설정과 줄거리 안에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녹여내는 탁월한 세공력을 또 한번 발휘했다. 누구보다 대본과 연출을 잘 이해하는 이종석의 연기는 코믹했고 진지했고 강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풋풋하고 발랄한 박신혜는 이종석과 반대 지점에서 극의 균형을 잡으며 두 사람의 절묘한 케미를 기대하게 했다. 달포와 인하가 방송국에 입성한 후 진실과 거짓이 혼재된 상황에서 어떻게 진실을 찾아가고, 또 서로 사랑을 하게 될지 궁금증이 커진다.
극중에서 인하도 거짓을 말하면 딸꾹질을 하는 피노키오 증후군을 갖고 있다. 어린 인하는 달포의 친아버지를 궁금해하며 "남 돕는 거 좋아하셨지? 만나보고 싶을 정도로 좋은 분이셨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인하의 진심에 달포는 "거짓말보다 참말이 열 배는 더 위로가 된다"며 웃었다. 이 드라마가 앞으로 무엇을 보여주려 하는지, 이름도 출신도 거짓인 어린 달포의 대사가 살짝 힌트를 던졌다. 어린 달포에게 그랬듯, 세상의 아픔을 위로하는 건 진실이다. 때론 그것이 송곳처럼 아프게 자신을 찌르더라도 말이다. 앞으로 '피노키오'가 보여줄 진실은 무엇일까? '피노키오'는 이 시대의 정직한 목격자가 될 수 있을까?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