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김옥빈 "제가 순해진 것 같다고요?"

기사입력 2014-11-27 08:32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김옥빈은 다르다. 여느 평범한 20대 여배우와는 살짝 다른 길을 걸었다. 필모그래피부터 범상치 않다. '여배우'의 매력이 돋보이는 작품들은 그닥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작품마다 '배우'로서 특별한 존재감이 드러난다. 영화 '박쥐', '고지전', '시체가 돌아왔다', '여배우들', '다세포소녀' 등. 그래서 김옥빈에겐 '개성파', '연기파'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렸다.

그랬던 김옥빈이 순해졌다. 그리고 밝아졌다. 오랜만에 김옥빈을 만난 사람들은 수다스러워졌다고도 한다. 배우는 작품 속 캐릭터를 닮아간다고 했던가. 그 말이 꼭 들어 맞는 케이스다.

JTBC 드라마 '유나의 거리'는 소매치기, 전직 조폭 두목, 전직 건달, 전직 형사, 콜라텍 종업원 등 밑바닥 3류 인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20여년 전 '서울의 달'을 쓴 김운경 작가가 우리 시대 소시민의 질퍽한 삶을 따뜻한 감성으로 어루만졌다. 그 중심에는 소매치기 전과 3범 유나가 있었다. 김옥빈이 연기한 유나는 세상에 대한 반항심에 거칠게 살아왔지만, 이웃집 청년 창만(이희준)을 만난 후 다친 마음을 열고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유나가 창만을 만나 변했듯 김옥빈도 유나를 만난 후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유나의 거리'는 일상적인 연기를 해보고 싶어서 선택한 작품이에요. 그동안 연기했던 독특한 캐릭터들에 조금 질려 있었거든요. 유나는 내면에 원망과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사실은 따르는 후배도 많고 밝게 자란 아이예요. 소매치기를 하면서도 자신만의 철학이 있어요. 이를테면 도둑질은 하지만 강도질은 안 된다든가 하는 것들요. 작가님의 글이 따뜻해서 제가 치유를 많이 받았어요. 대본을 보고 있으면 소주 한잔이 생각나곤 했어요. (웃음) 제가 오래 살진 않았지만, 이들처럼 살아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어요. 제겐 멘토 같은 작품이었죠."

8개월에 걸친 50부작 장기 레이스. 데뷔 10년차이지만 이런 긴 호흡의 작품은 처음이다. 단 하루라도 몸이 아파서는 안 되는, 체력과 집중력의 싸움. 특히 잠이 부족해 고생을 많이 했다. "한때는 비슷한 대사와 상황이 반복되는 것 때문에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했는데 그걸 잘 이겨낸 저 자신이 기특하고 대견해요. 다 끝나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하고요."

개운한 표정을 짓는 김옥빈과 달리 가족들은 드라마가 끝난 것을 무척 서운해 했다고 한다. 몇 달 동안 TV로 만나던 딸을 못 본다니 그럴 법하다. "어머니가 광양읍에 사시는데 순천시까지 나가야 영화관이 있어요. 제가 나온 영화를 보기 힘드시죠. 그런데 몇 달 동안 딸을 TV로 보니까 무척 좋아하셨죠. 드라마를 한 덕분에 어머니께 효도했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긴 작품은 안 할래요. 힘들어서…. (웃음)"

김옥빈도 드라마 때문에 색다른 경험을 했다. 매회 즉각적으로 쏟아지는 시청자들의 반응을 접하는 일이 즐거웠다. 촬영을 마치고 바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어서 연기에 대한 만족감도 컸다. 그렇게 세상과의 접점이 늘어나면서 자신을 가둔 벽이 조금씩 깨져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팬들이 보내준 보약 선물을 받고는 '나에게도 이런 팬들이 있었구나, 한참이나 잊고 살았구나, 꼭꼭 챙겨먹고 힘내야지' 하고 새삼 고마움을 깨닫기도 했다.

"예전엔 제가 좀 어리기도 했고, 연기만 하고 싶은데 자꾸만 신경 쓰이는 것들이 많아지니까 스스로 방어막을 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느 순간 편해졌어요. 세상 사람들이 다 저를 좋아할 순 없는 거잖아요. 팬들도 요즘 그래요. 제 인상이 순해졌다고…. 누군가를 미워하는 건 의미 없어요. 먼 미래보다는 지금에 충실하면서 재밌게 살고 싶어요."


그래서일까. 음악 취향도 바뀌었다. 한때 펑크 음악을 다룬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던 김옥빈이 요즘엔 국악과 클래식을 듣는단다. 라디오 주파수 93.1 KBS 클래식 채널 마니아다. "팬으로서 좋아하는 DJ도 있어요!" 목소리가 한껏 들뜬다.

"요즘 생활이 너무 행복해요. 하루 종일 쉬고, 음악 듣고, 무엇보다 알람 시계에 맞춰 일어나지 않아도 되는 게 너~무 좋아요. 여행하고 책도 보고 충전하려고요. 내면을 꼭꼭 채워야 다시 저만의 무언가를 연기로 꺼내놓을 수 있을 테니까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사진제공=윌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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