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여성시대' 지킴이 양희은, '두시만세' 부스에 앉은 사연?

기사입력 2014-12-03 03:51


사진제공=MBC

오후 2시, 식곤증에 나른해지는 시간. 하지만 MBC 라디오 스튜디오가 위치한 상암동 신사옥 10층은 하품 한번 할 겨를도 없이 왁자지껄한 웃음소리로 들썩인다. 표준FM '두시만세'가 데시벨을 한껏 올리며 활기찬 출발을 알렸다.

2일 오후에 찾아간 '두시만세' 스튜디오는 조금 색다른 분위기다. 마이크 앞에 '여성시대'의 DJ 양희은이 앉아 있다. 원래 안주인인 정경미는 스튜디오 밖에서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두시만세' 오프닝을 지켜보고 있다. 정경미는 "파트너인 박준형 선배가 썰렁한 유머를 많이 하는데 내가 후배이다 보니 그동안 말을 못했다. 오늘 양희은 선배한테 제대로 혼이 났으면 좋겠다"면서 짓궂게 웃었다.

MBC 라디오 표준FM은 MBC 창사 53주년을 기념해 각 프로그램의 DJ들을 서로 바꾸는 '바꿨데이'를 2일 하루 동안 진행했다. 정경미는 낮 12시부터 방송되는 '싱글벙글쇼'로 자리를 옮겨 김혜영 대신 강석과 호흡을 맞췄고, 김혜영은 '지금은 라디오시대'에서 조영남을 만났다. '여성시대' 양희은은 최유라에게 잠시 자리를 내주고 '두시만세'를 찾았다.

DJ 콜라보레이션 중에서도 양희은과 박준형 조합은 뜻밖이다. 두 사람도 "허를 찌르는 파격적인 조합 아니냐"며 즐거워했다. 그런데 오프닝 첫 곡이 성시경의 '우린 제법 잘 어울려요'다. 이 또한 허를 찌르는 선곡이다.

양희은은 방송 시작 직전 '두시만세'의 로고송을 딱 두 번 듣고서 곧바로 녹음을 했다. 랩을 연상시키는 빠른 리듬과 양희은의 청량한 음색이 만나 완전히 새로운 로고송이 탄생했다. PD, 작가, 엔지니어, 매니저 가릴 것 없이 모두가 감탄사를 연발하며 박장대소한다. 양희은은 "내가 44년차 가수인데 뭘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스튜디오로 향한다.

본격적으로 방송이 시작되자 스튜디오는 더 시끌벅적해진다. 청취자 사연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콩트가 시작됐다. 박준형이야 원래 코미디 연기를 하는 개그맨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양희은의 콩트 연기가 압권이다. 희로애락이 담긴 목소리 연기에 박준형마저 "본격적으로 연기를 하실 생각 없냐"며 감탄을 쏟아낸다. 시제를 받아 청취자들이 이행시를 지어 직접 참가하는 '시를 쓰시오' 코너. 어찌나 기발한 이행시가 도착했는지 스튜디오 안이 또 한번 웃음소리로 가득찬다. 양희은과 박준형의 맛깔스러운 입담에 실려 소개되자 스튜디오 밖 제작진까지 웃느라 배꼽을 잡는다.

방송을 마친 후 만난 박준형은 "양희은 선배가 워낙 사연을 잘 읽으시는 건 알았지만 콩트는 정말 기대 이상이었다"며 "첫 문장만 듣고도 오늘 대박날 줄 알았다"고 했다. 양희은은 "다들 내가 무서운 사람인 줄 아는데 원래 나는 웃긴 사람"이라며 "이런 컨셉트의 방송은 처음인데 포맷이 다르니까 너무 재밌다. 왜 바람 나는지 이유를 알 것 같다"고 농담 섞인 소감을 전했다.

'두시만세'는 SBS 라디오 '컬투쇼'와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컬투쇼' 때문에 부진을 면치 못하던 이 시간대가 '두시만세' 덕분에 살아나고 있다. 표준FM의 1년차 막내 DJ 박준형은 "최근에 '두시만세'가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중 전국 6등을 했다. 정말 대단하지 않나. '1등이 코앞이다'가 우리의 구호다. '두시만세 포레버'를 늘 외친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양희은도 "잘했어~"라며 후배 DJ를 흐뭇한 눈길로 바라봤다.


양희은은 지난 16년간 '여성시대'를 지켜왔다. 내년 40주년을 맞는 '여성시대'의 최장수 DJ. 그 자신도 "이렇게 오래할 줄 몰랐다"고 했다. 양희은은 "처음 '여성시대' DJ를 할 땐 내가 갱년기였는데 청취자들 사연을 접하다 보니 우울증 비슷한 증상이 생겼다. 방송 전에는 공원이나 한강 둔치에서 꼭 바람을 쐬곤 했다. 사연을 소개한다고 그 사람의 인생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러다 어느날 깨달았다. 사연을 보낼 만큼의 용기도 없어서 자기 얘기를 못하고 있는 누군가가 라디오를 들으면서 자기 객관화를 하고 주변에 도움을 청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을…. 눈에 보이지 않는 연대가 상상 이상으로 커다랗게 우리를 둘러싸고 있더라. 그래서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라디오를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두시만세'의 엔딩곡은 양희은의 신곡 '나영이네 냉장고'. 집밥을 못 먹는 고달픈 청춘들을 위로하는 노래다. 그리고 이날 양희은과 함께 한 '두시만세'는 집밥보다 더 든든한 위로를 전했다. 양희은은 "늘 아침 일찍 나오느라 남편과 아침밥도 못 먹었는데 오늘은 택배도 받고 강아지 산책도 하고 빨래도 했다"며 웃었다. 박준형은 "내가 원래 잘 받쳐주는 카페트 같은 진행자"라고 장난스럽게 자화자찬하며 "평소 양희은 선배의 팬이었는데 함께 진행을 해서 기뻤다"고 소감을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남기며 특별한 하루를 마감하는 두 사람. 다시 정경미 곁으로 돌아간 박준형은 '두시만세' 사전녹음 스튜디오로 향했고, 양희은은 푸근한 웃음과 함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사진제공=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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