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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드라마 '미생'을 마친 후 김대명은 지독한 감기에 걸렸다. 드라마를 촬영하는 6개월 동안 마음껏 아플 수도 없었던 그에게 찾아온 일종의 '종영 후유증'. 말을 걸기가 미안할 만큼 목소리는 꺼끌꺼끌했고, 붉게 충혈된 눈에선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했다. "그래도 촬영이 다 끝난 뒤에 아파서 다행"이라며 사람 좋은 얼굴로 푸근하게 웃는 모습이 극 중 김동식 대리와 꼭 닮았다.
현실 속 수많은 '장그래'들에게 김대리는 만나고 싶은 이상적인 직장 선배다. 뛰어난 업무 능력과 인간미로 후배를 이끌어주고 상사를 보필한다. 실제 직장인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큼 사실감 넘쳤던 김대명의 연기가 웹툰 속 김대리를 드라마로, 드라마 속 김대리를 현실로 불러낸 원동력이었다. "김동식 캐릭터의 감성적인 면모를 김대명보다 더 잘 표현할 사람은 없다"고 장담했던 연출자 김원석 감독의 말에 100% 공감한다.
"김대리는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에 김대리가 회사를 그만두고 오차장의 회사에 합류한 걸 놓고 의리 때문이라는 얘기도 하던데, 사실은 스스로가 행복해지는 삶을 선택한 거였죠. 하지만 김대리처럼 살기는 정말 힘든 것 같아요."
김대명은 그 자신도 "연기를 할 때 가장 행복하니까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저는 항상 남들을 먼저 배려하고 저는 그 다음이었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내 행복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물론 실천하기는 쉽지 않죠. 그래서 몇 가지 지침을 세웠어요. 첫째는 싫을 때는 '싫다'고 거절하기. 둘째는 뭐가 됐든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기. 아주 작은 것들에서 행복이 시작되더라고요."
수많은 이야기를 함축한 그의 말에서 그가 걸어온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영화 '방황하는 칼날', '역린', '표적', '더 테러 라이브' 등 여러 작품에서 꼭 필요하지만 조금은 작은 역할을 많이 맡았다. '미생'은 그런 그에 주어진 보상 같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는 들뜨기는커녕 아주 차가웠다.
"장그래의 집 앞에서 김대리가 이런 말을 했어요. '인생은 성공과 실패로 나뉘는 게 아니라, 다가오는 문을 하나씩 여는 것 아닐까.' 저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죠. '미생'이 끝나고나서 인기가 많아지고 삶이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아요. 솔직히 지금의 관심이 두 달 정도면 끝나지 않겠나 싶어요. 그저 문을 하나 열었을 뿐이죠. 저는 그동안 살던 대로 앞으로도 살아갈 거예요."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묻자 또 한번 초연한 답이 돌아왔다. "계획 같은 것은 없어요. 당장에 뭐가 될 거라는 기대도 없고요.(웃음) 굳이 계획을 꼽자면 다음 작품도 잘 끝마치는 것 정도? 그걸 잘 해야 또 다음이 있는 거니까. 좋은 연기를 보여드리는 것 말고는 욕심이 없어요."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