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혁 인터뷰는 최민수에서 시작해서 최민수로 끝났다. 어떤 질문을 해도 대답은 기승전'최민수'로 돌아왔다. 최근 종영한 MBC '오만과 편견'에서 엘리트 평검사와 부장검사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 대체 촬영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민수에 대한 찬사로 꽉 채워진 1시간의 인터뷰. 최진혁의 '최민수 앓이'를 모두 듣고 난 후 처음 든 생각은 '최민수를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곧이어 최진혁의 배우 인생이 송두리째 달라질 것 같다는 강렬한 확신이 찾아왔다.
"최민수 선배 때문에 마인드가 완전히 바뀌었어요." 첫 번째 질문 '드라마 종영 소감'에 대한 답변. 첫 마디부터 최민수다. "지난 1년 8개월 동안 드라마 5편에 출연했어요. 입대 전에 열심히 일하려고 했던 건데, 그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이번에 처음으로 했어요. 최민수 선배 때문에요. 최민수 선배는 메소드를 굉장히 중요시하는 분이에요. 제 내공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더라고요. 드라마 촬영하는 동안 진짜 배우의 덕목에 대해 수없이 강조하셨어요. 철저하게 캐릭터를 준비하고 집중해서 작품에 임했어야 했는데, 제가 그런 점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았죠."
'오만과 편견'은 공소시효를 3개월 남겨둔 미제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려내 호평받았다. 극중 문희만 부장검사(최민수)와 구동치 검사(최진혁)는 한 배를 탄 동지인 듯하면서도 서로 의심하고 경계하는 미묘한 관계로 드라마에 숨막히는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최진혁은 최민수의 연기에 대해 한마디로 "소름이 돋았다"고 했다. "한번은 대본을 받고 20분 만에 법정신을 찍은 적이 있어요. 문희만 검사가 증인을 심문하는 장면이었죠. 아~ 진짜 등골이 오싹했어요. 그 순간만큼은 저를 완전히 잊어버리고 진짜 구동치가 된 것 같더라고요. 최민수 선배가 문희만 그 자체로 존재했기 때문에 저도 그럴 수 있었던 거예요. 그 어마어마한 연기력에 존경심이 절로 솟았어요. 그분의 포스와 자신감은 누구도 따라갈 수 없을 거예요."
최민수의 연기 지적이나 잔소리로 여길 법한 예민한 이야기들에도 전혀 불쾌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의 가르침을 마지막 음절까지 흡수했다. "최민수 선배가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좋은 얘기를 해줘도 못 알아듣는 후배들이 있다고. 제가 선배의 얘기를 이해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어요. 그동안 허투로 연기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니까요."
그래도 최민수와의 독대 장면은 어려웠다. 최민수에게서 받은 에너지를 연기에 담아내 되돌려주기가 쉽지 않았다. 머리가 깨지도록 고민도 하고, 미친듯이 대본을 파고들었다. "내가 할 수 있는 한도 안에서 100%를 다해서 후회가 없다"고 할 정도로 말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최민수와 최진혁이 꽤나 닮은 것 같기도 하다.
그런 최진혁의 노력을 가장 먼저 알아준 사람 또한 최민수다. 마지막회 법정신 촬영을 마친 뒤 최민수가 툭 던지듯 말했다. "그래도 이 놈, 배우 될 수 있는 놈이야." 그 순간을 떠올리며 최진혁은 또 한번 짜릿하게 전율했다. "가슴이 먹먹했어요. 그리고 뭐라 설명할 수 없는 큰 파동이 일더라고요."
그런데 자칫 이런 귀한 인연을 놓칠 뻔했다고 한다. 입대 직전이니 좀 쉬운 작품을 할 생각이었다. 그러다 김진민 감독을 만난 뒤 생각이 바뀌어 출연을 결심했다. 물론 그때는 배우 인생 궤도가 완전히 바뀔 줄은 짐작도 하지 못했다. "'오만과 편견'을 떠올리면 딱 두 가지밖에 생각 안 나요. 최민수 선배, 그리고 김진민 감독. 제겐 그 정도로 큰 임팩트였어요. 많이 배우기도 했지만 배우의 길을 바꿔주신 분들이에요. 감독님도 다른 분들과는 달랐어요. 행동과 대사를 포장하지 말라고, 촬영장을 무대로 생각하라고 하셨죠. 연기의 본질에 대해 말씀하시는 분은 처음 만나봤어요. 이렇게 훌륭한 선배님과 감독님을 왜 이제야 만난 걸까요. 좀 더 일찍 만났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 작품을 떠나서 많은 걸 배울 수 있었다는 것이 진짜 큰 수확이에요. 진심으로요."
최진혁은 아주 잠깐의 휴식 뒤에 3월 군입대 한다. 꽉 찬 나이가 머쓱하지만, 군복무가 또다른 숙성의 시간이 될 거라 믿는다. "군대에서의 시간이 허투로 가진 않을 거예요. 배우에겐 묵은지가 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죠. 최소한 지금보다는 더 좋은 배우가 돼 있을 거란 기대를 갖고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입대 전에 최민수 선배를 만난 건 정말 행운이에요." 마지막 질문 '2년 뒤 계획'에 대한 답변? 끝까지 최민수다. 김표향 기자 suzak@sport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