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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조선 김표향 기자] 아비가 아들에게 칼을 내던지며 자결하라 명한다. 자식이 아비를 죽이려했으니 가장으로서 응당 내려야 할 처분이다. "이것은 나랏일이 아니고 집안일이야." 아비는 분노에 몸을 떨고 아들은 울부짖는다. "언제부터 나를 세자로 생각하고 또 자식으로 생각했소." 비정한 아비는 아들을 뒤주에 가두고 직접 쇠못을 박는다.
영조는 천한 무수리에게서 태어났다는 콤플렉스 속에 재위 내내 정통성 논란에 시달렸다. 양위파동으로 신하들의 충성심을 시험하며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으려 했다. 괴팍하고 변덕스러운 영조로 인해 사도는 고통받았다. 천둥 같은 호통과 폭언 속에도 세자로서 최선을 다하려 했던 사도는 울화와 절망감에 몸부림치다 점점 광기에 사로잡혀 간다.
송강호와 유아인의 격렬한 충돌 에너지는 스크린을 비장미로 가득 채운다. 극의 갈등과 긴장이 정점에 달하면, 두 배우가 주고 받는 연기 호흡에 숨이 멎는다. 곧 이어 전율이 온 몸을 타고 흐른다.
송강호는 왜 그가 명배우인지 다시 한번 증명한다. 40대에서 80대까지 40년의 세월을 오간 송강호의 연기는 비평의 대상이 아니다. 그가 연기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이 아직도 무궁무진하게 남았다는 사실이 축복처럼 느껴진다. 영조가 숨진 사도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눈물 흘리는 장면에선 울음 속에 대사가 뭉개져 들리지만, 그래서 더 짙은 회한이 전해진다.
'베테랑'으로 껍질을 깨고 나온 유아인은 이제 완전히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허공으로 날아간 저 화살이 얼마나 떳떳하냐"는 공허한 읊조림 안에도 수만가지 복잡한 감정이 담겼다. 생모 영빈의 뒤늦은 회갑연을 치른 뒤 궁궐 후원에서 행차를 하며 울부짖는 장면에서 유아인의 에너지와 광기가 폭발하는데, 가슴에 쇠못이 박힌 사도의 원한이 고스란히 관객을 덮친다.
영조는 사도가 죽은 뒤, '생각할 사(思)', '슬퍼할 도(棹)', 사도라는 시호를 내린다. "너를 생각하며 슬퍼하노라." 지독한 회한. '사도'라는 시호는 비정한 부정(父情)의 다른 표현이다. 슬프고 슬프고 또 슬프도다. 슬픔의, 여운의 그림자가 참으로 길고도 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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