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리뷰] '육룡' 백마디 말 압도한 눈빛 '이래서 명본좌다'

기사입력 2016-01-26 09:39


사진=SBS '육룡이 나르샤'

[스포츠조선 조지영 기자] 고려를 지키려는 자와 새 나라를 건국하려는 자의 싸움이 절정에 치달았다.

지난 25일 오후 방송된 SBS 월화드라마 '육룡이 나르샤'(김영현·박상연 극본, 신경수 연출) 33회에서는 정도전(김명민)이 결국 정몽주(김의성)로부터 탄핵당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지난주 토지대장을 불태우는 데 성공한 정도전은 이번엔 '척불(불교를 배척하는 것)' 정책을 내세웠다. 토지개혁을 시행하자 많은 세족은 자신의 땅을 불교에 헌납, 땅을 지키려고 꼼수를 부렸다. 이를 알게 된 정도전은 불교가 모은 땅을 국가가 모두 환수해야 하며 그동안 눈감았던 불교의 폐단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도전의 두 번째 도전인 척불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고려의 정신이라 불리며 백성은 물론 고려의 왕까지 굳게 믿는 국가 종교 불교를 배척하는 일은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일이었다. 독실한 불자인 이성계(천호진)마저 정도전의 제안에 흔들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술렁이고 있던 그때 정몽주는 정도전을 몰아낼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하며 그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일단 정몽주는 공양왕(이도엽)과 함께 이성계를 만났고 이 과정에서 "정도전의 개혁은 너무 급하다. 잠깐 쉬게 해주자"고 설득했다. 결국 이성계 또한 정몽주와 공양왕의 이야기에 설득돼 정도전의 손을 놓게 됐다.

정도전은 그야말로 혼자가 됐다. 모든 상황을 간파한 이방원(유아인)만이 그의 안위를 걱정, 정몽주의 속셈을 알렸다. 하지만 정도전은 언제나 그랬듯 '사형' 정몽주를, 그리고 청렴결백한 자신을 믿었다. 그는 "유배를 보내거나 그 이상의 죄를 묻기 위해서는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나는 그런 명분이 없다"고 자신했다. 그만큼 정도전은 자신의 삶에 한치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늘 백성의 안위, 새 나라를 위한 일에만 몰두했던 그였기에 명분 따위는 없을 줄 알았다.

이방원의 경고에도 당당히 도당에 입성한 정도전은 비장한 표정의 정몽주를 향해 다시 한번 다짐했다. 자신을 탄핵할 명분을 만들면 조목조목 반박해 줄 것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이런 정도전에게 정몽주는 생각지도 못한 허를 찔렀다. 바로 정도전이 '천출(미천한 신분)'이라는 것.

과거 정몽주와 정도전은 성균관 재학 당시 서로의 허물을 덮어줄 만큼 막역한 선후배 사이였다. 당시 정도전은 '천출'이라는 의혹을 받으며 동료들의 멸시와 핍박을 받았는데 그런 정도전을 위로한 게 정몽주였다. 정도전은 "어린 시절 마을 어른들께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저의 외조모님께서 노비의 딸이라는 것을요"라며 비밀을 털어놨고 정몽주는 "그럴 리가 없어. 풍문일 뿐이잖나. 그런 미욱한 노인네들의 말을 믿지 말게 그리고 그런 소리는 추후에도 결코 해서는 안 되네. 어느 누구에게도"라면서 정도전의 비밀을 무덤까지 가져갈 것을 맹세했다.


도당 회의에서 정몽주는 단양 우씨 일가의 행장(죽은 사람의 생애를 적은 글)을 내밀며 "증좌가 있소. 이것을 자세히 살피면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선언했다. 이어 정도전을 보며 "정당문학(정도전), 내 묻겠소. 우리 성균관 시절, 이와 같은 참담한 사실에 대해 내게 자복(저지른 죄를 자백함)한 적이 있소? 없소? 없으면 없다고 이 모든 것이 다 날조라고 말해보시오"라고 소리쳤다.

정도전은 새 나라의 첫 재상으로 선택한 이가, 어릴적 동고동락을 같이했던 동지가, 친형제처럼 아꼈던 그가 자신의 등에 비수를 꽃자 서글픈, 원통한 눈물을 흘렸다. 어떤 말도 하지 못한 채 그 자리에서 통한의 눈물만 흘려야 했던 정도전이다. 어제의 사형이 오늘의 적이 되고 오늘의 적이 내일의 동지가 되는 형세.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 상황이 펼쳐졌다.

그동안 김명민은 호탕하고 카리스마 넘쳤던 '육룡이 나르샤'의 리더 정도전을 완벽히 그려내며 시청자의 몰입을 도왔다. 특히 이날의 방송은 강철같았던 정도전이 처음으로 무너진 날. 100마디 말보다 눈빛 하나, 손짓 하나로 1000가지 상황을 선보인 대목이었다. 역사가 곧 스포라는 '육룡이 나르샤'의 리스크를 완벽히 감싸는 '명본좌'의 명품 연기. 다음 이야기가 어떻게 펼쳐질지 눈에 뻔히 보이는 '육룡이 나르샤'이지만 그럼에도 계속해서 기다려지는 이유다.

soulhn1220@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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