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e스포츠 지도자, e스포츠 한류의 또 다른 주역

기사입력 2016-05-09 11:23


'리그 오브 레전드 미드시즌 인비테이셔널 2016'(MSI)가 지난 4일 중국 상하이 오리엔탈스포츠센터에서 개막된 가운데, e스포츠 팬들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한국대표 SK텔레콤 T1은 고전 끝에 4강에 올랐다.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북미 LoL팀 팀 리퀴드의 최윤섭 감독이 선수들과 전략 회의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라이엇게임즈

'태권도와 양궁에 이어 이제는 e스포츠까지'

태권도와 양궁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효자 종목이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코칭 노하우와 시스템, 우승 DNA 등을 전수받기 위해서 한국인 선수 출신 지도자에 대한 러브콜이 쇄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도자 수출'은 이미 보편화된 트렌드이다. 여기에 한 종목이 더 보태지고 있다. 바로 한국이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e스포츠이다.

e스포츠의 태동을 이끌었지만 주로 국내에서만 즐겼던 '스타크래프트'와 달리 '리그 오브 레전드'는 세계의 젊은이들이 즐기는 글로벌 e스포츠로 자리잡으면서, 한국에서 뛰었던 선수뿐 아니라 지도자까지 해외로 적극 진출하고 있다. '인력 유출'이라는 부정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그만큼 e스포츠 시장이 대형화 되면서 세계 최고로 꼽히는 한국 프로게이머와 코칭 스태프의 인기가 상승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이다.

해외로, 해외로

전성기 시절만큼의 기업 투자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한국 시장에 비해 중국을 필두로 북미와 유럽은 거대 자본과 날로 늘어가는 e스포츠 인기에 힘입어 한국 인력 영입에 더욱 적극적이다.

지난해 10월 유럽 4개국에서 열린 '2015 리그 오브 레전드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에 참가한 전세계 16개팀 96명 게이머 가운데 한국 선수가 3분의 1에 가까운 31명에 이를 정도였고, 지난 4일 개막해 15일까지 열리는 '리그 오브 레전드 미드시즌 인비테이셔널 2016'(이하 MSI)에도 6개팀 36명 가운데 한국인이 11명이다. 선수들을 필두로 코치진도 해외팀의 주축이 되고 있다.

현재 북미의 팀 리퀴드 감독을 맡고 있는 '로코도코' 최윤섭은 국내에서 MiG, 스타테일, 나진 등 다양한 팀을 거치며 선수 경험을 쌓았다. 2014년 선수 은퇴 후 북미 TSM의 제안으로 코치 생활을 시작, 팀의 2회 연속 지역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과 2015년 2년 연속 팀을 롤드컵에 진출시킨 그는 지난해 팀 리퀴드로 이동, 잠시 콘텐츠 제작자로 활동하다가 다시 감독으로 부임해 활동하고 있다. 전 SK텔레콤 T1 출신의 '피글렛' 채광진도 속해 있는 팀 리퀴드는 이번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에 진출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LoL 1세대 프로게이머인 '빠른별' 정민성은 지난 1월 중국 EDG 코치로 부임했다. MiG, 아주부, CJ 등에서 활동했던 그는 2014년 선수 생활 은퇴 후 해설자로 활동하다 올해 중국 팀에서 지도자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EDG는 지난해 롤드컵과 MSI에 진출했던 강팀으로, 이번 스프링 시즌에도 중국 프로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다. 특히 EDG에는 '폰' 허원석, '데프트' 김혁규 등 한국 선수들이 속해 있어 한국인 코치와 선수 간 시너지를 통해 다음 시즌에도 좋은 성적이 기대된다.


손대영은 아주부, CJ 등에서 코치로 활동하다가 이번 스프링 시즌을 앞두고 중국팀으로 적을 옮겼다. CJ를 떠나며 중국, 유럽, 브라질 등 전세계 팀에서 지도자 자리를 제안받은 그는 중국 EDG의 2부 리그 팀인 EDE에서 다시 한번 코치 활동을 시작했다. EDE는 손 코치의 지도 아래 올해 스프링 시즌에서 2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1부 리그 승격의 값진 성과를 얻어냈다.

전력 상향 평준화, 그 명과 암

이들이 러브콜을 받는 것은 한국의 탄탄한 e스포츠 인프라, 그리고 이런 경쟁력 속에서 성장한 풍부한 경험 덕분이다.

최윤섭 감독과 정민성 코치는 다양한 팀에서의 선수 활동이 지도자로 성장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이들 외에도 지난해 롤드컵 준우승에 이어 올해 '리그 오브 레전드 챔피언스 코리아'(이하 롤챔스)에서 락스 타이거즈의 정규시즌 1위, 결승전 준우승 등을 이끈 정노철 감독 역시 LoL 프로게이머 출신으로 선수 시절의 경험을 살린 전략을 바탕으로 '노갈량'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e스포츠 선수 생활을 통해 자연스레 시스템을 익히고 이를 지도하는데 활용하는 측면에선 굳이 종목이 달라도 큰 상관이 없는 경우도 많다. 손대영 코치는 2000년대 초반 '위닝일레븐', '카운터스트라이크' 등의 종목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 e스포츠 해설로 전향, 이후 프로팀 코치가 됐다. kt 이지훈 감독은 축구게임 'FIFA' 프로게이머로 뛰면서 18회나 우승을 차지했는데 이를 바탕으로 '스타크래프트'에 이어 '리그 오브 레전드'에서도 감독으로 활약중이다. CJ 박정석 감독 역시 '스타크래프트'에서 4대 천왕으로 불렸는데, 나진에 이어 CJ LoL팀을 맡고 있다.

이런 한국 지도자들의 노하우 전파 덕분에 해외팀들의 전력은 급상승 하고 있다. 또 이들의 존재로 인해 더욱 많은 한국 선수들이 해외팀으로 이적한 후 더욱 빨리 팀에 적응하고 있는 것도 상당한 부수효과다. 한국팀들의 전력 파악과 성향 분석 등도 이들의 몫이다.

분명 새로운 한류 전파라는 측면에선 반갑지만 그만큼 해외팀들의 전력 상승으로 인해 한국팀들의 경쟁력 약화라는 아쉬움도 내포돼 있다. 이번 MSI에서 한국 대표 SK텔레콤 T1이 충격의 4연패를 한 끝에 겨우 4강전에 합류한 것도 하나의 방증이라 할 수 있다. 롤드컵과 롤챔스에 이어 MSI까지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노린 SKT의 야망에 빨간불이 켜졌음은 물론이다.

e스포츠 전문가들은 "한국 선수들과 코치진의 해외 진출은 분명 긍정과 부정적 효과가 모두 있다"며 "e스포츠 시장 규모가 더욱 커지면서 이런 트렌드는 더욱 확대될 것이다. 한국팀으로선 변화에 더 빨리 적응해야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남정석 기자 bluesky@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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