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옥중화' 이병훈 PD "교육·가치·고증, 사극의 3요소"

기사입력 2016-05-11 17:58



[스포츠조선 배선영기자]이병훈 PD의 컴백은 성공적이었다. 그의 3년 만에 복귀작 MBC 창사 55주년 특별기획 '옥중화'는 방송 2회만에 시청률 20%의 벽을 넘고 성공을 알렸다. '대장금' '동이'에 이어 여성 사극의 삼부작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옥중화'는 그러나 시작부터 순조로웠던 것은 아니다. 이영애, 한효주에 이어 이병훈의 뮤즈로 선정된 진세연의 캐스팅을 두고 잡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우려 역시 진세연이 첫 등장한 4회에서 불식됐다. 아역 정다빈과 바통터치를 한 진세연은 안정적인 연기력으로 이질감 없이 자연스레 '옥중화'에 녹아 들었다. 숱한 우려에도 배우에 대한 신뢰감을 여러 차례 강조했던 이병훈 PD, 이번에도 그의 촉은 통했다.

화제의 중심에 선 뜨거운 드라마 '옥중화'를 연출하는 이병훈 PD를 제작발표회 현장에서 따로 만났다. 그에게 일명 이병훈 사극 영역이라는 드라마 지수 평가지를 내밀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총 1100여 편의 드라마를 연출해왔지만 시험지 형태의 인터뷰를 처음 접한 이 PD는 특유의 사람 좋은 웃음과 함께 "재밌네요. 이런 것도 있군요"라며 신기해했다.


첫 번째 문항은 '허준', '상도', '대장금', '이산', '동이' 등 이병훈 PD의 전작들 중 큰 성공을 거둔 드라마들의 명대사를 맞추는 문제였다. 과연 그가 아직 기억을 할지 괜히 보는 이들의 가슴이 조마조마해진다. 보기는 다음과 같았다. ① '허준' 임현식 ? "줄을 서시오!" ② '상도' 박인환 ? "사람을 벌고 남기는 거, 그게 장사" ③ '대장금' 조정은 ?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한 것인데" ④ '이산' 이서진 ? "널 데리러 왔다"⑤ '동이' 한효주 ? "사람의 위는 목구멍으로부터 한 자 여섯 치를 내려가면 심창골과 배꼽 중간에 각 네치에 뻗쳐 위치했으며...."

사실 출제자가 의도한 정답은 5번이었다. 한 눈에 봐도 허준에서 나올 법한 대사다. 그러나 이 PD는 4번을 답이라고 말했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이산'의 명대사는 '백성은 물이고 임금은 배다. 물이 휘몰아치면 배는 뒤집히게 되어 있다'는 영조의 대사다"라고 말했다. '이산' 에서 가장 의미있는 대사라고 힘을 주어 말하는 이 PD의 표정에서 사극에 대한 애정과 사명을 느꼈다. 차마 오답이라고 말하지 못하고 넘어갔다. 그리고 그의 답이 어찌 오답일까.

그가 연출한 사극 중 유일하게 실존인물이 아닌 가상의 캐릭터인 '옥중화' 옥녀를 골라내는 두 번째 문제를 지나 3번부터 5번까지는 '옥중화'의 주요 배경이 되는 외지부와 전옥서에 대한 문항들이 줄을 이었다. 감옥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탁월한 능력을 갖춘 조선의 여인, 옥녀가 훗날 몸담게 되는 곳이 바로 외지부이기도 한데, 이는 오늘날의 변호사 제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날의 시험 주관식 8번 문항에서도 다시 한 번 강조했지만 이 PD는 "내가 사극을 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교육적 측면과 소재의 가치성, 그리고 고증"이라고 말했다. 외지부는 그런 이 PD의 드라마 철학과도 잘 맞물리는 소재다. 백성들의 억울한 사연을 풀어주기 위해 조선시대에 이미 변호사 제도가 존재했다는 것을 '옥중화'를 통해 많은 이들이 알게 될 것이다.

6번과 7번 문제는 배우에 대한 이 PD의 애정을 확인하게 된 문항이다. 이 PD는 고증을 중요하게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동이'에서 배우들에게 가채를 쓰지 않게 했다. 고증도 중요하지만 사극을 힘겨워하는 배우들을 위한 그의 배려였다. 당시 그는 드라마 방영 전 여러차례 "영조 때 가채 금지령이 내려졌으니 숙종 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동이'에서 배우들이 가채를 쓰지 않는 것은 고증에는 어긋나지만 '대장금' 당시 배우들이 너무 고통스러워해 이같은 약속을 하고 말았다"라고 밝히며 시청자들의 양해를 당부한 바 있다.

그렇지만 힘들 때 맺은 인연이 가장 질기다 했던가. 이 PD는 7번 문제에서 조심스럽게 물어본 가장 궁합이 잘 맞았던 여배우로 이영애를 꼽았다. '옥중화' 진세연은 아직 50부작 대장정이 마무리 되지 않은 터라 보기에 없었다. "참 어려운 문제네요. 그래도 지금까지 끊임없이 연락하는 배우는 이영애 씨와 한효주 씨이고 그 중 가장 많이 연락하는 것이 이영애 씨니까 이영애 씨라고 해야겠군요. 집도 찾아가고 부부끼리 식사도 여러 번 했으니까요."


이날 이병훈 사극영역을 마무리 하며 그에게 혹시 아직 제작하지 못했던 사극 소재가 있냐고 물었다. 기다렸다는 듯 그의 입에서 삼국시대 초기라는 답이 흘러나왔다. 지금까지 750여편의 사극을 연출해온 이 PD이지만 삼국시대 초기를 배경으로 드라마를 제작하지 못했던 것은 결국 제작비 문제 때문이라고. "김성호 박사의 '비류백제와 일본의 국가기원'이라는 책이 있어요. 80년대에 나온 책이에요. 논문인데 원작을 샀어요. 거의 20권을 사서 제작 기획을 하는 분들께 선물을 하기도 했는데 결국 드라마화 하지는 못했네요. 비류백제는 무려 400년 동안 존속한 해상왕국인데, 아무래도 왕조를 세우는 장면의 스케일은 어마어마하다 보니 돈이 많이 들 수밖에 없어요." 그의 표정에서 진한 아쉬움이 전해졌다. 그는 이날 한참을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비류 백제의 질긴 생명력에 대해 이야기 해주었다.

2016학년도 드라마 지수평가 이병훈 사극영역에서 100점을 맞은 이병훈 PD는 이날 스포츠조선 독자들에게 사극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을 당부하는 것으로 끝인사를 대신했다.

"사극은 실제의 역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의 한 부분을 담고 있죠. 사극을 통해 우리는 선조의 훌륭한 문화와 교훈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대한민국의, 자부심을 사극을 통해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이병훈 PD가 푼 이병훈 사극영역



sypova@sportschosun.com, 사진=송정헌 기자 songs@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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